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의 감독 데뷔 러시, 명암 해부

▲ 왼쪽부터 구혜선의 <복숭아나무>, 유지태의 <마이 라띠마>, 하정우의 <577 프로젝트> 포스터.

최근 충무로에서 배우들의 영화감독 데뷔가 줄을 잇고 있다. 직접 쓴 시나리오를 갖고 기획부터 제작, 연출까지 맡는 ‘끼’ 많은 배우들이 여러 명이다. 배우 박중훈을 비롯해 하정우, 유지태, 구혜선 등이 장편 영화로 관객을 찾는다. 배우들의 잇단 감독 데뷔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감각을 앞세워 영화계 안팎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이를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도전은 긍정적이지만, 깊은 고민 없이 연출 욕심만 앞서면서 대중적 공감대와 작품 완성도를 높이는 데 실패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도전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 작품 완성도에선 미지수
배우 개성 담을 수 있어 이점, ‘스타시스템 의존’ 우려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른 배우는 구혜선이다.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인 <복숭아나무>를 내놓은 구혜선은 평단은 물론 관객들로부터도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스코어가 먼저 증명한다. 10월 31일 개봉한 <복숭아나무>는 상영 2주째를 지나고 있지만 좀처럼 관객 수가 늘지 않는 상황.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복숭아나무>는 개봉 첫 주에 2만여 명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2주째에 접어들고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평일 평균 190여 개의 스크린을 확보하고 하루에 2000여 명 정도의 관객만 모았다. 같은 시기에 상대적으로 적은 스크린에서 상영한 김인권 주연의 <강철대오:구국의 철가방>보다 관객 기록이 더 낮다.

구혜선
<복숭아나무> 흥행 고전

관객의 지지도를 보여주는 좌석점유율에서 <복숭아나무>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개봉 2주째 좌석점유율이 평일 평균 3%대에 머물고 있다. 

<복숭아나무>는 구혜선이 <요술>에 이어 연출한 장편 영화로 관심을 모았다. 시나리오를 쓴 구혜선은 “주인공인 샴쌍둥이를 통해 인간이 지닌 양면성을 드러내고 싶었다”는 기획의도를 밝혔지만 결국 관객의 폭넓은 공감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복숭아나무>의 관객 평점은 10점 만점에 7점에 머물고 있다. 몇몇 인터넷 평론가들은 대체적으로 연출은 좋았지만 스토리의 개연성이 미흡했다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영화에 대한 엇갈린 평가는 둘째 문제다. <복숭아나무>가 과연 제작비를 회수하는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복숭아나무>의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는 관객 수는 약 50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누적관객 10만 명을 넘기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복숭아나무>의 흥행 여부에 영화계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후에 나올 배우들의 연출 영화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 한 영화사의 대표는 “감독으로 데뷔하는 배우들이 잇따르고 있지만 이야기에 대한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관객으로부터 쉽게 외면 받을 수 있다”면서 “배우들의 다양한 시도는 긍정적이지만 보다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유지태
<마이 라띠마> 영화제서 호평

배우 유지태는 장편 데뷔작인 <마이 라띠마>가 지난 10월에 열린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 비전’ 부문에 초청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마이 라띠마>는 국제결혼으로 태국에서 한국으로 온 한 여인이 남편에게서 도망쳐 힘겨운 삶을 살다가 밑바닥 인생을 사는 한 남자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성장영화다. 유지태는 약 3억 원의 제작비로 멜로와 인간애를 가미한 작품을 완성했다.

유지태의 경우는 배우들 가운데서도 가장 오랫동안 영화 연출을 준비해온 케이스. 2009년 현대인의 소통 부재를 담은 10분 분량의 단편 <초대>에 이어 <마이 라띠마>를 통해 가능성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마이 라띠마>의 흥행 가능성과 관객의 평가에 대해 예측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 이 영화는 전회 매진을 기록하는 등 관심을 모았다.

유지태는 <마이 라띠마>를 연출하기까지 3~4년의 시간을 보냈다. 시나리오부터 기획, 연출을 아우르는 과정을 손수 챙기며 연기 외의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하정우
<인간과 태풍> 촬영 앞둬

배우 하정우도 영화감독에 도전한다. 이달 말 촬영을 시작하는 <인간과 태풍>(가제)이란 작품을 통해서다. 한류스타인 주인공 마준기가 탄 도쿄발 비행기가 돌연변이 태풍을 만나 추락 위기에 처하면서 벌어지는 코믹 소동극이다.

하정우는 지난 8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577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며 영화 연출까지 욕심내기 시작했다. <인간과 태풍>의 제작비는 5억 원 규모. 저예산이지만 하정우가 연출하면서 그와 친분이 있는 스타들이 대거 합류했다.

하정우는 연출 데뷔를 앞두고 “영화를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은 늘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배우가 아닌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에 접근해보고 싶다”며 “기획부터 시나리오를 비롯해 아이디어까지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고민하는 작업이 즐겁다”고 의욕을 보였다.

유지태와 하정우처럼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 경험을 쌓은 배우들이 영화감독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하며 연출법까지 익힌 덕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연기자로 데뷔하고 나서 실전에서 기획, 제작 시스템까지 두루 섭렵한 점도 이들의 변신을 가능케 한 요소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바라보는 충무로의 시선은 엇갈린다. 배우와 감독 두 영역을 오가는 게 쉽지 않은 일인 만큼 변신을 위한 과도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재능과 능력이 있다면 배우 출신 감독이라고 해서 색안경을 쓰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배우들의 개성을 영화에 담을 수 있는 이점도 있지만, 전문성 부족과 스타시스템에 점차 의존하게 되는 단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중훈
<톱스타>로연출 변신

이런 분위기 속에도 당분간 배우들의 연출 데뷔는 계속될 전망이다. 박중훈은 내년 ‘감독’ 자격으로 영화 <톱스타>를 내놓는다. 톱스타를 동경하는 매니저의 이야기로, 박중훈이 2년 가까이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렸다. 충무로에선 그가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톱스타>의 제작비는 배우 출신 감독들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편이다. 유지태, 하정우 등이 저예산으로 장편 영화를 만드는 것과 달리 <톱스타>의 순제작비는 30억 원에 달한다. 롯데엔터테인먼트가 투자·배급까지 맡았다.

롯데 측 한 관계자는 배우 출신 감독의 작품을 떠나 “흥미로운 시나리오가 충분한 소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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