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신고전화로 덜미 잡힌 ‘황당’ 빈집털이범 검거 스토리

▲ 서울 광진구 일대에서 37차례에 걸쳐 5000만 원을 훔친 빈집털이범 이모 씨(30)가 광진경찰서에서 고개를 숙인 채 조사를 받고 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속담이 있다. 지은 죄가 있으면 자연히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는 말로 자주 쓰인다. 그런데 최근 진짜 도둑이 제 발 저려 경찰에 검거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광진구에서 상습적으로 빈집을 털어 온 30대 남성. 그는 자신이 범인을 보았다고 112에 거짓 신고했다가 검거됐다. 경찰이 자신의 범행을 어디까지 알고 있나 두려웠던 소심한 범인이 검거된 사건을 들여다봤다.

112 신고해 거짓으로 목격자라며 제보하다 들통나
‘빠루’ 이용해 37차례 빈집 털어 5000만 원어치 훔쳐
 

# 그림자 없는 빈집털이범
최근 한 달간 서울 광진구에서는 무려 15건이나 빈집털이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한 골목에 있는 다세대 주택 다섯 집이 하루에 모두 털리기도 했다. 집을 가장 많이 비우는 오후 시간대 범행이 집중됐다. 하나같이 현관문 잠금장치가 휘어져 있거나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범인은 ‘노루발 못뽑이’ 속칭 ‘빠루’(bar의 일본 발음)로 현관문을 뜯고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절도범이 남긴 흔적이라고는 바닥에 남은 신발 발자국뿐. 범인이 CCTV가 설치되지 않은 다세대 주택가를 집중적으로 털어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낮 시간에 대부분 출근하고 집을 비워놓은 집이 많아 목격자도 전혀 없었다. 범행은 이어지는데 경찰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 거짓 목격자 112 신고
계속되는 빈집털이범을 검거하기 위해 경찰의 검문검색이 강화됐다. 마을 곳곳에 노루발 못뽑이를 숨겨두고 범행을 하던 범인 이모 씨(30)는 골목길에서 불심검문을 하는 경찰과 맞닥뜨렸다.

경찰은 아무런 의심 없이 보내줬는데, 정작 불안한 건 이 씨 자신이었다. 이 씨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 잠을 잘 수 없었다. 이튿날 경찰과 또 마주치자 이 씨는 경찰이 자신을 잡으러 왔다고 엉뚱한 상상을 했다. 그날 밤 이 씨는 자신의 범행이 경찰에 들통 났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튿날 경찰에 거짓으로 목격자 신고를 하게 됐다. 경찰이 어느 정도 자신을 아는지 확인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게 자신이 검거될 단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수상한 점 발견한 경찰
이 씨는 경찰에 112신고를 했다. 이씨는 112 전화통화에서 “수상한 사람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며 “(수상한 사람이) 빌라 주변을 계속 돌아다니고, 빌라에 막 올라 다니고, 주머니 안에 뭐가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이 씨는 친절하게 경찰과 동행하면서 목격 장면을 설명해 주기까지 했다.
수사에 난항을 겪던 경찰은 그러나 이 씨가 말한 범인의 도주경로를 추적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절도범이 달아났다는 쪽 CCTV를 확인했는데 기록이 없었던 것.

경찰은 112 신고 전화내용을 검색하다가 이 씨가 지목한 범인의 인상착의가 이 씨 자신의 모습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검은색 점퍼, 하얀 색 운동화, 청바지 착용, 키 178센티미터, 서른두세 살 등 제보 내용이 목격자 진술치고는 지나치게 완벽했던 것. 경찰은 이 씨가 신고 있던 하얀 색 운동화에 주목하고, 마침내 절도범의 현장 발자국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목격자 행세를 하던 이 씨가 바로 광진구 일대를 주름잡던 상습 빈집털이범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이 씨는 경찰의 추궁과 신발 발자국 근거에 범행 사실을 털어놓았다.

# 범행 자백과 구속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3년 전 불법오락실을 운영하다 적발돼 사업장이 폐쇄되고 벌금형을 받게 되자 벌금과 생활비 마련을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처음에 자기 집 근처의 빌라를 대상으로 출입구에 달린 우유 주머니를 뒤져 열쇠가 나오면 문을 열고 들어가 금품을 훔치던 ‘단순 생계형’ 절도범이엇다.

그러나 점차 범행을 거듭할수록 대담해지자 활동반경이 넓어지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노루발 못뽑이를 이용해 문 따는 기술을 익힌 뒤 지난 9월부터 10월 말까지 집중적으로 절도행각을 벌였다. 특히 최근 한 달 동안 이씨는 범행에 자신감을 얻고, 같은 구역 내 주택 5세대를 하루에 터는 대담함을 보였다. 조사 결과 이 씨가 훔친 금품은 37차례에 걸쳐 5000만 원어치였다.

# 소심한 범인
이 씨의 범행은 대담했지만 배포는 소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 씨는 빈집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집 주인과 마주치자 줄행랑치기도 했다. 이번 사건도 자신의 범행이 발각될까 지레 겁을 먹고 떨다가 경찰이 자신의 신분을 눈치 챘는지 알아보려다가 검거된 것. 자칫 미궁에 빠질 뻔한 수사에 범인이 자발적으로 걸어들어온 셈이다.

서울 광진경찰서 이규동 강력계장은 “수사를 다른 방향으로 돌림과 동시에 자신의 범행을 경찰이 어느 정도 눈치 챘는가 알아보기 위해 112신고를 했는데, 범인의 행색에 대해 자신과 똑같게 신고를 해 검거하게 됐다”며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속담이 정말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한편 경찰은 피의자 이 씨를 특가법상 절도 혐의로 구속하고, 이 씨가 훔친 물건을 사들인 장물업자 다섯 명을 입건했다.
 

박스기사 / 신동빈·정지선·정용진·정유경 청문회도 불출석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출석하지 않았던 유통 대기업 오너 4인방이 결국 검찰에 고발당할 처지에 놓였다. 
국회 정무위원회가 지난 6일 개최키로 한 ‘대형유통업체의 불공정거래 실태확인 및 근절대책 마련 청문회’에도 이들이 결국 약속이나 한 듯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무위는 유통 대기업 오너들의 불출석으로 청문회가 무산됨에 따라 이들에 대한 검찰 고발과 함께 청문회를 재추진키로 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등 4명이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모두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참했다.

김정훈 위원장을 필두로 여야 의원들은 격앙된 분위기다. 김 위원장은 청문회가 무산된 뒤 “증인들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두 번의 요구에도 이번과 똑같은 해외출장을 이유로 불참했다”면서 “여야가 만장일치로 의결한 사항에 대해 세 번이나 불응한 것은 국회는 물론이고 골목상권의 회복을 바라는 서민과 중소상인을 무시하는 처사이며, 사회적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성토했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도 “출석 요구에도 국회에 나오지 않고 청문회도 같은 사유로 안 나온 것은 국회의 권위를 모독한 것을 넘어 국민들의 기대를 깡그리 짓밟는 행위로 지탄받아 마땅하다”라며 “오만방자하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특히 “세 번이나 불출석한 것은 ‘삼진아웃’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통합당 김영주 의원 역시 “증인들이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면서 “그동안 기업들에게 너무 관대하게 대해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고 자료제출 요구도 응하지 않는 등 국감을 무시하는 것은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의원들도 반성해 관련 법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들 유통 대기업 오너 4인방이 검찰에 고발되더라도 실제 처벌받을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그간 해외출장 등을 이유로 국정감사나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아 고발된 사안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혐의 처리되거나 벌금형을 받는 선에서 끝났기 때문이다. 국회 정무위의 서슬은 퍼렇지만 정작 이들 오너들에게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솜방망이뿐인 셈이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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