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아름다움 간직한 단풍여행 안내

▲ 보트를 타고 붉게 물든 단풍나무 숲을 지나는 관광객들.

가을은 진한 가슴앓이를 하게 만드는 계절이다. 옷깃을 스치는 바람에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고, 고운 솜이불처럼 길을 덮는 낙엽을 밟으며 추억에 잠기곤 한다. 깊어지는 가을에 훌쩍 배낭여행이라도 떠나고픈 생각이 고개를 들면, 한번쯤 용기를 내어 가볼 만한 곳이 있다. 사람이 빚어 어느새 자연이 된 공원,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유서 깊은 이 공원에서 다채로운 가을 정취에 취하다 보면 시름도, 그리움도 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듯하다.

뉴욕의 가을은 언제나 화려하다. 맨해튼 한가운데 있는 센트럴파크는 더 더욱 그렇다.
아침햇살이 호수에 비쳐 생선비늘처럼 반짝이는 어느 가을날. 아주 잘생긴 청년이 덩치 큰 흰색 개를 데리고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반바지 차림으로 힘차게 내달리고 있었다. 군살이 없는 매끈한 허리와 다리, 그리고 떡 벌어진 어깨선은 뭇 여성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불과 3세 때 괴한이 쏜 총에 아버지를 여의고, 엄한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그의 밝은 표정에서 과거의 그늘을 발견할 수 조차 없었다. 많은 사람은 아버지의 장래식장에서 거수경례를 하던 그의 어린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하며 가슴 아파했다. 그로부터 30년 후. 비범한 눈빛을 지닌 그는 센트럴파크 산책로에서 만난 매혹적인 한 여성에게 흠뻑 빠졌다.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가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여인은 갈색머리에 단아한 모습의 캐롤린 베셋. 그녀는 세계적인 패션회사인 켈빈 클라인에서 홍보담당자로 일하고 있었다. 캐서린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는 명문 브라운대학교 법대와 뉴욕 로스쿨을 졸업한 뒤 두 차례의 고배를 마신 끝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 맨해튼에서 검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장차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1996년 <피플>지 선정)으로 뽑히게 될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다름 아닌 미국 제35대 대통령인 존 F.케네디의 아들인 존 F.케네디 주니어.

그의 끈질긴 구애 끝에 두 사람은 1995년 9월 결혼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해 <조지>라는 정치·문화잡지를 창간, 대표 겸 편집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친다.

하지만, 그의 불같은 사랑과 인생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9년 7월 경비행기를 몰고 사촌동생의 결혼식에 가던 중 보스턴 인근 바다에 추락했다. 그리고 함께 타고 있던 그의 영원한 연인 캐서린 베셋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38세. 유가족들은 유품 일부를 그들이 매일아침 조깅하던 센트럴파크에 있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호수에 뿌렸다. 이 호수는 케네디 주니어의 어머니 오나시스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케네디 주니어와 아리따운 아내 캐롤린 베셋이 그토록 사랑하던 센트럴파크는 올해 가을에도 그들의 인생만큼이나 화려하다.

뉴요커들이 가장 사랑하는 곳

▲ 가을 분위기에 젖어드는 센트럴 파크.
뉴요커들에게 ‘뉴욕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을 물으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대답이 센트럴파크다. 금싸라기 같은 맨해튼 한 중심에 341만㎡나 되는 공원이 들어서게 된 것은 한 신문기자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1850년 윌리엄 브라이언트기자는 <뉴욕포스트>에 ‘도심에 공원을 건립하자’는 짧은 칼럼을 게재했다. 때맞춰 뉴욕 시장선거가 실시되면서 후보들이 너도나도 공원건립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때 시작된 공사는 자그마치 100년이 지난 1960년대에 와서야 완공됐다.

공원 디자인은 조경건축가인 페드릭 로 옴스테드와 칼버트 복스가 담당했다. 세계 처음으로 조경공학이라는 학문이 공원건설에 동원된 셈이다. 그래서 센트럴파크는 ‘조경도 공학의 일부이고 공원건설에도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작품이다.

공원이 들어서기 전 이곳은 채석장이자 돼지농장과 무허가 판자촌이 즐비한 곳이었다.
센트럴파크는 단순한 공원이라 말할 수 없는 곳이다. 동물원이 있고 테니스장과 야구장 등 각종 운동시설에 암벽등반 코스까지 갖추고 있다. 여름에는 야외수영장과 이동식 놀이공원이 문을 열어 아이들을 부른다. 또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에는 뉴욕 스카이라인을 만끽할 수 있도록 30층 높이의 하늘로 올라가는 열기구를 운행한다.

단풍 수놓인 산책로 백미
그래도 센트럴파크의 백미(白眉)는 단풍과 고층건물, 잔디밭이 어우러진 가을의 산책로라 할 수 있다. 단풍으로 둘러싸여 환상적인 분위기는 여느 풍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다. 공원을 한 바퀴 도는데 자그마치 9.9㎞로 5시간 이상이 걸린다.

센트럴파크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은 영화 <뉴욕의 가을>이다. 이 영화를 보고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센트럴파크를 동경하게 됐다. 그리고 실제로 뉴욕여행의 필수 코스에 이 공원을 넣게 됐다. 매년 수천만 명이 센트럴파크를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센트럴파크는 어디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맘때쯤에는 5번가 동쪽 문으로 가는 것이 제격이다. 문을 통과하면 <나 홀로 집에>에 나오는 울먼 메모리얼 아이스링크가 보인다. 겨울에는 아이스 스케이트 링크로, 여름에는 테니스나 미니 골프를 위한 코트로 이용된다.

황토가 깔린 좁은 도로를 따라가면 센트럴파크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전해주는 데어리가 보인다. 관광안내소와 기념품점으로 이용되는 빅토리아 고딕 양식의 이 건물은 1873년 지어질 당시엔 소와 양을 사육하는 용도로 이용됐다. 인근에는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동물원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그 안에는 100여 종의 다양한 동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연중 문을 연다. 인스코아치를 지나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나는 카루젤 회전목마와 만난다.
이어 거대한 유리온실처럼 생긴 태번 온 프아치를 지나 더 그린으
로 가야 한다.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행운이다. 이곳은 2년 전 뉴욕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식당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잔디밭인 시프메도에 다다르면 두 번 놀라게 된다. 양을 풀어 기르던 곳이라는 유래에 걸맞게 잔디밭의 크기에 놀라고, 잔디밭에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는 인파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이매진, 존 레넌의 추억
센트럴파크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스트로베리 필드 기념공원과 만나야 할 시간이다. 비틀스의 맴버 존 레넌이 살았던 다코타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공원의 한 모퉁이를 아내인 요코가 기념공원으로 만들었다. 존 레넌의 대표곡 ‘이매진’(Imagine)이 새겨져 있는 비석 위에는 언제나 팬들이 갖다 놓은 장미꽃이 수북이 쌓여 그를 추억하고 있다. 이 비석은 한 이탈리아 팬이 기증한 것이며, 스트로베리 필즈라는 이름은 비틀스의 노래에서 따왔다고 한다.

공원의 중심부에 위치한 베데스다 분수 앞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뮤지션들이 펼치는 무료 공연과 마술, 이벤트 등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센트럴파크 보트하우스에서 눈을 들어 동쪽을 보면 영화 <뉴욕의 가을>에서 봤던 아치형 다리가 호수 위에 걸쳐 있다. 이날도 여전히 많은 선남선녀가 모여 사진을 찍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무선 조정 보트들이 떠다니는 콘서버토리 연못을 중심으로 멀리 두 조각상이 보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오리에게 <미운 오리 새끼>를 읽어주는 안데르센 조각상이다. 앨리스 조각상 위에는 아이들 올라가 장난을 치고 있다. 거북이가 우글거리는 터틀폰드 옆으로 가면 스코틀랜드풍의 벨베디르 성이 기다린다.

50년 전 지어진 델라코르테 극장을 보지 않고 공원을 나서는 건 예의가 아니다. 여름엔 주로 야외공연이 펼쳐진다. 여기서 먹는 수제 햄버거는 맛과 양에서 이방인의 허기를 채워주기에 그만이다. 극장 옆에는 로미오와 줄리엣, 템페스트의 조각상이 나란히 서 있다.

동상으로 만나는 영웅·위인들
이외에도 공원에는 79번가와 86번가 사이에 있는 22만 3000㎡에 달하는 그레이트 론과 콘서버토리 가든 등이 있다. 그리고 곳곳에 베토벤, 콜럼버스 등 수많은 위인과 영웅들의 동상들이 도열하듯 세워져 있다. 센트럴파크를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도 어딘가 아쉬움이 남아 있다면 관광 꽃마차 혹은 페디캡이라 불리는 ‘자전거택시’를 이용해 공원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좋다.

공원투어를 마치고 82번 스트리트로 걸어오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나타난다. 충실한 내용과 볼거리로 사랑받고 있는 이곳은 매년 5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공원을 마음껏 즐겼다면 빠져나올 때쯤이면 땅거미가 지고 어스레한 상태가 될 시간이다. 거리는 어둠이 찾아와도 분주히 오가는 뉴요커들로 여전히 활기가 넘쳐난다. 센트럴파크를 나서면서 언제든지 가족과 피크닉을 즐길 뉴욕커들이 한층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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