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공기업‧공공기관장 고강도 인사태풍 예고

▲ MB측근인 강만수회장은 임기를 지키겠다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나권일기자] 이른바 ‘MB정부 낙하산’들이 고강도 인사태풍에 휘말렸다. 당초 공기업과 정부투자기관장으로 있는 MB정부 낙하산 인사들에 대해 자진사퇴를 기대했던 ‘박근혜 청와대’는 당사자들이 임기보장을 들먹이는가 하면 새 정권에 줄대기를 시도하려는 모습까지 보이자 대폭 물갈이 추진으로 선회했다. 주요 공기업과 공공기관 300여 자리 가운데 100여명이 확실한 물갈이 대상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박대통령 국무회의 발언이 신호탄

“새 정부가 막중한 과제들을 잘 해결하려면 인사가 중요하다. 각 부처 산하기관과 공공기관에 대해 앞으로 인사가 많을 텐데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첫 국무회의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이 한마디가 ‘물갈이’의 신호탄이 됐다. 직접적으로 ‘MB 낙하산’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새 정부의 국정철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각 부처 산하의 공공기관장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이른바 ‘책임장관’들에게 MB정부 낙하산들에 대한 대폭적인 물갈이를 주문한 것이다.

임기초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힘이 실리게 마련이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 이튿날 김재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대 경영학과 후배인 김 이사장은 지난 2010년부터 방문진 이사장을 맡아 지난해 8월 연임에 성공, 잔여인기를 2년 5개월이나 남겨둔 상황이었지만 박사학위 논문 표절이 밝혀져 사퇴 요구에 시달려왔다. 김 이사장 사퇴는 방송계 뿐 아니라 공기업의 사퇴 도미노의 신호탄이었다. 13일에는 임기가 1년 넘게 남아있는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장관급으로는 지난 2월말 사퇴의사를 표명한 김석동 금융위원장,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은 세 번째 사의 표명이었다.

이어 잔여임기를 1년 남겨둔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15일 청와대에 사의를 표명했다. 15일에는 또 경찰청장이 전격 교체되면서 다른 기관장들도 잔여 임기와 상관없이 모두 교체될 가능성을 예고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친박계 인사는 “장관 인사가 끝났으니 곧바로 물갈이가 시작될 것이다. 장관들이 ‘물러나라’는 뉘앙스만 전해도 짐을 싸야 할 것”이라며 MB정부 낙하산 인사들의 ‘사퇴 도미노’를 기정사실화 했다.

  “1차로 공공기관장 100명 물갈이”

청와대는 ‘MB정부 낙하산’ 청산을 위해 1차로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공기관 295곳 가운데 3분의 1 정도인 100여명의 기관장을 교체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MB정부때 정권과의 친분 관계로 임명됐다는 지적을 받아온 정치인이나 대선캠프 관련 인사들이 물갈이 대상이다.

우선 금융권에서는 ‘4대 천왕’으로 불렸던 강만수 KDB산은금융 회장과 어윤대 KB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이 그 대상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자산관리공사와 정책금융공사, 예금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 13개 금융 공기업 수장과 은행연합회 등 6개 협회장도 인사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자진사퇴하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간 MB 낙하산들에게는 ‘평가’와 ‘감사’의 잣대를 들이대는 압박작전을 세웠다는 후문이다. 이에따라 박근혜정부 들어 촉수가 예민해진 감사원이 대통령의 발언에 발빠르게 나섰다. 감사원(원장 양건)은 14일, MB 최측근으로 꼽히는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이 수장으로 있는 산업은행에 대한 감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MB정부시절 금융계의 4대 천황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힘을 과시한 ‘왕낙하산’ 강만수 KDB금융그룹 회장을 시범케이스로 삼은 것이다.

 강만수 “임기 지킨다” 버티기

감사원은 산업은행에 대해 지난해 9월 이후 한달 간 특정감사를 벌인 결과, 영업이익 부풀리기를 통해 임직원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고금리상품 판매를 통한 은행 부실 심화로 은행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고 발표했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2011년 영업이익을 최대 2443억원을 부풀려 임직원 성과급을 최대 41억원 더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또 강만수 회장이 전개해온 무점포 영업방식의 ‘다이렉트 예금상품’ 등 고금리 예금 상품 전체에서 올해 말까지 총 144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강 회장의 공격적 경영방침에 제동을 걸었다.

감사원이 이처럼 지난해 하반기 행한 감사결과를 박대통령의 MB낙하산 물갈이 발언 직후 발표하자 임기를 1년여 남겨둔 강만수 회장이 즉각 반발했다. 강 회장은 15일 “감사원이 ‘주의’ 처분 정도에 해당되는 사항을 괜히 무슨 큰 잘못한 것처럼 부풀렸다”며 “산업은행이 개인회사도 아니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자기만 생각하고 중간에 그만둬 버리는 건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자진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MB정권 때 금융계 인사를 쥐락펴락했던 그는 당초 2월에 그만 두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부하들의 만류로 임기를 채우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금융계에는 MB때 낙하산으로 투입된 ‘강만수 사단’이 광범위하게 존재해 이들이 강 회장 사퇴를 극구 만류했다고 한다.

정가에서는 청와대와 강만수 회장의 줄다리기 결과가 박근혜정부의 이번 물갈이 추진의 성패를 좌우할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강 회장이 끝까지 버틸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권력의 생리상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더 우세하다. 더구나 강 회장은 MB정부 출범 직후인 2008년 4월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적어도 인사권을 가진 사람이 재신임 정도의 절차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라며 관련 기관장들의 사퇴를 압박한 ‘원죄’가 있다. 자신이 휘둘렀던 칼이 5년 만에 부메랑이 되어 날아온 셈이다.

포스코는 새정부 코드맞추기?

금융권에서 강만수 회장이 공기업에서는 포스코가 물갈이의 시범케이스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포스코는 최근 영남권 지방지와 일부 경제지를 통해 “정부 지분이 없는 포스코 등은 물갈이 대상이 아니다”라는 익명의 정부관계자 발언을 인용하는 등 ‘버티기’에 들어간 양상으로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상당한 불쾌감을 나타냈다는 후문이다.

2009년 취임한 포스코 정준양 회장은 MB정부 초기에 ‘왕차관’이라 불리던 박영준 전 차관 등이 “정준양은 대통령의 뜻”이라며 압박해 포스코 회장으로 임명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당초 박근혜정부 출범 뒤 사퇴를 시사했던 정 회장은 새 정부의 일자리창출에 부응하기 위해 언론에 벤처기업 육성광고를 대대적으로 내고 내부 인사를 통해 여성간부를 승진시키는 등 정권과 ‘코드맞추기’를 통해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최근 박근혜 청와대의 고강도의 인사태풍 기류를 감안해볼 때 끝까지 버틸 경우 공정거래위원회 등 이른바 경제검찰을 통한 사퇴압박이 예상되고 있다. 포스코와 함께 물갈이 1순위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KT 이석채회장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 연임에 성공한데다 전문성을 인정받아 유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고 한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로 사퇴압박

청와대는 임기가 남아있다는 이유로 ‘버티는’ 기관장들에 대해서는 현재 기획재정부 공공기관 경영평가단이 수행하고 있는 인사 평가 결과를 교체 결정의 근거로 삼을 것으로 알려졌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현 공공기관장에 대해서는 해당 부처 장관과 청와대 인사위원회에서 점검해 결정할 것이다. 이런 평가과정 없이 임기가 보장되는 일은 없다”며 공공기관장들에게 남은 임기와 관계없이 신임평가를 받으라는 뜻을 전달한 상태다. 청와대는 공공기관장으로부터 일괄 사표를 받은 뒤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는 퇴출하고, 관료출신 낙하산 인사는 소관부처 신임장관의 평가에 따라 거취를 결정토록 하며, 경영평가가 우수한 내부 승진자는 유임시킨다는 나름의 기준을 마련해놓았다고 한다.

친박계 공신 보은인사 하나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이같은 고강도 낙하산 물갈이 추진에 대해 우려의 눈길도 없지 않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겠다’는 새정부의 의지는 이해가 되지만 대선 이후 ‘자리’를 잡지 못한 친박계 대선공신들에 대한 ‘보은인사’의 목적이 더 큰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친박계 내부에서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친박계가 역차별 받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한 상태여서 박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런 기류를 감안해 ‘낙하산 청산’을 빌미로 물갈이에 나선 것이라는 시각도 상당하다.

정치권에 따르면, MB정부 시절에 청와대가 직접 관리한 고위급 자리만 1800여개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정부도 지난 대선 때 공을 세운 친박계 인사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해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박근혜 정부의 인사원칙은 내부 신망과 전문성이 우선이고 ‘낙하산 인사’는 없다”고 공언했지만 정치권의 생리상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MB정부 초기에도 공공기관장 중도사퇴를 둘러싸고 전임 노무현 정부와 갈등이 빚어진바 있다. 강만수 회장처럼 임기가 남았다는 이유로 버티기가 계속돼 갈등이 격화되면 박 대통령이 야당 대표나 대선 후보 시절 강조하던 ‘원칙과 법치’를 뒤집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공공기관장들에게 법률로 보장한 임기를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대통령이 이미 칼을 뽑은 이상 고강도의 물갈이 추진은 집권 초기에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