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최대 변수로 떠오른 ‘정치개혁’ 화두

 

▲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9월 23일 인하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초청 강연회에 참석해 ‘정치가 바뀌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바뀝니다’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치개혁이 대선가도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깃발을 들었다. 지난 10월 23일 정치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국회의원 수와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 중앙당 폐지를 제시했다. 이른바 ‘3대 특권 포기’ 방안이다. 안 후보에게 정치개혁은 강력한 무기다. 그 스스로 이번 대선을 ‘낡은 체제와 미래 가치의 대결’로 규정한 터다.

이런 프레임에서 정치개혁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효과적 무기가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물론이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까지 낡은 체제의 정치인으로 묶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변화를 국민과 함께 지켜봤으나 결국은 실망이 컸다. 새누리당의 정치적 확장뿐 아니라 정권 연장을 분명히 반대한다.” 정치개혁안을 밝히면서 우선적으로 그는 새누리당을 낡은 체제의 중심으로 규정했다. “그렇다고 해서 집권여당에 반대하니 정권을 달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오류다.” 이어 그는 민주통합당도 그 범주에 가뒀다. 이런 구도에서 안 후보는 정치개혁을 견인하며 대선정국을 주도하는 비교우위를 누릴 수 있다.

‘제도만 손질한다고 정치판 달라질까’ 회의론 나와
 공천 혁명이 개혁 열쇠, 강제당론도 없애야 할 장벽

문 후보와의 단일화도 둘 사이의 정치개혁 공감 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후보는 대선 출마를 선언할 당시 이미 단일화 조건으로 정치개혁을 내걸었다. 공감하고 동의하는 정치개혁의 틀을 마련하지 못하면 단일화 명분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단일화는 대전제와 같아서 불발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명분이 충족되지 않은 채 단일화가 이뤄질 경우 표 이탈 등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전망은 불투명하다. 일단 안 후보의 정책개혁안에 대해 문 후보의 반응이 싸늘하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안 후보 측은 이마저도 ‘기득권에 대한 미련’이라고 반격할 수 있겠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안 후보 측의 개혁안의 비현실성이 부각될 경우 안 후보가 ‘되치기’ 당할 수 있다. 정치 경험이 없는 그의 이력이 약점으로 재인식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당장 그의 개혁안에 대해 정치불신에 기댄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터다.

‘안철수 개혁안’, 현실적인가
논란의 핵심은 결국 개혁안의 현실성과 진정성이다. 과연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 것이냐, 그렇게 했을 경우 진정한 개혁이 이뤄질 것이냐다. 안 후보는 3대 특권 포기 방안을 발표하면서 “특권을 내려놓아도 법이 부여한 권한만으로 충분히 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의원 정원 축소와 관련해 “국회가 민생법률을 못 만든 게 숫자가 적어서 그런 거냐”며 “밥값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얼마나 강하게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정치에 대한 그의 인식은 일반 국민의 보편적 정서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국회의원이 왜 그리 많아야 하느냐”는 얘기는 장삼이사가 상투적으로 내뱉는 얘기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의 산물이다. 기존 정치권이 자초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정치와 안에서 보는 정치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국민은 정치인을 마치 딴 세상 사람인 양 자신들과 확실히 구분 짓고 욕을 해대지만 기실 국민과 정치인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도 결정짓는 법이다. 이런 연관성을 무시하고 정치불신에만 기대 개혁의 칼을 휘두를 경우 역효과를 배제할 수 없다.  

“정당이 당비로 유지돼야 하는데 보조금으로 유지되면서 비대화, 관료화, 권력화했다”거나 “정당의 국고 보조금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야당을 회유하기 위해 주기 시작한 것”이라는 건 일리 있는 지적이다. “정치권이 스스로 액수를 줄이고, 그만큼 시급한 민생에 쓰거나 정당의 정책개발비로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도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다.

그러나 의원 수도, 보조금도 줄인다고 정치가 개혁될지는 의문이다. 거꾸로 갖은 역효과가 발생할 개연성도 작지 않다. 의원 수가 줄면서 의원의 권한은 더 커지고 기득권이 재생산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거꾸로 보조금까지 줄면서 정치 전반이 위축되는 엉뚱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문 후보가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는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 바람직한 것인지도 의문이고 우리 정치를  발전시키는 방안인지도 좀 의문”이라고 말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문 후보 측 우상호 공보단장은 “문 후보는 개혁에 주목적이 있어야지 정치 위축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 측은 일단 기득권 반발로 몰아세웠다. 유민영 대변인은 “기득권의 반발은 예상했던 일”이라며 “국민과 기성 정치의 괴리를 다시 느꼈다”고 했다.
문재인, 안철수 단일화라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선 정치개혁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는 형국이다.

제도냐, 사람이냐
안 후보는 중앙당 폐지도 제시했는데 그 이유로 “5·16쿠데타로 도입된 정당의 중앙당을 폐지 또는 축소해야 소위 패거리 정치, 계파 정치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의원 수도 줄이고, 보조금도 줄이고 중앙당을 폐지하는 제도 개혁으로 정치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정치가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그런 식으로 정치개혁이 이뤄질 수 있었다면 17대나 18대 국회가 그 모양은 아니었을 것이다. 복기해보면 그 때라고 정치개혁의 구호나 움직임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칼자루의 주인이 바뀌어도 후진적 행태는 변함이 없었다. 우격다짐, 욕설, 몸싸움이 시시때때로 ‘민의의 전당’을 더럽혔다.

여기에서 ‘제도냐, 사람이냐’의 근본적 문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요체는 과연 제도만으로 정치판이 달라질 수 있느냐는 회의감이다. 외부인사로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해 공천을 진행해도 ‘공천헌금’은 여전하지 않은가. 말이 공천헌금이지 법률적으로는 공천을 위한 뇌물이다. 제도개혁이 정치개혁을 담보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제도적으로 정치판이 달라져야 하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제도만의 문제도, 정치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치판의 사람이 달라져야 하고, 국민도 함께 달라져야 가능한 일이다. 국민이라고 우격다짐, 몸싸움의 ‘비타협 정치’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민 스스로 오만과 편견으로 지독히 편 갈라 싸우면서 정치인만 몰아세우는 건 이중적이다. 난장판 국회는 전쟁 같은 반목과 갈등이 불꽃을 튀기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었다.
 
본질은 패거리정치 청산
안 후보의 지적은 정확하다. 패거리 정치, 계파 정치는 한국 정치의 고질이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은 결국 패거리 정치 문제다. 보스에게 줄 서는 계파정치, 소신을 꺾는 당론정치의 폐해다. 각계를 주름잡던 의원 개개인은 패거리 정치에 발을 디미는 순간 무력한 존재로 전락한다. 계파의 이익, 당론을 위해 팔을 드는 거수기, 힘 좀 쓰는 초선이라면 몸싸움의 전위대가 되는 건 여의도 정치의 불문율이다.

실례를 보자. 18대 국회에서 여권의 세종시 수정 갈등은 보스의 입에 좌우되는 정치의 전형이었다. 전선(戰線)은 다양했으나 핵심은 ‘이명박 대 박근혜’였다. 두 사람은 여권 내 친이·친박으로 양분된 계파수장이다. 친이계 보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에, 친박계 보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대선후보)는 세종시 원안 사수에 정치적 명운을 건 모습이었다. 두 사람의 결정은 곧 계파의 결정이고, 계파 의원들은 흔들리는 갈대 신세와 같았다. 영남 지역구 한 의원의 회고다.

“세종시는 수정하는 게 맞다고 얘기하는 친박계 의원들이 꽤 있었지요. 그런데 박 전 대표가 ‘수정불가’를 외치니 그만 입을 다물더니 이내 앞장서서 수정 반대를 외치더라.”
당시 친이계 한 중진의원의 토로도 들어보자. “박 전 대표가 수정을 반대하는데 관련 법안이 통과할까요. 전 애당초 힘들다고 봤습니다.” “(그럼 왜 수정을 밀어붙이느냐) 그야 (이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하니까.” 두 여당 의원의 얘기는 보스의 입에 좌지우지되는 정치를 실감케 한다.

당론정치 역시 패거리 정치를 구성하는 요소다.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헌법 46조)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국회법 114조) 헌법과 국회법은 이처럼 국회의원의 양심과 그에 따른 자유투표 권한을 명시하고 있지만 이는 법전을 들춰봐야 알 수 있는 장식적 문구일 뿐이다. 현실정치에서 의원들은 ‘양심의 은닉’을 끊임없이 강요당한다. 당론은 의원들을 옭아매는 또 다른 강력한 덫이다. 어느 계파에 소속되지 않고 중립지대에 머무는 의원이라도 당론은 피해갈 수 없다. 그런데도 양심과 소신에 따라 당론을 거스른다? 그렇다면 왕따는 물론 당원권 정지 등 적잖은 내상을 각오해야 한다.
 
정치개혁 넘어 대권으로 갈까
안 후보가 말한 3대 특권 포기로 이런 고질을 말끔히 고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일단 공천이 열쇠다. 공천혁명 없이 정치개혁은 불가능하다. 공천을 받기 위해 보스와 지도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구조가 지속되는 한 패거리 정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치가 대결로 치닫는 데는 또 다른 근본적 이유가 있다. 선거를 통해 51%는 모든 걸 얻고 49%는 모든 걸 잃는 시스템도 정치를 대결의 장으로 모는 원인이다. 49%의 민의가 단 2%포인트 차이로 제로가 되는 현실에선 죽기 살기로 싸우는 정치가 될 수밖에 없다. 유권자 비율을 온전히 반영하는 정치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비생산적인 정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강제당론 역시 없애야 한다. 당론에 따르지 않으면 배신자가 되는 정치문화는 선진정치를 가로막는 장벽이다. 국회의원의 정견과 정책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정치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는 한 유권자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정책은 끊임없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하려면 여야 합의로 표결 방식을 바꾸면 된다. 쟁점사안에 대해 최대한 논의를 하다가 끝내 타협이 안 되면 자유투표에 맡기는 거다.

이 정도의 변화만 이끌어내도 개혁의 효과는 작지 않을 것이다. 안 후보가 과연 정치개혁 깃발을 앞세워 한국정치의 전기를 마련하고 단일화 기선을 잡을 것인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상은 아름답고 현실은 추악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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