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지연작전’ 숨은 노림수 추적

▲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10월 31일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 신관 허브홀에서 “복지는 인권, 민생, 새정치”라는 내용의 복지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지율 우위 안 후보 측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 염두
문 후보 측은 모바일경선 등 국민참여경선 방식 고려

연말 대선 승부를 가를 최대 변수는 역시 문재인·안철수 단일화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3파전으로 치러진다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박 후보의 승리 확률이 거의 99%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 후보 지지율은 40%대 초반을 회복했다. 과거사에 대한 그의 잇단 실언에도 지지율이 올랐다. 지지층이 더욱 단단해졌음을 말해준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지지층이 결집하고, 지지 성격도 ‘묻지마 지지’로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안철수로 야권 표가 갈리는 한 박 후보의 ‘콘크리트 지지율’을 넘어설 수 없다. 문, 안 후보가 단일화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단일화한다고 야권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단일화에 실패한다면 필패이므로 단일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단일화 늦어지면 시일 오래 걸리는 국민경선 어려워
여론조사 방식으로는 안 후보로 단일화 가능성 커

시동은 걸렸다. 그러나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문 후보 측은 시간에 쫓겨 다급한 모습인 반면 안 후보 측은 느긋하다. “10일까지는 정책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여기엔 단일화 룰에 대한 양측의 이해가 깔려 있다.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는 안 후보 측은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시간끌기 전략을 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문 후보 측은 모바일경선 등 국민참여경선 방식이 여론조사보다 유리할 텐데 이는 여론조사보다 더욱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 열흘 이상을 잡아야 한다. 후보등록일은 11월 25∼26일이다. 시간을 끌다가는 안 후보 페이스에 말려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단일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리란 보장은 없다. 양측의 단일화 기싸움이 이전투구 식으로 흐를 경우 단일화 감동이 떨어지면서 표 이탈 등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시너지 효과가 반감할 수 있는 것이다. 단일화가 승리의 충분조건일 수 없는 이유다. 어떤 과정, 어떤 모양새로 단일화를 이루느냐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두 사람은 어떤 과정으로 단일화를 이뤄 시너지 효과를 최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이를 전망하려면 단일화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일화 실패는 패배, 성공은 승리로 이어진 역사
후보 단일화는 역대 대선에서도 최대 변수로 떠오르곤 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후보 단일화나 연대 시도는 세 차례 있었다. 1987년 김영삼(YS)-김대중(DJ) 후보 단일화, 1997년 김대중-김종필(DJP) 연대,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였다. 1987년엔 실패했고, 1997년과 2002년엔 성공했다. 단일화 실패는 선거 패배로 귀결됐다. 반대로 단일화 성공은 집권으로 이어졌다.

1987년 단일화 실패는 민주개혁 세력을 양분시켰다. 당시 재야 원로들은 12월 16일 선거일 직전까지 상도동(YS 자택)과 동교동(DJ 자택)을 오가며 단일화를 압박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선거 결과는 노태우 36.6%, 김영삼 28%, 김대중 27%였다.

1997년 ‘대선 4수’에 나선 DJ는 내각제 개헌을 약속하고 11월 3일 DJP연대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질적 세력이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한 것이다. DJ는 유신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의 길을 걸었고, JP는 유신독재에 몸담았던 인사였으니 ‘적과의 동침’을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DJ는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DJP연대가 승리의 충분조건이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선거 결과는 김대중 40.27%, 이회창 38.74%, 이인제 19.20%였다. 여권 성향의 표가 이회창, 이인제로 갈리면서 그나마 간발의 차로 DJ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이인제의 출마가 없었다면, 또 당시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DJP연대는 승리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2002년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역시 이질적 세력의 결합이었다. 민주개혁 세력 후보와 재벌 2세인 무당파 제3후보의 단일화이기 때문이다. 정몽준은 당시 월드컵 축구 4강 신화를 발판으로 급부상했다. 단일화는 후보등록(11월 27일) 이틀을 앞두고 25일 새벽 타결됐다. 정몽준은 선거일 전날 밤 지지를 철회했지만, 12월 19일 선거 결과는 노무현 48.9%, 이회창 46.6%였다.

문·안 단일화 효과 좌우할 변수들
 문재인-안철수의 단일화 구도는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와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안철수와 정몽준의 지지층이다. 둘 다 기존 정치에 대한 거부감을 토대로 무당파 지지를 결집시킨 경우다. 또 새누리당(한나라당) 집권에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둘의 후보 단일화를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지 세력이 상당 부분 겹친다.

다른 점도 있다. 문재인, 안철수의 정책 노선은 비슷하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1997년 김대중-김종필의 경우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가치의 연대 측면에서는 강력한 결합일 수 있겠다. 그러나 정책 연대의 시너지효과는 오히려 떨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시너지 효과는 단일화 절차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다. 문 후보 측은 후보등록일 전 단일화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안 후보 측은 느긋한 입장이다. 문 후보 측 의지와 달리 단일화가 지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간을 끌수록 안 후보 측은 자신의 페이스대로 단일화 논의를 끌어갈 수 있다. 예컨대 안 후보가 정책 집중 시한으로 밝힌 10일쯤 룰 협상이 시작된다고 가정할 경우 후보 등록일까지는 2주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민주당이 원하는 모바일·현장투표는 어려워지고 안 후보 측이 원하는 여론조사 방식으로 단일화 경선이 실시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안 후보에게 역풍이 불 수도 있다. 시간끌기 전략이 대중의 피로도를 점증시켜 지지율 역전 현상을 야기할 수도 있고, 전반적으로 단일화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이다.

단일화 시기도 민감하다. 후보등록 이후 단일화가 이뤄지면 사퇴 후보의 이름도 투표용지에 들어간다. 12월 초 시군구별로 투표용지가 인쇄되기 전에 사퇴하는 후보는 기표란에 ‘사퇴’라고 인쇄된다. 투표용지 인쇄 이후에 사퇴하면 투표소에 안내문을 게시하는 조처밖에 할 수 없다. 2010년 경기지사 선거에서 심상정 진보신당 후보가 투표 사흘 전에 사퇴했는데, 무효표가 18만 3000표 이상 나왔다. 상당수가 사퇴한 심상정 후보를 찍은 것이다.

성공적 단일화는 필승 카드?
단일화가 성공적으로 이뤄진다고 해도 100% 물리적·화학적 결합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건 무리다. 단일화 경선에서 진 후보 지지층에서 어느 정도의 표 이탈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상되는 표 이탈 규모는 가늠키 어렵다. 여론조사마다 워낙 편차가 크다. 예컨대 <문화일보>가 10월30∼31일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문 후보로 단일화시 안 후보 지지층의 29.8%가, 안 후보로 단일화시 문 후부 지지층의 24.8%가 이탈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비해 며칠 앞서 실시된 <중앙일보>-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문 후보로 단일화시 안 후보 지지층의 11.3%가, 안 후보로 단일화시 문 후보 지지층의 6.5%가 박근혜 후보 쪽으로 옮겨갈 것으로 예측됐다. 이밖의 여론조사들에서 전망된 표 이탈 전망치들도 제각각이다. 규모는 알 수 없으나 단일화시 어느 정도의 표 이탈이 발생할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는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단일화 과정은 험난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단일화 효과를 반감시키는 악재들이 꼬리를 물 수 있다. 설사 성공적으로 단일화한다 해도 표 이탈 등의 손실을 감안할 때 승리를 장담키 어렵다. “우리 세력은 박박 긁어모아야 조금 이기고 조금만 방심하면 왕창 지는 세력”이라는 민주통합당 김한길 전 최고위원의 지적은 정곡을 찌른다. 그는 “단일화하면 이긴다는 낙관론에 빠져 널널하게 있을 때가 아니다”라고 경고한 다음날인 11월 1일 “현 지도부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용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저부터 내려놓겠다. 정권교체의 밀알이 될 것”이라며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단일화 경쟁과 함께 민주당에 쇄신 바람이 몰아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단일화 과정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안철수의 ‘통큰 양보’ 장면 따위는 연출되지 않을 것이다. 안 후보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며 완주의지를 밝힌 터다. 민주당으로서는 단일화에 당의 명운이 걸렸다. 안 후보로 단일화된다면 제1야당이 대선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것이다. 당 간판을 내려야 할 운명을 맞게 된다. 건곤일척의 결기로 달려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이냐, 안철수냐. 누가 되든 박근혜 후보로서도 만만찮은 싸움이 될 것이다. 어차피 이번 대선은 50만 표 안팎의 박빙의 승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대선 때처럼 532만 표 차이의 대승, 대패는 재연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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