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계곡마다 곱게 물든 단풍여행

 

 

“가을 날/ 햇살 눈부신 오후/ 어여쁜 단풍 숲 속엔/ 황홀하게 나를 부르는 누군가 있다.// 황갈색 빛 길 속으로/ 미로를 따라가면/ 그 어디엔 듯 아름다운 요정의/ 황금 궁전이 문 열려 있을 것 같다.// 한번 들면 다시 돌아 올 수 없을 것 같은/ 위험한 유혹으로/ 가을 숲은/ 나를 부른다.” (정태현 시인의 ‘가을 숲’)

설악이 온통 단풍으로 물들었다. 대청봉부터 시작한 단풍은 10월 중순이면 크고 작은 계곡을 따라 총천연색 물감을 뿌려놓은 듯 형형색색 물이 든다. 여름 내내 빛나던 푸른 잎들이 초록빛깔을 벗어던지고, 따가운 햇볕에 불타는 듯 황금빛 다홍치마로 갈아입는 모습은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으로 인도한다.

가을을 노래한 시인의 시구처럼 가을엔 가벼운 마음으로 숲으로 떠나볼 일이다. 이맘때를 손꼽아 기다렸던 트레킹족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다. 단풍으로 유명하다는 명산들이 제 각각의 멋을 자랑하지만, 특히 설악산은 여행객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빼어난 산세와 아름다운 계곡, 신비로운 암석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 숨겨진 자태를 드러내는 계곡 풍경이 선녀가 놀고간 듯한 분위기다.
제대로 된 단풍을 만나기 위해 접근성이 뛰어난 설악동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때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달리다 동홍천 나들목에서 44번 국도로 빠져 미시령터널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하지만, 나들이 길을 한가롭게 즐기려면 옛길로 가는 것이 좋다.
미시령에 터널이 개통되기 전 서울에서 속초까지 가는 길 마지막 지점에는 미시령 휴게소가 있었다. 갈지 자의 험한 산길을 계속 오르다 이곳에 다다르면 탁 트인 동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감동이 펼쳐진다. 조금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맛을 즐기려는 여행객들로 언제나 북적거렸던 곳이다.

미시령 옛길 드라이브의 맛
지금은 빠르고 편안한 터널을 이용하는 바람에 옛길에는 드문드문 관광객들이 몰고 올라오는 승용차와 자전거 여행객들로 한산하기 그지없다. 작은 찻집이 있던 미시령 휴게소는 이제 철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출입마저 어렵다. 차들이 자주 다니지 않기 때문에 여기저기 차량이 한가로이 세워져 있고 외설악의 수려한 단풍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여행객들만 분주하다. 이처럼 미시령 옛길 드라이브는 가을 설악의 또 하나의 매력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설악산은 강원도 속초시·양양군·고성군·인제군 4개 시·군에 걸쳐 뻗어 있으며 백두대간 줄기 가운데 가장 높은 산에 속한다. 7000여 개 크고 작은 봉우리가 그림처럼 솟아 있어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게 한다.
설악산은 보통 내설악과 외설악으로 구분한다. 요즘은 여기에 오색지구를 추가해 남설악으로 나누기도 한다. 내설악은 대청봉을 중심으로 한계령과 미시령을 이어서 서쪽 인제군에 속하는 곳을 말한다. 속초와 양양 등 동쪽 방향이 외설악이다.

외설악 메인 등산로로 꼽히는 소공원-천불동-대청봉 코스는 11㎞에 6시간 20분 걸린다. 천천히 오른다면 누구나 정상을 밟을 수 있지만 만만히 보고 올라가면 설악은 벌컥 화를 낸다.
하지만, 일 년에 딱 한 번 산행을 하는 ‘관광 산행객’이 등산장비를 제대로 갖추기는 어려운 일. 장비도 없고 저질 체력마저 염려된다면 소공원에서 비선대까지 가는 일명 ‘수학여행 코스’를 택한다. 비선대 코스는 수려한 계곡과 단풍을 맛보기에 좋은 곳이다.

▲ 숨겨진 자태를 드러내는 계곡 풍경이 선녀가 놀고간 듯한 분위기다.
시름 날리는 권금성 경관
가벼운 산행에 나선 가족단위 행락객이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으로 가는 길이 제격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20여 분 좁은 등산로를 걸으면 우뚝 솟은 화강암과 기암절벽을 만난다. 해발 700m로 설악산 6부 능선인 권금성에 도달하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바위에 걸터앉아 병풍처럼 펼쳐진 경관을 보고 있노라면 세파에 찌든 시름이 절로 사라진다.

설악산은 요즘 부쩍 부연 안개가 자주 낀다. 안개로 잔뜩 흐려 먼 산까지 바라볼 수는 없지만 찬란한 단풍의 자태를 감상하기에는 크게 부족함이 없다. 날씨가 맑은 날 권금성에 오르면 설악산 일대는 물론이고 속초 시내와 동해 바다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단풍도 보고 바다도 감상하는 일거양득의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설악동에서 출발하는 단풍길 산행으로는 울산바위코스와 육담폭포·비룡폭포 구간, 비선대·금강굴 구간이 있다. 모두 한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등산로지만 울산바위에 오르는 길에서는 필시 거센 바람과 조우하게 된다. 그래서 산행에 알맞은 방풍·방수 재킷과 등산화, 스틱 등 장비를 갖추는 것쯤은 기본이다.

이번 주말 화채능선이 제격
이번 주말 곱게 물든 단풍을 보기 위해서는 다른 곳보다 조금은 일찍 단풍이 찾아오는 화채능선이나 서북능선, 공룡능선, 용아장성 쪽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그림엽서에 나오는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붉게 물든 단풍, 그리고 눈이 시리도록 맑은 물에 하늘을 가린 아름다운 나무들이 투영된 수채화 같은 모습의 절경을 보려면 천불동이나 십이선녀탕 계곡을 찾아가야 한다. 이곳에서는 이달 말에나 제대로 된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아름다운 계곡과 소들이 꿈길처럼 펼쳐지는 곳을 보고 싶다면 장수대분소-대승폭포-대승령-두문폭포-복숭아탕-응봉폭포-남교리탐방지원센터로 내려오는 코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총 12㎞, 7시간 걸리며 중간 중간 가파른 길이 있지만 화려한 풍광에 정신이 팔려 다리 아픈지도 모른다. 이름부터 남성적인 판타지를 강하게 풍기는 공룡능선은 설악의 기암절벽 풍광의 정수로 꼽히는 곳이다. 이곳에 도전하려면 일단 장비를 제대로 갖춰야 하며 한 달에 두세 번 동네 산이라도 올라갔던 체력이 필수.

설악산 한복판에 있는 공룡능선 탐방에는 소공원-마등령-공룡능선-희운각-소청-대청-귀면암-소공원 코스로 내려오는 코스가 대표적이다. 백담사-봉정암-대청봉-중청산장-희운각-공룡능선-마등령-백담사 코스도 있고 천불동 계곡을 경유하며 단풍을 즐기는 코스 등 다양한 구성이 가능하지만 당일에 산행을 마치기는 쉽지 않다. 1박 2일 산행이 보통이며 미리 서둘러 대피소를 예약하는 것이 좋다.

가을 정취 물씬한 미천골
한계령 정상 부근과 선녀가 내려와 목욕했다는 옥녀탕 인근도 단풍 명소다. 명소 단풍 맞이를 놓쳤다고 해서 그리 서운할 건 없다. 다음달 초까지는 수많은 크고 작은 계곡에서도 화려한 설악산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가을 정취에 빠지고 싶다면 미천골로 가면 된다.

옛날 큰 절에서 밥을 짓기 위해 쌀 씻은 물이 계곡으로 하얗게 흘러내려 쌀 미(米) 자를 써서 미천골이라 했다고 전해내려 오는 오지 중의 오지. 하지만, 이곳에도 수년 전부터 미천골자연휴양림이 생기고 아름다운 펜션들이 하나둘씩 들어서 하루쯤 숙박하는 데는 큰 걱정이 없다. 구룡령에서 양양 쪽으로 내려가다가 선간판을 보고 들어가면 된다.

환상의 용대리~만경대 코스
특히 환상적인 가을 단풍을 만나고 싶다면 용대리부터 백담사를 거쳐 만경대까지 오르는 코스가 제격이다. 만 가지 경치를 볼 수 있다고 해 만경대라 이름 지어진 곳이 설악산에는 세 군데 있다. 그중 내설악 만경대는 오르기 쉬우면서도 단풍이 곱고 화려해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는 백담계곡을 따라 걸어갈 수도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면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백담사를 출발해 수렴동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고운 빛깔의 단풍이 흰 돌탑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만경대에 오르는 길에 마주치는 오세암은 백담사의 부속 암자로 편안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폭설 때문에 고립된 다섯 살 아이가 성불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정채봉의 동화 ‘오세암’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가을단풍을 보기 위해 요즘 설악동지구를 찾은 관광객만 하루 평균 3만여 명.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측은 주말마다 12만 명 이상이 설악산에서 단풍관광을 즐길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들어 주중 단풍 관광객 가운데 상당수가 일본과 중국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이다. 주중에 국내 여행객의 빈자리를 외국인들이 메워주는 셈이다. 우리는 천하절경을 보겠다며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이 일본과 중국, 동남아인들은 단풍으로 물든 설악산을 보겠다며 찾아오고 있다.

 <여행안내(지역번호 033)>

<교통> 동해고속도로 현남나들목까지 가서 속초방면으로 나와 해맞이공원에서 좌회전하면 된다. 서울외곽순환도로를 이용할 경우 강일나들목에서 연결되는 서울춘천간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고속도로가 끝나는 동홍천나들목으로 나간다. 44번 국도를 달리다 미시령길을 이용해 설악동으로 간다. 설악산 단풍 여행 정보 문의는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636-7700)에 하면 된다.

<숙박> 미시령을 지나자마자 대명·일성·한화 등 대형콘도시설이 즐비하다. 설악동 인근에도 민박과 호텔·여관 등이 다수 있다. 숙박협회 설악동지부(636-7050)나 속초시지부(633-4471)로 문의하면 숙박업소를 소개받을 수 있다.

<맛집> 설악동에서 속초시내 쪽으로 가는 길에 학사평순두부와 신흥순두부촌이 있다. 옛날할머니순두부(636-8641), 초당순두부(635-6612), 초원순두부(636-5229)가 유명하다. 특색 있는 먹을거리를 찾는다면 속초 영랑동에서 곰치국을 하는 사돈집(633-0915)과 생선찜이 전문인 이모네식당(637-6900)을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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