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강력범죄 대처법 담은 책 <경민편>

 

흉악범죄가 날로 기승을 부리면서 보다 강력한 처벌 법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과연 수백 년 전 우리 선조들은 이른바 강력범죄에 어떤 방식으로 대처했을까. 최근 아카넷출판사에서 출간한 <경민편>을 보면 당시 범죄 유형과 도덕적 풍경 등 시대상을 엿볼 수 있을 듯하다.

황해도 감사 지낸 김정국의 책 ‘경민편’ 완역·해설
범죄적 일탈에 대한 국가의 법·도덕적 대응 방식 담아

‘교화와 형벌의 이중주로 보는 조선 사회’를 부제로 한 이 책은 조선 중종 때 황해도 감사를 지낸 문신 김정국(1485~1541)의 원저 ‘경민편’(警民篇)을 우리말로 완역하고 현대적 관점에서 해설을 곁들인 것이다.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조선시대 때 국가가 백성들을 이끌어나가던 방향과 통제하던 방법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그중 특히 지방사회와 향촌민들의 범죄 양상과 이에 대한 국가의 대응 방식이 눈길을 끈다.    
한 예로 ‘경민편’에는 ‘조선시대에 12세 이하 어린 여자애를 고통스럽게 강간하면 목매달아 죽였다’라고 적혀 있다. 현재 한국의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형벌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무거운 형벌이다.

‘경민편’에 따르면 유교 사회인 조선에서 가장 큰 범죄 중 하나는 불효였다. 조선시대에는 조부모와 부모를 의도하여 죽이면 능지처사(온몸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형벌), (조부모와 부모를) 때리면 목을 베는 형벌, (조부모와 부모를) 꾸짖으면 목매달아 죽이는 형벌을 내린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경민편’을 우리말로 옮긴 정호훈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HK 교수는 “경민편은 조선의 지방사회와 지방민들의 범죄적 일탈, 그리고 이에 대한 국가의 도덕적·법적 대응 방식이 어떠했는지를 살피고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오늘날의 폭력적인 성범죄, 조선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경민편’에서 거론하는 성과 관련된 범죄는 화간(和姦), 강간(强姦), 친속 간의 상간(相姦) 세 경우다. 강간은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되는 폭력적인 성범죄인 반면, 화간이나 친속 간의 상간은 조선의 문화적 특징과 상관이 있다. 책 속 한 대목을 보자.
‘남녀의 정욕은 쉽게 일어나니 막기 어렵다. 삼가고 조심해야 할 것으로 성범죄만 한 것이 없다. 조금이라도 참지 못하면 끝내 헤아리기 어려운 죄에 빠질 것이다.

법 : 화간(和姦)하게 되면 장 80대를 치고, 남편이 있는 여자가 화간하면 장 90대를 친다. 강간(强姦)하게 되면 목매달아 죽인다. 12세 이하의 어린 여자애를 고통스럽게 강간하면 또한 목매달아 죽인다. 친속 간 상간(相姦)의 경우 매우 가까운 친척이면 죽이는 벌을 내리고, 조금 먼 친척이면 그 관계를 따져 벌의 등급을 낮춘다. 강간 외 기타 간통과 연관된 일은 남녀 모두 같은 등급으로 처벌한다.’

12세 이하의 어린 여자애를 강간하면 무조건 사형이었다. 화간을 처벌할 경우 남편 있는 여자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구별해서 차등적으로 장형(杖刑)을 가했으며 강간에 비하면 처벌 수위가 낮았다. 강간의 경우는 성인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 행위를 거론했는데, 당시 조선에서도 어린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한 강간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린 여자아이의 강간범은 모두 사형의 중벌을 내렸다. 일반적인 범죄 행위에서 신분이나 나이 등을 따지는 것과 달리 성범죄는 강간을 제외하고는 남녀가 같은 등급으로 처벌 받았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어린 여자아이를 상대로 한 성범죄에 대한 선조들의 인식도 지금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정국 원저, 정호훈 지음·304쪽 2만원·아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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