<인물 탐구>

▲ 9월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주통합당 당 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담쟁이캠프 1차 회의에 참석한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권의 장자방’으로 불리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지금 야권 유력 후보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전략통으로 꼽히던 박선숙 전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선대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윤 전 장관은 한때 안철수 후보의 멘토였고, 박선숙 전 의원은 문재인 후보를 간판으로 내세운 지난 4월 총선 때 민주당 사무총장으로 선거를 지휘했다. 서로가 서로의 ‘주군’에 대해 너무도 잘 안다. 두 사람은 11월로 예정된 야권후보단일화 협상에 나서 피 말리는 ‘밀당’으로 상대후보를 무너뜨려야 한다. 얄궂은 운명이다.

윤여준 "참신성만으로 국가운영 안돼"
박선숙 "대결구도의 낡은 정치 바꿔야"

<윤여준 전 장관>
윤여준 전 장관(73)은 문재인 후보의 ‘민주캠프’ 안에서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후보단일화 과정에는 간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민주당 인사들은 없다. 그가 누구인가? 여권의 대표적인 전략통으로 소문난 인물이다. 토끼띠에 꾀가 많은 책사(策士)인 그는 원래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다. 주일대사 공보관과 국회의장 공보비서관을 거치며 능력을 인정받아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권 때 주로 공보라인에서 활동했다. 김영삼 정부 때 공보수석과 환경부 장관으로 일했고, 1998년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특보를 지냈다. 2003년에는 여권의 정책을 만들어내는 여의도연구소장으로 활약했다. 그는 ‘범보수의 제갈량’, ‘한나라당의 전략통’, ‘대한민국의 장자방’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그만큼 여권의 핵심참모인 그가 왜 문재인 캠프로 갔을까.

통합 명분으로 윤여준 영입
문재인 캠프의 박영선 기획위원에 따르면, 문 후보는 윤 전 장관을 독대한 자리에서 “사회 통합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며 원로인 윤 전 장관께서 그 역할을 해주기를 부탁드린다”며 캠프참여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윤 전 장관은 “이번 대선에서 사사롭지 않은, 헌신적인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한다. 문 후보의 살아온 길은 항상 공익을 위한 것이었다. 무슨 일이든 돕겠다”며 캠프합류를 약속했다고 한다.
박영선 기획위원에 따르면 “문 후보와 윤 전 장관은 이념, 지역, 당파 등으로 쪼개진 한국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넘어 이제는 서로 상생하고 공존하는 통합의 지혜를 찾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인식을 같이 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가에서는 사회통합은 명분일 뿐,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윤여준 전 장관의 머리를 빌리겠다는 복안으로 보고 있다. 합리적인 보수주의자인 윤 전 장관을 통해 보수층까지 끌어안겠다는 문 후보 진영의 제안에 윤 전 장관이 문 후보의 킹메이커가 되겠다는 의사로 화답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캠프의 ‘국민대통합위원장’은 민주당인 전신인 새천년민주당에서 대표까지 지낸 한광옥 전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그러고 보면 여당과 야당의 대통합위원장도 자리바꿈을 한 꼴이다. 통합이라는 게 섞여서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박근혜 후보나 문재인 후보나 대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상대 진영의 인물을 영입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윤 전 장관은 한때 안철수 후보의 멘토로 불렸다. 그는 지난해 4월, 당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법륜 스님, 박경철 씨 등과 ‘청춘 콘서트’를 하며 전국을 돌았다. 그리고는 8월에 “안철수가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있다”고 언론에 알리면서 ‘정치인 안철수’를 처음 발견해낸 공로자가 됐다. 당시 그는 안 원장이 대선에서 제3후보로 나설 가능성에 대해 “과거 정치인 중 단기간에 치솟고 꺼지는 경우가 있지만 안 원장은 다르다. 안철수 개인에 대한 신뢰와 감동이 있고 그게 뿌리이므로 쉽게 꺼지지 않는다”라며 안 후보를 치켜세웠다.
이때부터 윤 전 장관은 기자들에게 안 후보의 멘토로 불렸다. 하지만 그는 안철수 후보와 결별했다. 안 후보의 정치참여를 기정사실화하면서 기자들에게 안 후보보다 몇 발짝 앞서나가는 발언을 한 것이 갈등의 주된 이유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당 정치에 큰 관심이 없는 안 후보와 생각의 차이도 컸다는 후문이다. 실제 안철수 후보는 “윤 장관이 여러 인터뷰를 통해 제가 출마할 확률이 90% 이상이라고 하셨는데, 제 생각이 아니다. 제3당 얘기 등등은 자신의 바람이지 제 생각이 아니다. 그래서 앞으로 그렇게 말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한 바 있다.

‘멘토’ 발언으로 안철수와 결별
불만이 쌓인 안철수 후보는 결국 작심발언을 꺼내놓게 된다. 안 후보는 당시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윤여준 멘토설’에 대해 “그분이 제 멘토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 솔직히 석 달 전 윤여준을 처음 뵙기 전까지는 이름도 몰랐다”라며 멘토를 자청한 윤 전 장관을 머쓱하게 했다.
그리고는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을 쏟아놓고야 만다. “그 분이 제 멘토라면 제 멘토 역할을 하시는 분은 한 300명 정도 되고, 또 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김제동 씨나 김여진 씨도 제게 멘토라 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안철수 후보의 정치인 자질을 발견해내고 그의 ‘킹메이커’를 꿈꿨던 윤 전 장관으로서는 ‘어린 친구에게 한 방 맞았다’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하다.
결국 윤 전 장관은 자신이 만들어낼 ‘킹’의 후보에서 안철수 후보를 제외시켰고, 결별했다. 이제 책사인 윤 전 장관에게 남은 킹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사실 윤 전 장관은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나선 박 후보와 인연이 더 많다. 그는 박 후보가 당대표로 총선을 진두지휘했던 2004년 한나라당의 총선전략을 짰다. 하지만 박 후보 주변의 강고한 ‘인의 장막’에 실망한 그는 결국 문재인 후보를 자신이 만들어낼 킹으로 선택하게 된다. 문재인 후보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여 안철수 후보의 첫 번째 경쟁자인 문재인의 멘토이자 킹메이커가 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는 ‘안철수 현상’으로 인해 선거지형이 야당에 유리하게 짜인 상황도 작용했다.

여행을 같이하다보면 친해지는 법이다. 안 후보와 청춘콘서트를 함께 진행하며 안 후보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윤 전 장관은 안 후보의 성격이나 장단점을 파악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보들이 후보단일화 협상테이블에서 어떤 형태로든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후보로서는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고급 참모를 얻은 셈이다.
실제 윤여준 전 장관은 안철수 후보의 대권 도전에 대해 “출마 선언이 많이 늦었다. 차라리 작년부터 시작했으면 나았을 것”이라고 깎아내린 뒤 “나는 안 후보가 총선 전에 당을 만들든지 해서 총선에 출마하고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안 후보는 정치경험이 없는 것이 약점이다. 참신성만으로 국가를 잘 운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안 후보에 대한 공격이 만만찮게 진행될 것을 짐작케 한다.
 

▲ 9월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동산에서 무소속 안철수 대통령 대선후보 캠프 박선숙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 캠프진영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선숙 전 의원>

“겉은 부드럽지만 속엔 철심”

윤여준 전 장관에 비견되는 안철수 후보 쪽 전략통 박선숙 전 의원(51)은 1984년 고 김근태 의원과 함께 민주화운동청년연합에서 여성국장으로 활동했고, 김근태 의원의 주선으로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부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김 의원과의 인연은 이후 평생 동안 계속됐다. 박 전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 집권 뒤 공보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가 2002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청와대 여성 대변인을 지냈고, 참여정부에서도 환경부 차관으로 일했다.
작고 연약한 체구에 동안(童顔)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겉 보고 속지 마라. 겉은 버드나무처럼 부드럽지만 속에는 철심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강단이 있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여성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당과 청와대, 정부를 두루 경험했고, 18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으로 일하면서 국감 우수의원으로 선정되는 등 ‘일 잘하는’ 국회의원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총선을 앞두고는 야권연대 민주당 협상대표로서 마음고생도 겪었다. “지역구를 놓고 동료들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야권협상의 대표가 지역구에 출마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맞지 않다”며 야당의 승리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는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으로서 부산 사상에 출마한 문재인 후보를 간판으로 내세워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공천 잡음 여파로 4월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 은인자중하던 박 전 의원은 9월 20일 민주통합당을 전격 탈당하고 안철수 원장의 대선 선거총괄본부장을 맡으면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당 전·현직 의원 중 탈당 후 안철수 캠프에 합류한 1호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박 전 의원은 선거시즌에 더 빛을 발하는 선거전략과 기획 전문가다. 2006년 5월 열린우리당 서울시장선대위 선거대책본부장으로 강금실 후보를 도왔고, 2007년 대선 때는 민주당 선대위 공동 전략기획본부장으로서 정동영 후보를 지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도왔고, 올해 3월에는 당 사무총장 겸 민주당 총선 선대위의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일했다. 4월 총선에 앞서 야권연대 협상 실무단 대표를 맡아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 단일화를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런 그가 왜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아닌 무소속 안철수 후보를 선택했을까.

김근태계와의 인연으로 참여
박 전 의원이 안철수 캠프에 참여한 것은 안 후보의 진정성에 매료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박 전 의원은 “(정치 참여 여부를 놓고) 오랜 시간 고심하는 안 원장을 보면서 그가 국민의 호출에 응답해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겠다고 결심하면 함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안 후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고, 그의 진심을 믿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전 의원과 안 후보는 김대중 정부 때 당시 정보화 시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조언을 주고받으며 만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안 후보와 만날 때마다 사회와 이웃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박 전 의원은 강금실 전 장관이 지난해 구성한 스터디그룹에도 참여해 ‘안철수의 사람들’로 알려진 이헌재 전 총리, 김효석 전 의원과도 자주 만났다고 한다.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 내 김근태계와 물밑교류를 해왔다는 점에서 박 전 의원의 안철수 캠프합류를 다른 프리즘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올해 4월 총선을 거치면서 민주당이 친노 색채가 강화되고 김근태 전 민주당 고문이 지난해 말 사망하면서 사실상 김근태계가 와해되는 바람에 안철수 후보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시도한 것이라는 시각이다. 실제 안철수 후보 캠프에는 유민영 대변인 등 김근태계 인물들이 많다.
국회의원 시절에도 주말이면 수행비서 없이 직접 운전하거나 버스나 택시를 이용할 정도로 소탈한 정치인인 박 전 의원은 ‘진심캠프’로 이름 붙여진 안철수 후보의 진정성을 무기로 단일화협상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의원은 “저의 결정이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라는 큰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길 바라고 또 노력할 것”이라며 선거승리를 다짐했다.
 

<윤여준-박선숙의 공통점과 차이점>

둘 다 온건한 합리주의자
윤여준과 박선숙, 문재인 진영과 안철수 진영의 전략통인 두 사람은 많이 다르다. 달변인 윤 전 장관이 정곡을 찌르는 공격형이라면 박 전 의원은 속이 깊고 신중하면서 말수가 적은 ‘크레믈린형’이다.
닮은꼴도 있다. 두 사람 다 학연, 지연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스타일이다. 윤 전 장관은 충남 논산 태생으로 경기고를 중퇴하고 단국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박 전 의원은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세종대학교 역사학과를 졸업했다.
두 사람 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성격이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윤 전 장관은 스스로 “중도성향의 합리주의자”를 자처하고 있고, 박 전 의원도 민주당에 있을 때 이른바 ‘조중동’ 언론과의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유연하다. 박 전 의원은 “미디어는 첫 번째 만나는 국민이다. 맘에 안 든다고 만나지 않으면, 조중동이 아니라 조중동의 독자인 국민까지 포기하는 것이다”는 언론관을 가진 ‘열린 야당인사’로 꼽힌다.
윤 전 장관은 “문재인 후보는 ‘통합의 정치’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열의 정치, 분노의 정치’를 극복할 것”이라며 승리를 낙관했다. 박선숙 전 의원도 “대선이 많은 걸 바꿀 것이다. 이번에 국민을 무시하는 낡은 세력의 권력을 연장시켜 주면 죄를 짓는 것이다”라며 캠프 인사들과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킹메이커를 자임한 두 전략통의 물밑 수 싸움이 점점 수면 위로 번지고 있다.
한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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