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슈 영화들 대충돌 막후

                  <유신의 추억> 제작 발표회 모습. [사진=뉴시스]
 “여러분 드라마 <영웅시대> 다들 보셨죠? 지금이 바로 영웅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선거유세에 나선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 말이다. 드라마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 대통령 역할을 맡았던 유 전 장관은 선거 유세에서 드라마 <영웅시대>를 언급했다.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과 고 이별철 삼성그룹 회장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영웅시대>엔 현대그룹 재직 시절의 이 대통령이 나온 터라 이를 상기시키는 발언이었다. 이미 2005년 3월에 종영한 드라마지만 당시 대선에서 이 드라마는 톡톡히 활용됐다. 그로부터 5년 뒤, 2012년 대선에선 영화계가 움직이고 있다. 대선을 앞둔 10월과 11월에 굵직한 ‘정치 영화’들이 연이어 개봉하는 것. 충무로에선 이미 대선보다 치열한 ‘정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 앞두고 ‘색깔’ 지닌 영화 봇물
군사정권 인권 유린, 육 여사 추모 등 담아 대조

80년대 그린 <남영동 1985>과 <26년>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다. 영화 <부러진 화살>로 상당한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킨 정 감독은 <남영동 1985>를 통해 고문이 난무하던 80년대 현실을 담담히 그려냈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겪은 22일간의 고문 상황을 묘사한 이 영화는 김 고문의 자전적 수기 <남영동>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그렇지만 영화는 김 고문 개인의 삶보다 그가 겪은 ‘고문’, 그리고 그 시절의 고문을 기록해 어두운 역사의 현실을 마주보는 데 중점을 뒀다. 이런 까닭에 영화에는 실존인물 김근태 대신 ‘김종태’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정 감독은 “개봉 시점을 11월로 정했는데 이는 주위 분들이 대선 전에 개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기 때문이다”라며 “나는 이 작품이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작품이 사회에 반영되고 뭔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감독으로서 보람된 일이라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정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가 “대선 후보들을 반드시 시사회에 초청할 것이다. 초청에 응해주실지 모르겠지만 난 이 작품을 대선 후보들이 다 봤으면 좋겠다. 바로 이 작품 통해서 우리 사회가 통합과 화해의 길로 갈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조근현 감독의 <26년>은 인기 만화가 강풀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아 제작 발표 때부터 화제가 된 영화. 역시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2세들이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벌이는 극비 프로젝트를 그리고 있다. 진구 한혜진 배수빈 등이 출연한 이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 워낙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받은 작품이라 개봉 성적에도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제작사인 청어람 측은 11월 29일로 개봉일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영동 1985>와 <26년>은 모두 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의 민주화운동과 인권 유린 실태를 담고 있다. 이번 대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영화지만, 군사정권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맥이 이어져온 점을 감안하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에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

대선 시즌을 정면 겨냥한 <MB의 추억>
10월 18일 개봉하는 영화 <MB의 추억>은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직접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영화는 2007년과 2012년을 오가며 2007년 당시 이 대통령의 유세 모습과 그가 한 공약, 그리고 2012년 현 상황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김재환 감독 역시 정 감독과 마찬가지로 <MB의 추억>이 이번 대선에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는 입장이다. “나는 ‘영화감독이 한 발 뒤로 물러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라며 “감독이 기획하고 촬영하고 또 편집하는 과정에서 절대 객관적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 <MB의 추억>이 말하는 바는 바로 선거의 중요성이다. 국민에게 진정한 주권이 주어지는 날은 오직 선거일 당일뿐이니 선거를 잘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주류를 이룬 영화인 터라 역시 여당 후보인 박 후보에겐 대선에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김 감독은 이런 시선을 경계한다. 김 감독은 “이 영화는 선거를 잘 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상식을 담은 상식적인 영화일 뿐”이라며 “오히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유권자의 선거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우리 영화를 활용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최근 민주통합당 노웅래 의원이 공개한 ‘영화 <그녀에게> 관련 보고’라는 문건이 정가에서 화제가 됐다. 노 의원이 공개한 이 문건에는 영화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를 활용한 다양한 박 후보 홍보 방안이 담겨 있다. 제작 초기부터 ‘박근혜 띄우기’ 영화라는 논란을 일으켰던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가 개봉을 앞두고 정치권의 공세에 활용되기 시작한 셈이다. 

영화 속 박정희와 육영수 현실의 박근혜 후보
박 후보의 모친인 고 육영수 여사의 삶을 다룬 이 영화는 육 여사의 생일인 11월 29일에 즈음해 개봉할 예정이다. 문건에는 예산 45억 원 가운데 25억 원 정도가 들어왔다고 적혀 있었다. 45억 원이라면 블록버스터 급은 아니지만 상당한 규모의 극영화 한 편을 제작할 수 있는 돈이다. 또한 한은정 감우성 등 스타급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정가에서 엇갈린 시선을 받겠지만 ‘육영수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에선 박 후보에게는 대선 가도에 상당한 플러스가 될 수 있는 영화다.

반면 박 후보의 부친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도 있다.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라는 제목으로 유신 선포 40주년에 맞추어 제작된 영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담긴 것으로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다.

같은 시점에 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두 편의 영화가 개봉되는데 두 편의 주인공이 남편과 부인으로 각기 다르고 정치적 관점 역시 정반대다. 게다가 이 부부의 딸은 대선 후보로 두 영화에 따른 손익을 생각해야 하는 입장이다. 어쩌면 2012년 가을 극장가에서 벌어지는 이 기묘한 상황이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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