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개헌카드 꺼내든 김덕룡 민화위 대표

▲ 김덕룡 대표는 지금이 개헌을 논의할 적기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여야 정당과 대통령후보자가 개헌을 대통령공약으로 약속하면 내년에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이원국 기자

 

“대선후보들의 분권형 개헌 합의, 지금이 적기(適期)다” 
  집권 초 대통령에 분권형 개헌 제안했으나 MB가 실기해

고건 전 총리, 김덕룡 민화협 대표 등 정계 원로 17명이 최근 기자회견을 갖고 ‘4년 중임제의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에 대한 합의를 대선후보들에게 촉구하고 나서면서 개헌정국이 조성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주주의 혁신과 국민통합을 위한 제도개혁’을 주창한 이들 원로들은 현재 유력 대선후보 3인 중 누구라도 대통령 취임 1년 이내에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내용의 개헌을 선거공약으로 확정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 대통령 임기를 1년 단축해 19대 대통령 선거를 2016년 20대 총선과 동시에 실시하는 대신 대통령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하자고 제안했다. 정치 원로들이 미묘한 시기에 개헌을 요구한 까닭은 무엇일까.
<위클리 오늘>은 정치원로들의 개헌제안을 주도한 김덕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을 지난 10월 24일 그의 서초동 개인사무실에서 만나 그 배경을 들어보았다.

 이재오식 개헌과 무관, 사회단체·종교계 제안 잇따를 것   
“이번 대선, 3자대결로 30%대 득표율 대통령 나올 수도”

―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대결구도가 극심한 상황에서 여야, 진보와 보수를 망라해 정치원로들이 뜻을 함께한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 이번에 서명하신 분들을 보면, 고건 전 총리,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김상현 전 민추협의장 대행, 김원기 전 국회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목요상 헌정회 회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 이기택 전 민주당 대표,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수성 전 국무총리, 이우재 전 민중당 대표, 이종찬 전 민정당 원내총무, 이한동 전 국무총리, 이홍구 전 국무총리, 임채정 전 국회의장,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 등 17명입니다. 87년 헌법을 만들 때도 저를 비롯해 여야와 보수·진보가 함께 모여 만들었는데, 17명이나 되는 여야의 정치원로들이 하나의 문제에 대해 지금처럼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아마도 87년 이후 처음일 듯싶습니다. 저를 비롯해 이부영, 정대철 이 분들이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만, 정치원로들이 나라를 위해 초당적으로 나서서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통합을 위한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촉구했다는 뜻으로 봐주십시오.

― 분권형 개헌뿐만 아니라 정치개혁도 촉구하셨지요? 
▲ 그렇습니다. △국회의 예산편성권과 법률제정권 강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 △정당제도 개혁 △중앙정부 권한 지방자치단체로 이양 △기초의회·자치단체장 정당 공천제 폐지를 요구했습니다. 선거구제를 어떻게 고치라는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국회에서 나중에 논의해 추진하면 될 것입니다. 구체적인 부분까지 우리가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 모든 정권마다 개헌론이 대두됐다가 수포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개헌이 왜 이렇게 어렵습니까?
▲ 대통령이 임기 초에는 의욕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잖아요. 개헌은 국가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데, 실제 논의가 벌어지면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의견이 분출하기 때문에 선뜻 내놓기 힘든 복잡한 문제가 됩니다. 또 개헌을 하려면 국회의원 2/3가 찬성해야 하고, 국민여론이 동의해야 하기 때문에 합의하기가 쉽지도 않고요. 그러다 시기를 놓치게 마련이고, 더구나 지금처럼 정권 말기가 되면 개헌을 추진할 힘도 빠지고, 집권에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서로 의심해서 아예 논의 자체가 쉽지 않게 됩니다. 모든 정권이 지금까지 그래왔어요. 그런데 올해는 대선과 총선이 같이 있어서 개헌을 논의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내년을 넘어가면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주기가 달라서 개헌을 하려고 해도 못합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여야 정당과 대통령후보자가 개헌을 대통령공약으로 약속하면 내년에 추진할 수 있습니다.  

― 개헌이 그렇게 시급하다면 김 대표께서 국민통합특보로 일하실 때도 기회가 있었을 텐데요?
▲ 사실 현 정부 초기에 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개헌을 제안했습니다. 로마가 왜 천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느냐? 첫째, 정복한 여러 나라들에게 자치를 허용하고 관용의 정치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탕평인사로 국민통합을 하라고 조언을 했지요. 그래서 제가 정치특보가 아닌 국민통합특보 일을 맡았던 것입니다. 두 번째, 로마의 정치인들은 돌멩이를 맞는 한이 있어도 국가발전에 장애가 되는 요인들을 제거해 로마를 번영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니 국가발전에 장애가 되는 행정수도 이전을 막고, 개헌에 착수하라고 제안했습니다. 대통령도 제가 제안한 개헌에 동의했고요. 하지만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를 못했습니다. 집권 첫해에 촛불정국 등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개헌을 논의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 이번 원로들의 제안에 대해 대선 후보들의 반응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 세 후보 모두 개헌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아마도 자기 진영에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놓고 지금 내부적으로 전략적인 검토를 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개헌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데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지금 선거운동하면서 국민 앞에서 공약으로 제시해야 내년에 개헌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물론 후보들 입장에서는 임기 1년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고, 기성 정당들도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기득권을 내놓는 결단이 요구됩니다만, 버려야 얻을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대선후보들에게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안한 것이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요.  

― 대선을 코앞에 두고 개헌을 촉구한 것을 두고 무슨 정치적 배경이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국민들도 있습니다.
▲ 저 역시 87년에 YS(김영삼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개헌운동을 주도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만 당시는 대통령 직선제가 화두였고, 장기집권을 막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5년 단임에 초점을 뒀습니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오히려 87년 헌법이 장애가 되고 있어요. 집권 초기에는 제왕적 권한을 휘두르다 임기 말에는 친인척비리나 측근들의 부정부패로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여야 대결구도를 만들어 죽기살기로 싸우게 만들고 있고요. 요즘 같은 글로벌 경제위기시대에 강대국과 경쟁해 이기려면 국민통합을 이뤄야 하는데, 지금 헌법은 국민통합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자는 것입니다.

5년 단임이라는 것만 빼놓고는 세계에서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이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의회가 법률제정권, 예산제출권까지 다 가지고 있지만 우리 국회는 겨우 예산심의나 하는 정도입니다. 실제로는 정부가 법률이나 예산안을 다 결정하고 있지요. 헌법에는 총리에게 장관 제청권이 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 다 하지 총리가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없애자는 취지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87년 헌법은 이미 시효를 다했습니다.

― 분권형 개헌은 친이계 핵심인 이재오 의원이 줄기차게 주장해오기도 했는데요? 
▲ 이번에 우리가 제안한 것은 이재오 의원이 추진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별개입니다. 이 의원과 무슨 교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실상 그분과는 단절했습니다. 이 의원의 주장과 우리 주장이 내용면에서 일부 같을 수는 있겠지만 그 분은 그분 나름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우리와는 출발점이 다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대통령의 언질을 받은 것도 전혀 아닙니다.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이 개헌을 제안할 무슨 힘이 있습니까? 정치 원로로서 정말 사심 없이 호소한 것입니다.

― 개헌론이 힘을 얻으려면 정치원로들만 나서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만. 
▲ 앞으로 시민단체와 언론, 종교계, 학계, 청년 등의 활발한 지지 표명이 있을 겁니다. 우리 정치 원로들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자발적으로 토론과 세미나도 열고, 광고도 게재하는 여론조성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무엇보다 국민적 여론이 조성돼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의 역할이 막중합니다. 언론은 경마식 보도를 할 게 아니라 국민이 냉정하게 후보자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데, 특정후보를 편들고 홍보하는 언론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 이번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 지금의 안철수 현상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정치권의 변화를 바라는 국민의 요구를 반영한 것입니다. 정치권이 크게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가 제시하는 것들을 정치권이 포용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 추세를 보면 세 후보가 3자구도로 팽팽합니다. 절대 강자가 없고, 세 후보 모두 국민들에게 이 사람이면 표를 찍고 싶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최선의 후보가 없으니 ‘덜 나쁜 후보’ ‘실수를 적게 하는 후보’가 이길 확률이 높습니다. 최악의 경우 40%에 못 미치는 득표율로 당선되는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야권후보단일화가 될 가능성을 51:49 정도로 봅니다만 아직은 극도의 혼전양상입니다. 평생 정치를 해온 저로서도 전망이 어렵습니다.  

 

▲ 지난 10월 21일 정치원로 17인의 분권형 개헌 촉구 기자회견 장면. 사진= 뉴시스

박스기사 / 분권형 개헌에 대한 유력주자들 입장은?


문재인 ‘찬성’
안철수 ‘관망’
박근혜 ‘신중’

현재 개헌론에 가장 적극적인 쪽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이다. 대통령의 권력 분산 취지에 동의하고 있고, 4년 중임의 분권형 대통령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후보 공보담당자는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정치적 책임성의 약화, 정책의 일관성과 국정운영의 연속성 저하, 선거를 통한 국민의 평가 기회 배제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며 “대통령의 임기를 4년에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게 하는 중임제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문 후보 측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 중 상당 부분을 총리나 각부 장관에게 분산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전환해야 하며, 개헌은 임기 초반에 추진하는 것이 좋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대신 개헌론이 이번 선거에서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는 쪽이다. 그 과정을 거쳐서 대통령에 당선돼야 내년에 개헌을 적극 추진할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문 후보 측은 설사 개헌이 추진되지 않더라도 당선되면 현행 헌법 내에서도 외교와 통일·국방은 대통령이 맡고 내치(內治)는 총리가 책임지는 책임총리제를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안철수 후보 측과의 ‘공동정부론’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개헌론을 안 후보와의 야권단일화의 협상카드로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안철수 무소속 후보 측은 개헌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안 후보 캠프 공보관계자는 “개헌은 충분한 국민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므로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안 후보도 대통령의 권력 분산을 내용으로 하는 개헌의 필요성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한다. 캠프 내 정치혁신포럼 내부에서도 대통령과 총리의 권력 분점 방안이 논의된 바 있다.

안 후보 캠프는 대신 최근 불거진 개헌론의 정치적 의도에 주목하며 관망하는 추세다. 개헌론을 매개로 민주당의 야권 단일화 프레임에 말려들 수 있어 애써 경계하는 기류가 강하다. 그러나 후보단일화 협상 테이블에서 두 후보가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을 명확히 구분하는 형태의 분권형 개헌에 전격 합의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朴 캠프 “개헌시점 특정하지 말자” 
두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의 정치적 득실을 고려하는 반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은 조금 더 근본적 입장에서 개헌론에 접근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4일 공개한 주요 정책의제에 대한 후보자들의 입장에 따르면, 박 후보 측은 “국가 정책의 연속성과 책임정치 구현, 부패방지 등을 위해 4년 중임제가 낫다”며 개헌 필요성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권력구조 문제 외에 헌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박 후보 캠프 관계자는 “개헌안에는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위한 부분 등도 논의될 필요가 있고, 귀화자와 재외국민 증가 등 사회변화에 따라 현행 헌법에 차별금지 사유인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 이외에도 인종, 연령 등을 추가 예시하고 생명권, 환경권 등 현대적 기본권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 후보 측은 개헌추진 시기에 대해서도 신중하다. 박 후보 캠프의 공보관계자는 “개헌은 특정 시점을 적시하기보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한 후에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대선 선거과정에 정치쟁점화해서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이번 선거 운동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제시해서 동의를 받자는 문 후보 측과는 의견이 다른 셈이다. 하지만 캠프 내부에서는 분권형 대통령제 등 구체적인 권력 개편 방안에 대해 깊이 있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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