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대선출마 선언 일파만파

야권의 준플레이오프 격인 민주당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대세론에 힘입어 손학규·김두관 후보를 따돌리고 당선을 확정지었다. 여기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선출마를 결심하면서 바야흐로 19대 대선의 빅 이벤트인 문재인 VS 안철수 ‘플레이오프’가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일찌감치 대선레이스를 시작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12월 19일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결승전 못지않은 명승부가 예상되는 두 대선후보의 플레이오프가 벌써부터 추석민심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양 진영의 캠프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 초반 기선을 잡기 위한 내부준비에 들어갔다.

 

안철수, 문재인 대선후보 확정되자 출마선언으로 맞불 

 5·18묘지 참배 등 자리 선점하는 타이밍정치로 ‘김빼기’    

 

 지난 14일, 대선출마를 결심한 안철수 원장이 5·18묘지를 참배했다. [사진=뉴시스]


안철수 원장은 지난 9월 14일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외부에 일정을 알리지 않은 깜짝 방문이었다. 주로 대선 주자나 여야 주요 지도부가 정치적인 행사를 앞두고 참배해온 5·18묘지를 안 원장이 참배했다는 것은 삼척동자가 보더라도 대선 출마 행보로 해석됐다.


안철수 원장 측 유민영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안철수 원장의 5·18묘지 참배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을 몇 차례나 수정해 이메일로 보냈다. 출마선언으로 이어질 국민보고회 형식의 기자회견을 위해 외신기자단을 포함한 200여 명이 참석 가능한 장소를 찾고 있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동안 언론노출을 꺼리며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거나 정중동의 조용한 행보를 보여온 안 원장 측으로서는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신속하고 적극적인 홍보였다. 그만큼 출마준비가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비쳐졌다. 언론의 관심은 즉각 안철수 원장에게 쏠렸다.


사실 안철수 원장 측은 문재인 후보가 상승세를 탈 때마다 ‘타이밍 정치’로 김빼기를 하거나 교묘하게 ‘문재인 죽이기’를 해왔다. 안 원장은 지난 11일 오후 유민영 대변인을 통해 “민주당 대선후보 선출이 끝나는 대로 며칠 내에 대선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날마다 발표하는 야권 단일후보 양자대결에서 문 후보(39.5%)가 안 원장(37.1%)을 처음으로 앞섰다는 보도가 나온 날이었다.

안철수의 ‘타이밍정치’는 전문가급

안 원장은 7월 23∼30일 치러진 민주당 예비경선을 전후해서는 책 <안철수의 생각>을 출간(7월 19일)하고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출연(7월 23일)하는 등 국민들의 관심을 민주당 예비경선이 아닌 안철수 자신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인지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마의 10%’대를 왔다갔다 해야 했다.


지난 6일 문재인 후보가 경선일정의 분수령으로 여겨진 광주·전남 경선에서 1위를 차지해 지지율 상승의 기회를 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안 원장 측에선 이날 금태섭 변호사가 “새누리당 정준길 공보위원이 뇌물과 여자 문제를 폭로하겠다며 안철수 원장의 불출마를 종용했다”는 폭로 기자회견을 열었고, 이 때문에 언론의 관심이 모두 ‘불출마 협박’ 논란에 쏠렸다.


이번 5·18 민주묘지 방문도 민주당의 핵심지역인 ‘호남 민심’을 의식한 고도의 이미지정치라는 해석이다.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뒤 찾아갈 참배 장소를 안 원장이 미리 ‘선점’하는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문 후보가 찾아갈 참배 장소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가 있는 김해 봉하마을로 한정시키면 문 후보가 넘어서고자 애쓰는 친노 이미지만 강화시키는 셈이 된다.


민주당 후보 결정 뒤 대선출마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겠다는 ‘이벤트’도 같은 맥락을 띠고 있다. 적절한 타이밍정치로 효과를 거뒀다는 분석이다. 안철수 원장이 대선출마 입장을 밝히겠다고 하자 안 원장의 지지율은 소폭 상승했고, 문재인 후보는 지지층이 일부 안 원장 쪽으로 옮겨가면서 감소했다. 안철수 원장 측은 앞으로 전개될 단일화협상에서도 여론조사 문제를 둘러싸고 민주당에 선제공격을 할 공산이 크다. 조직력에서 앞서는 민주당 후보가 자신들의 장기인 모바일 투표를 통한 단일화를 제안할 것을 염려하는 안철수 원장 측에서 전혀 낯선 단일화 방법을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안철수, 자원봉사자와 SNS로 선거 치를 듯

안철수 원장 측은 선거에 임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최고 전문성을 가진 40~50대의 각계 전문가 300여 명이 포진한 인적네트워크를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여의도에 대규모 캠프를 차리는 대신 자원봉사자와 SNS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안 원장 측은 단일화 협상을 대비해 박원순 서울시장, 조국 서울대 교수, 송호창 민주당 의원 등 시민사회출신 인사들을 비롯해 안 원장의 출마를 촉구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세웅 신부 등 범야권 원로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안철수 원장은 지난 13일 박원순 서울시장을 30분간 비공개로 만난 바 있다. 지난해 안 원장으로부터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 받은 박 시장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받았다는 후문이다.


민주당이 대선 캠프의 외부인사 영입 1순위로 꼽고 있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단 민주당 선대위 참여를 거절한 상태로 안 원장 측과 긴밀히 결합할 수 있는 인물로 꼽힌다. 조국 교수는 안 원장과 민주당 측 양쪽 모두와 가까워 앞으로 남은 가장 중요한 정치일정인 후보단일화 중재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조국 교수는 “양쪽이 서로 부딪히고 싸우는 일이 없도록 제가 직접 나서야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단일화 과정에서 역할론을 자임한 바 있다.

문재인 진영은 안철수의 맞불작전에 불쾌감

문재인 후보 진영은 안철수 원장 측의 맞불작전과 ‘김빼기’에 불쾌한 기류가 역력하다. 문재인 후보 캠프의 공보담당자는 “그런 정치는 유권자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 그때그때 현안에 맞추어 타이밍정치를 하는 행태가 큰 역사의 흐름에서 순기능으로 작용할지 의문이다”라고 평가절하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대선후보 확정이라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우선 당 내부를 정비하는데 신경을 써야 할 처지다. 검찰에 의해 기소된 양경숙 ‘라디오21’ 전 대표가 지난 6월 민주통합당 당대표 경선 때 이해찬 후보 측에 수억 원을 지원했다고 진술했고, 양 전 대표에게 돈을 건넨 공천 희망자들도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직접 비례대표 공천을 부탁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제1야당에 대한 검찰의 의도적인 흠집내기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내부 사정이 간단치 않다.

당 일각에선 친노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이해찬 당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2선후퇴론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해찬·박지원 담합 논란이 대선 경선 과정까지 이어져 이른바 ‘친노 당권파의 패권주의’ 논쟁으로 번진 상황에서 문재인 후보로 당력을 모아 대선을 치르려면 현 지도부가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90일 플레이오프, 피 말리는 경쟁 스타트

다행히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현재 상승세다. ‘야권후보 단일화 때 누구를 지지하겠느냐’는 야권단일 후보 적합도 질문에서 문 후보는 안 원장을 미세하나마 앞서고 있다. 하지만 양자대결에서는 안 원장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오차범위 내에서 다투는 데 비해 문재인 후보는 10%p 가까이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 국민들의 선택을 머뭇거리게 하고 있다. 남은 90여 일 동안 안 원장과 문 후보는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피 말리는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른바 ‘인혁당 역풍’으로 박근혜 후보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면서 야권의 대권 플레이오프는 한층 더 달궈지고 있다. 이미 두 주자의 칼끝은 조용히 서로를 향하고 있다.
나권일 기자 nafree@weeklytoday.com


김두관은 벌써 ‘유체이탈’?
여의도에 안철수-김두관 연대설 모락모락

문재인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됐지만 민주당 주변에서는 불공정 경선 시비로 감정이 상해 있는 비(非) 문재인 진영이 안 원장 쪽으로 쏠릴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정몽준 의원으로의 단일화를 요구하며 생겨났던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같은 그룹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문재인을 돕나 안철수를 돕나....김두관 전 경남지사의 심정이 복잡하다.
 

 여의도에 떠돌고 있는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김두관 전 경남지사와 안철수 원장의 ‘제휴설’이다. 안철수 진영의 부족한 조직과 인력을 김두관 캠프의 인력과 조직으로 메꾸는 윈윈 전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김두관 캠프의 한 인사는 “캠프 내부에서 안철수 원장과 손을 잡자는 의견이 나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차차기까지 보고 있는 김 후보로서는 최악의 경우 민주당 탈당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나설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그러면서도 “몸은 민주당에 있어도 마음은 안 원장을 돕는 것은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여운을 남겼다.


실제 김 전 지사도 경선을 전후해 안철수 원장에 대해 지속적으로 구애를 편 바 있다. 김 전 지사는 지난 7월 26일 KBS 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출연한 자리에서 “야권 후보 중에서 가장 확장성이 강한 후보는 안 원장과 저 김두관이다. 안철수-문재인 연대보다는 김두관-안철수 연대가 훨씬 더 확실한 대안”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8월 8일에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자신과 닮았다면서 “(안 교수와는) 한국 정치판을 갈겠다는 것이 똑같다”고 구애작전을 폈다. 이튿날인 8월 9일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 관계자들과의 면담자리에서는 “안철수 교수가 저와 손을 잡지 않으면 손해”라고 말했고, 9월 6일에도 “참 훌륭한 분이다. 소통이 되고 대화가 되는 분이다”며 호감을 나타낸 바 있다.


김두관 전 지사는 현재 공식적으로 “제가 문재인 후보 선대위원장을 맡는 게 도움이 된다면 하겠다”며 문재인 후보 중심으로 돕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안철수원장에게 기울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지사의 ‘유체이탈’이 임박했다는 얘기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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