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유력 후보 3인방 ‘영입 전쟁’ 속살을 들추다

 

정치권에서 ‘철새’는 부정적 용어다. 소신, 신념을 팽개치고 권력을 좇아 이 당 저 당 옮겨다니는 정치인을 지칭한다. 선거철이면 으레 철새 무리의 이동이 관찰된다. 이번 대선정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선거철 당을 옮긴다고 무조건 철새로 낙인찍을 일은 아니다. 대중이 머리를 끄덕일 명분을 갖췄다면 얼마든지 달리 평가될 수도 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로 옮기고,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로 간 것은 어떤가. 민주당 전략공천으로 금배지를 단 송호창 의원, 새누리당에 몸담았던 김성식 전 의원이 무소속 안철수 후보 진영으로 날아간 것은 또 어떻게 봐야 하는가. 신념인가, 배신인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각 후보는 이들의 영입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을까.

한광옥 영입은 표 확장하려는 정치공학
민주당-윤여준 화학적 결합은 물음표

‘어제의 적’을 동지로 영입하는 것은 나름의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다. 상당수 정치 전문가들은 탈계파 인사 영입에 대해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통합 행보를 보이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평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대립 관계에 있던 인물들의 전격 영입으로 국민들에게 변화의 메시지를 던지는 건 효과적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각 후보 진영도 국민대통합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이런 정치공학적 접근이 진정한 통합의 길인지에 대해선 부정적 견해도 상존한다. 구시대적 인물이나 비리 인사를 끌어안을 경우 ‘독 묻은 사과’를 덜컥 삼키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율 교수도 인물영입의 효과를 말하면서도 “당파와 정파 상관없이 인사를 영입하는 것은 대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며 부정적 측면을 지적했다.

박근혜 품에 안긴 DJ 비서실장
한광옥은 DJ 사람이었다. 측근 세력인 동교동계 출신이다. 1981년 11대 국회에 민주한국당으로 정계에 입문해 내란음모죄로 구속된 DJ의 석방을 요구한 인연으로 합류했다.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이나 한화갑, 김옥두 전 의원과는 ‘출신성분’이 다르다. 이들이 가신 출신의 정통 동교동계라면 한 전 고문은 범 동교동계이다. 정통 측근 7명이 DJ 집권 전 임명직 포기를 선언한 덕에 한 전 고문은 ‘반사이익’을 누렸다. 청와대 비서실장, 초대 노사정위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그의 승승장구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나라종금 퇴출 저지 청탁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가시밭길로 들어섰다.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에게서 1억여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1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비리 인사로 낙인찍혀 정계 진출에 번번이 실패했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으로 나라종금 수사를 지휘한 사람이 안대희 현 새누리당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이다. 안 위원장이 한 전 고문의 영입을 두고 반발한 이유이다. 당 내부에서도 “언제부터 비리 전력자가 영입 대상이 됐느냐”는 반발이 터져나왔다.

이런 곡절로 그의 국민대통합위원장 내정은 철회됐다. 박 후보가 직접 위원장을 맡고 그는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국민대통합이란 시대정신을 이루는 과업에 제 모든 역량을 바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국민대통합은 시대정신이고 박근혜 후보도 이번 선거의 가치가 국민대통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DJ정부 시절의 이력을 밝히면서 자신감도 피력했다. “이제까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과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당시 노사정위원회 등 통합과 화합의 정치를 해왔고, 그 때문에 이런 책무를 맡긴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논란이 일 게 뻔한데도 박 후보는 한 전 고문을 왜 영입한 것일까. 그의 자신감처럼 영입효과도 자신할 수 있을까. 그의 영입 전략엔 호남 표심을 겨냥한 정치공학적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그는 DJ 인맥인 데다 고향도 전북 전주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공학이 호남 표심을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그는 민주당에서는 이미 역할을 잃은 ‘과거의 인물’일 뿐이다. 흘러간 물이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표를 확장하려는 정치공학적 측면이 상대적으로 부각될 수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으로 건너간 보수 진영의 책사
민주통합당 윤여준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은 한나라당 사람이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에서 안기부(현 국정원) 특보, 청와대 정무비서관, 환경부 장관 등 요직을 거쳤고 16대 국회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지냈다.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도 지냈다. 2002년 대선 당시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선거 전략을 맡았다. 전략기획통으로 ‘장자방’, ‘제갈공명’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탄핵역풍이 거셌던 2004년 17대 총선 때는 선대위 상근부본부장을 맡아 당시 박근혜 대표를 도왔다. 2006년 지방선거에선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장 후보로도 거론됐던 사람이다.

민주당이 그런 그를 영입한 것도 정치공학적 계산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문재인 캠프 기획위원인 박영선 의원은 “윤여준 전 장관의 합류는 계층적으로 합리적 보수까지 껴안아서 국민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문재인 후보의 노력의 일환”이라고 평했다. 문 후보는 약점인 친노(친노무현)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모든 정파를 아우르는 후보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려는 계산일 것이다. 

그러나 이 케이스 역시 논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윤 위원장의 정치이력이 민주당 인사들의 삶의 궤적이나 지향해온 가치와 워낙 다른 탓이다. 과연 민주당이 추구하는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등 진보적 가치와 맞느냐는 합리적 의심은 자연스럽다. 당내에선 “철새 정치인이 어떻게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된다”는 반발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윤 위원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긍하는 편이다. “민주화운동 때부터 쭉 그렇지요? 투신한 분들도 많이 계실 거고, 그런데 그분들이 볼 때는 저에 대한 감정 정리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뭐 그런 정도 비판은 저는 뭐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고, 저는 또 그런 비판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는 최근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과 윤 위원장이 이질감을 극복하고 화학적 결합을 이뤄낼 것인가. 아직은 섣불리 의문부호를 떼어내기 어려운 일이다.

송호철, 안철수 ‘새 정치’에 부합하나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게 ‘세력’은 절실하다. 인물 영입은 누구보다 그에게 시급한 일이다. 현실정치에서 조직을 갖추지 않고는 가치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민주통합당 박선숙, 송호창 의원, 새누리당 출신의 김성식 전 의원을 영입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후속으로 안철수 캠프에 몰려드는 인사들이 꼬리를 물 것이다.

문제는 인물 영입이 부정적 효과, 즉 안 후보가 내세운 ‘새 정치’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철새논란, 의원 빼가기와 같은 구태스러운 행위가 그가 추구하는 새 정치와 어울리는 것이냐는 의문이 고개를 들 수 있는 것이다.

당장 송 의원의 ‘이적’이 논란이다. 민주당 주변에선 “안철수식 정치 개혁 1호가 고작 의원 빼가기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송 의원은 안 후보 캠프로 자리를 옮기면서 “제 아이들의 미래를 낡은 정치세력에게 맡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전략 공천으로 금배지를 단 그가 ‘낡은 정치세력’을 비판하며 민주당을 떠난 것이다. 그럼 4·11 총선 당시에는 민주당이 낡은 정치세력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그래서 당시엔 공천을 받았는데 이제는 낡은 정치세력이라서 떠난다는 말인가. 송 의원의 발언은 자승자박한 꼴이다. 무엇보다 안철수식 ‘새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야권단일화를 대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그의 이적을 여당에서 야당으로, 야당에서 여당으로 이적하는 것과 똑같이 재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야권단일화를 염두에 둔 포석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문 후보와 송 의원은 각별한 사이다. 두 사람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출신으로 문 후보가 송 의원을 각별히 아꼈다고 한다. 송 의원 탈당에 문 후보는 “아프다”고 했고, 송 의원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눈물이 났다”고 했다.

향후 안 후보 캠프로 여야 정당의 정치인이 추가로 이적할 경우 크든 작든 논란이 일 것이다. 이 경우 단순히 정치공학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안철수식 새 정치란 게 도대체 뭐냐”는 비난이 일 수 있다.
지나치게 도덕적으로 포장된 탓에 ‘작은 실수’에도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낡은 체제와 대별되는 그의 ‘새 정치’가 구태 논란만으로도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안 후보로서는 취약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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