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수)까지 서울 종로구 백악미술관

[위클리오늘=최희호 기자] 점심 공양을 맛있게 하고 눈도 호강할 겸 편집국 직원들과 인사동을 거닐다 우연찮게 백악미술관 앞을 지나게 됐다.

빌딩 출입구에 늘어 선 예쁜 화환들이 시선을 끌었다. 서예가 유재 임종현 작가의 서예술전을 축하하는 꽃들이었다.

유재 임종현.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 및 초대작가(2002)

눈요기를 위해 잠시 짬을 내어 국장들과 함께 무작정 2층 전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큰 기대나 설렘 없이 찾은 곳이었지만 전시 공간으로 첫 발을 내딛는 순간, 하얀 바탕 위에 발묵과 갈필로 그려진 글씨들의 춤사위는 마치 흑로 무리가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군무를 추듯 한 글자, 한 단어에 새겨진 뜻을 담아 보는 이에게 묵직한 울림이 전해왔다.

임종현作 공(空) 56x50cm

바쁜 일상에 묻혀 그간 잊고 살았던 삶의 의미와 여유. 오늘 우연히 찾은 전시장의 작품들 속으로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특히 중국 송나라 도원이 저술한 불교서적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쓰여 있는 ‘百尺竿頭 進一步(백척간두 진일보)’를 정면으로 대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서 해태한 범부의 게으름에 잠시 스스로를 경책해보았다.

임종현作 진일보(進一步) 77x40cm

작품들 가까이 다가가 천천히 살펴보니 하얀 바탕은 전통 화선지가 아닌 캔버스였다. 아마 화선지라는 재료의 보존성 한계를 고민했을 작가의 갈등과 실험정신이 묻어났다.

아무튼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글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은 향기의 기운을 받아 전시장 계단을 내려왔다.

산뜻한 오후가 시작했다.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