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박이 같은 둘의 ‘닮은 꼴’정책 정밀 비교해부

▲ 지난 2009년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답변하는 안철수후보. 현재 그는 청와대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청와대 이전, 공수처 신설, 대통령·총리 권력분담…
정책마다 유사점 많아 ‘이재오, 안철수 멘토설’까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청와대 이전, 공직비리수사처 신설, 지방의원 정당공천 폐지 등 주요 정책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여야가 내세운 과거의 좋은 정책은 다 망라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중에 특히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이 평소 주장했던 정책과 상당 부분 비슷하다는 평도 적지 않다. 그 배경을 놓고 최근 정가에서는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안철수 후보 캠프 “오해다” 부인
이재오 의원 측 “만난 적도 없다”

장면 하나. 안철수 후보와 안 후보 캠프 산하 정치혁신포럼은 지난 7일 서울 중구 공평동 캠프 사무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청와대를 국민 곁으로 더 가까이 옮기겠다. 새로운 장소는 국민 여론을 수렴해 결정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지난 2002년 대선 때 정국을 뒤흔든 ‘행정수도 이전’을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었다.

안 후보는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를 더 들어야 하고 청와대는 더 낮아져야 한다. 국민이 제일 위에 있고 그 다음이 국회다. 제일 낮은 곳에 대통령과 정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에 ‘갇힌’ 권위적인 대통령이 아닌 ‘열린’ 대통령이 되겠다는 의지로 읽혀졌다.     

이와 관련해 안 후보 캠프의 이원재 정책기획팀장은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에게 새 정치를 보여드리기 위해서는 (청와대를) 물리적으로 옮기는 것이 상징적 의미가 있지 않겠나. 청와대가 더 열려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다는 상징으로 봐달라”고 설명했다. 정치혁신포럼 대표를 맡은 김호기 연세대 교수도 “대통령 권력이 투표를 통해 위임받은 것인 만큼 일하는 정부, 특권 없는 정부, 소통하는 정부로서 다시 자리매김하도록 청와대를 더 열고 낮추겠다는 정신이 중요하다. 청와대 이전을 국민적 공론에 부쳐보겠다”고 강조했다. 안 후보 캠프에 상주하고 있는 기자들은 당장 ‘청와대 이전’을 주요 기사로 내보냈다.  
 
이재오 “청와대 세종로로 이전”  
하지만 안 후보 캠프 기자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맥이 풀렸다. 청와대 이전은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이 이미 지난 5월 내놓은 정책이었던 것. 이재오 의원은 새누리당 대선경선 출마를 준비하던 지난 5월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 대통령 집무실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로 옮기고, 청와대는 박물관으로 활용해 국민에 개방하고, 외빈이 올 때는 영빈관으로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5월 29일에도 한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대통령과 청와대 직원들은 세종로 청사에서 일하면 된다. 마침 세종시 이전으로 정부청사의 절반이 비는 만큼 새로 집무실을 꾸밀 필요도 없다. 민주화와 산업화도 성공했으니 이제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통령 스스로 몸을 낮춰야 한다. 대통령이 먼저 바뀌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후보 측이 제기한 청와대 이전 구상과 취지나 맥락도 같고, 이전 장소도 훨씬 현실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이후 청와대 이전 정책은 정국의 이슈가 되지 못했다.   

안철수 후보 측의 ‘청와대 이전’ 구상은 안철수 캠프 쪽의 정책제안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라는 기관이 아닌 대통령 집무실을 국민과 가까운 곳으로 옮긴다는 선언적 의미라는 얘기다. 실제 안철수 후보도 지난 11일 세종시 건설 현장을 둘러본 뒤 기자들로부터 청와대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문제에 대한 입장을 질문받자 “그 문제는 제가 답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 같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는 이전 장소 문제를 두고 자치단체마다 논란이 벌어질 수 있는 데다  청와대 이전 구상이 생각만큼 여론의 지지를 못 받은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의 청와대 이전 발표에 대해 민주당 문재인 캠프의 이정우 경제민주화위원장은 “청와대 이전은 너무 뜻밖이다”고 뜨악해했고, 여론도 부정적이다. 한 네티즌은 “그 방만한 조직을 어디로 옮기고 새로 건물을 짓는단 얘긴가. 청와대가 거리가 멀어서 지금 이 모양인가?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지도자의 개혁의지가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권력분점은 이재오 소신 
 안철수 후보와 이재오 의원의 닮은 꼴 정책은 또 있다. 4년제 중임제 개헌과 분권형 대통령제의 신봉자인 이재오 의원은 지난 5월 “개헌을 해 나라를 바꾸고 대통령의 권한을 나눠줘야 한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통일·외교·국방 등 외치(外治)에 전념하고 내치(內治)는 국회가 선출하는 총리가 맡게 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의원은 “나는 대통령이 되면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위해 임기 2년을 내놓고 3년만 할 것이다. 대통령이 3년밖에 안 한다고 하면서 국가의 틀을 바꾸려고 하는데 누가 따르지 않겠냐”고 밝히며 개헌을 강력히 주장해왔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는 지난 9일 안철수 후보 측 핵심관계자의 입을 빌어 “안철수 대선 후보가 대통령은 국가의 미래 비전과 통일·외교·국방을 담당하고 나머지 국정은 국무총리가 책임지는 권력분담 구상안을 마련 중”이라고 보도했다. 당장 언론들은 안 후보가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문재인 후보가 주장해온 ‘책임총리제’에 화답한 것으로 해석했다.

권력분담 구상안이 후보단일화를 앞두고 ‘나는 대통령, 너는 총리’ 식의 자리 나누기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도되자 안철수 캠프 측은 “잘못 알려졌다”며 즉각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안철수 캠프가 정하고 있는 정책은 정치개혁 차원의 근본적인 권력분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이다. ‘정권교체’를 위한 일시적인 권력분점이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제도적 의미의 권력분점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이재오 의원의 정책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안철수 후보 캠프의 박선숙 공동선대본부장도 10일 “대통령과 총리가 부처를 나눠 역할을 분담하는 것은 우리 기존 법에서 보장된 권한의 범위는 아니다”며 현행법 내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한마디로 개헌을 해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공직비리수사처 신설도 재탕   
안철수 후보는 또 지난 7일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검찰공화국에 정의는 없다. 반칙이 통하지 않는 상식적인 사법체계를 만들겠다”며 “대통령으로부터 독립된 공직자비리수사처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고위 공직자 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은 민주당과 참여연대 등이 요구했던 정책이기도 하지만 이재오 의원의 오랜 소신이었다는 게 새누리당 주변 인사의 얘기다. 이 의원은 2009~2010년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재직하며 권력형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공수처 신설에 강한 집념을 보여왔다.

이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국민권익위원장 때 공수처를 추진하려 했지만 당시 야당이나 여당 내 반대파들이 ‘국민권익위원장의 권한을 강화하려 하는 것 아니냐’며 공격하는 바람에 실행하지 못했다. 공수처가 신설되면 장차관, 시·도지사,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관, 준장 이상 군인, 대통령 친인척 등의 태도나 자세가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밖에도 안철수 후보가 정치개혁 과제로 밝힌 ‘지방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는 지난달 이재오 의원이 정몽준 의원과 함께 발의한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이처럼 안 후보의 정책이 이 의원이 평소 주장해온 소신을 많이 반영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정가에서는 ‘이재오, 안철수 멘토’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이 의원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선대위 합류를 거부하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는 그럴듯한 분석도 뒤따랐다. 당장 안철수 후보 캠프는 펄쩍 뛰었다. 안 후보 비서실 관계자는 “(안철수-이재오 교감은) 금시초문”이라고 부인했고, 공보팀 관계자는 “이 의원 쪽과 무슨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니라 완전히 우리의 자생적인 구상이었다”고 밝혔다. 이재오 의원실 이태복 보좌관도 “우리가 안 후보측에 청와대 이전에 대해 정책 자문을 해준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의 좋은 정책을 가져다 쓰는 것까지 뭐라고 그럴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말해 안 후보 측이 이 의원의 정책을 벤치마킹했음을 내비쳤다.

“좋은 것 다 섞은 잡탕공약” 
안철수 후보 캠프의 정책들이 이재오 의원을 벤치마킹한 것뿐만 아니라 “새로울 것 없는 잡탕”이란 지적도 있다. 새누리당 정책위 관계자는 “안 후보가 내놓은 정책들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서부터 새누리당 이재오, 정몽준 의원의 구상까지 좋은 것은 다 모아놓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안 후보가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내건 ‘국정감사의 상시화’는 여야 합의로 올해 초 국회선진화법을 처리하면서 국정감사를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 이전에 실시하도록 규정해 이미 제도화된 사안이다. 안 후보가 집권시 발족하겠다고 밝힌 대통령 직속 교육개혁위원회도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됐던 새교육공동체위원회나 노무현 정부 때의 교육혁신위원회와 맥락이 비슷하다는 평가다. 안 후보 캠프는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매일 매일 구체적인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흡인력을 갖는 인상적인 공약을 찾기 어렵다는 게 캠프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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