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구 영동대로512에 위치한 한전부지 전경 모습.<뉴시스>

[위클리오늘=여용준 기자] 국내 재계 서열 1위와 2위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3조3천억원대 한국전력 본사 부지를 두고 정면충돌을 벌였다.

결과는 현대자동차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현대차그룹은 감정가의 3배가 넘는 10조5천500억원으로 한전부지를 가져가는 주인공이 됐다.

현대자동차는 그룹 총수인 정몽구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를 하며 한전부지 입찰에 나섰지만 삼성은 이건회 회장의 부재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재계 서열 1, 2위를 다투는 글로벌 기업이지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진 않았다.

두 회사는 주력 사업분야가 전자와 자동차로 각자 달랐고 그 외의 분야에서는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 만큼 막강하진 못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경쟁을 하는 것은 K리그 축구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이 같은 연유로 이번 한전부지 입찰에 앞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간 정면 대결은 좀처럼 보기드문 빅 이벤트로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처럼 승부는 싱겁게 끝났다.

한전부지, 강남의 마지막 금싸라기땅

한전부지는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512로 무역센터가 인접한 강남 초중심가다. 한전은 이곳에 7만9천342㎡(2만4천평)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전은 부채 해결 등을 위한 자금 확보 차원에서 이곳을 매각하고 전남 나주로 본사를 이전을 결정하게 됐다.

또 서울시는 지난 4월 코엑스에서 잠실운동장까지 ‘국제교류복합지구(MICE)’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제3종 주거지역이었던 한전부지는 일반상업지역로 변경됐고 용적률이 확대돼 초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돼 한전부지에 대한 업계의 관심은 더욱 커지게 됐다.

기업들의 관심이 커지는 만큼 입찰에 들어갈 경우 4조원 이상 치솟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때문에 이곳에 입찰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국내 기업으로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입찰 준비에 들어갔고 몇 개의 외국기업도 입찰에 참여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한전에 따르면 이번 입찰에는 모두 13개 기업이 참여했다. 한전 측은 구체적으로 참여한 기업의 명단을 밝히진 않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제외하고 해외 재벌기업들이 대거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입찰보증금을 납입하지 않아 모두 무효입찰이 됐다.

더 절실했던 현대차의 승리

현대차는 이번 입찰에서 감정가의 3배가 넘는 10조5천500억원을 제시해 응찰했다. 이 금액은 1998년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가격(1조1천781억원)의 10배가 넘는 금액이다.

현대차가 이처럼 과감한 베팅을 한데는 그만큼 이 땅이 절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지난 2006년부터 신사옥 건립을 추진해왔다. 현 양재동 사옥이 이미 포화상태인데다 그룹 계열사가 전국에 흩어져 있어 그룹 경영이 효울적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그룹 통합사옥 부재로 계열사들이 부담하는 임대료(보증금 금융비용 포함)가 연간 2천400억원이 넘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2010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 뚝섬 인근 옛 삼표레미콘 부지에 약 2조원을 투입해 110층 규모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를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서울시의 각종 규제에 막혀 이 계획은 무산됐다.

이후 현대차는 신사옥 건립을 고심하다 전남 나주로 이전하게 된 한전의 본사 부지 인수를 추진하게 된다.

현대차는 이곳에 30여개 계열사가 입주하는 그룹 통합 사옥과 컨벤션센터, 자동차테마파크와 각종 부대시설을 건립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이곳에 지을 건물이 제2롯데월드(123층·555m)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패배한 삼성, 아쉽지만 위험부담 덜었다

삼성전자는 현대차의 응찰금액에 놀라긴 했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다.

삼성전자는 한전부지를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인프라와 대규모 상업시설, 다양한 문화 공간이 결합된 ‘ICT 허브’로 개발하는 방안을 마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를 위해 지난 2011년 한전 옆 한국감정원 부지 1만988㎡(3천323평)를 2493억원에 매입하며 차분히 준비하고 있었다.

삼성전자 측은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번 입찰에 탈락하면서 잠재적 리스크가 해소됐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실적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위험부담이 큰 대규모 투자사업을 감행한다는 것은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버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대형 컨설팅업체는 한전부지 인수에서 개발까지는 최소 10조원 이상이 투입돼야 하지만 상업 목적으로 투자할 경우 2조원 가량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한전부지 쟁탈전의 또 다른 승리자, 서울시·강남구

서울시와 강남구 역시 이번 한전부지 매각으로 큰 이득을 보게 됐다.

서울시는 현대차그룹이 한전부지를 10조5천500억원에 인수하면서 최소 2천700억원 이상의 세수를 확보하게 됐다.

우선 신규 부동산 취득에 따라 취득세 4%(지방세)와 지방교육세 0.4%(지방세), 농어촌특별세 0.2%(국세)를 내야 한다.

현대차 컨소시엄이 한전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낙찰받아 그 중 40%를 기부채납한다고 가정하면 취득세 등만 2700억원에 달한다.

개발에 따른 교통유발부담금과 환경개선부담금 등 각종 부담금 수입도 예상된다. 이들 부담금은 국비로 환수된 후 10% 정도가 서울시로 교부된다.

강남구 관계자는 “서울시가 갖는 취득세 2천700억원 중 3%가 강남구에 돌아온다”고 밝혔다. 약 7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재산세도 기존에 한전이 있을 당시보다 더 많이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관계자는 “한전이 있을 당시 재산세가 약 40억원 정도 부과되면 그 중 22억원 정도가 강남구로 돌아온다”며 “현대차 사옥이 들어오고 건물이 더 커지면 재산세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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