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간 974억 체결 법치국가 근간 '흔들'

 

 조달청이 불법 하청생산으로 조달 자격이 박탈된 27개 단체에게 조달자격을 부여, 1000억 원에 가까운 계약이 가능토록 불법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달청은 특히 조달 자격을 부여하는 게 현행법률에 명백히 위반되는 줄 알면서도 이를 강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불법계약을 위해 보훈처, 중기청,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와 공모한 사실도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조달청, 보훈처, 중기청 등을 상대로 실시한 본보의 단독취재 결과에서 밝혀졌다. 중앙 정부기관이 현행 법률을 위반해 조달자격을 제 멋대로 부여한 것은 초법적 지위에서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든 행위로 간주된다. 이에 대해 법조계 관계자들은 “법을 집행하는 정부가 불법인 줄 번연히 알면서 현행법을 위반해 조달자격을 부여한 것은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반국가적 행위”라며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2011년 6월 대전지검특수부는 장애인단체 명의를 빌려 수의계약으로 납품한 생산업체 대표와 명의를 빌려준 대가로 돈을 받은 사회복지법인 원장, 명의대여묵인 대가로 뇌물을 받은 조달청 소속 공무원 등 3명을 구속했다. 현행법상(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판로지원법) 장애인 단체는 직접 생산한 물품에 대해서만 조달청이나 방위사업청, 지자체 등에 납품할 수 있게 돼 있는데, 이들 업체가 하청생산 방식으로 납품하다 적발된 것. 조달청은 이후 2주동안 34개 보훈, 장애인, 사회복지법인 단체를 상대로 하청생산 여부에 대한 조사를 벌여 27곳을 적발, 중기청에 명단을 통보했다. 중기청은 중소기업중앙회를 통해 실사를 벌여 ‘판로지원법’에 의거, 이들 27개 단체에 대해 6개월간 ‘모든 생산 제품에 대한 직접생산 확인 취소’ 조치를 내렸다. 이들 단체가 조달청에 납품하려면 반드시 중기청이 발급한 ‘직접생산 확인증’이 있어야 하므로, 이들 단체는 2011년 9월15일부터 2012년 3월12일까지 모든 국가기관 납품이 불가능해 졌다.

불법하청 27개 단체에 중기청이 '조달자격 박탈'

조달청, "처벌 과하다" 현행법 위반해 자격회복

 그러나 조달청은 직접생산 확인이 취소된 이들 단체에 대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조달 자격을 부여했다. 조달청은 이를 위해 보훈처, 중기청,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 등을 설득해 이들 해당 주무부처에서 직접생산확인증을 발급토록 했다. 현행법상 직접 생산 확인 및 취소는 중기청의 고유권한. 이에 조달청은 보건복지부와 보훈처 등 주무부처에서 직접생산확인증을 발급토록 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주무부처에서 직접생산확인증을 발급하면서 조달청이 근거로 제시한 법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26조 2항이었다. 이 조항은 ‘주무 장관이 해당 물품을 인증 또는 지정한 후부터 3년 동안만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주무장관이 수의계약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기청 관계자에 따르면 이 조항은 정부가 단체에 수의계약 자격을 처음 내줄 때와 2년에 한번씩 연장할 때에만 적용된다. 나머지 직접생산확인증을 취소하거나, 발급하는 업무는 중기청만의 고유권한이다. 설령 이 조항을 이용해 조달자격을 회복하려면, 법무부의 유권해석과 같은 절차를 필요로 했으나 조달청은 해당 주무부처의 의견만 들어 제멋대로 결정했다. 조달청 관계자는 “27개 단체가 하청생산을 하다 적발돼 행정조치가 된 것은 맞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강하다고 판단해 주무부처와 회의를 거쳐 조달자격을 회복시켜주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달청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다. 우선, 애초에 27개 단체에 대한 조사를 의뢰한 곳이 조달청이었다. 중기청은 실사를 거쳐 불법 하청생산을 확인, 직접생산확인증 발급을 중단한 것이다. 그런데 조달청이 이를 다시 뒤집기 위해 관련부처와 협의해 회복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는 결국 조달청이 오락가락하는 행정을 펼친 것임과 동시에 하청생산이란 불법행위를 조장한 것과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주무부처의 직접생산 확인은 과거에 활용하다가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 중소기업청으로 일괄 이관된 업무다. 이걸 조달청이 주도적으로 주무부처에서 직접생산확인증을 받아 조달자격을 다시 부여한 것은 명백히 법률에 위배된 행위다.

 

합법 위장하려 보훈처 등과 형식적 회의 개최

 

 정부가 하청생산 납품을 금하는 것은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생산설비도 갖추지 않은채 사업권만 따내는 악덕 중소기업의 참여를 막기 위함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중소기업 제품 구매 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 제11조(직접생산확인 취소 등)에서 직접 생산하지 않은 제품을 납품하면 중소기업청장이 직접 생산확인을 취소해야 한다고 명시했고,  이를 위반할 경우 동법 제35조(벌칙)에 의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했다. 조달청이 27개 단체의 직접생산확인증을 주무 부처에서 내준 이후 이들 단체의 납품 규모는 조달청 698억 8648만원을 비롯해 전국에서 모두 974억 9972만원이나 됐다.

 

27개 단체, 정부제재 풀리자 또 불법 하청 생산

 

 조달청이 27개 단체에 불법으로 조달 자격을 회복시킨 뒤 더욱 심각한 문제가 나타났다. 중기청의 6개월 제재기간 내에 조달청과 계약한 상당수 단체가 다시 하청을 통해 생산한 제품을 납품한 것. 조달청이 불법하청 생산을 묵인하는 것으로 모자라 조장하고 나선 꼴이다. 본지 확인 결과, 지난 1월 A단체는 하청생산 방식으로 1억 8000만원 상당의 무대장치를 수의계약에 의해 대전지방조달청에 납품했으며, B단체도 지난 2월 하청생산방식으로 8670만원 상당의 구내방송 장치를 수의계약으로 조달청에 납품했다. 또 지난 3월 중순 C단체는 마찬가지로 하청생산한 대중방송용 장비 2억8250만원 어치를 납품하는 등 총27개 단체중 3개 단체 11건이 금년에 하청생산 방식으로 납품했다. 결국 조달청은 불법 하청생산으로 적발돼 조달자격이 박 탈된 27개 단체에 대해 직접생산 확인을 주무부처에서 받아줌으로써 조달 자격을 회복시켰고, 자격이 회복된 상당수 단체는 이전과 똑같은 하청생산 방식으로 납품했다. 한 사회복지법인 관계자는“조달청이 직접생산확인증을 만들어 준다고 27개 단체가 하루아침에 없던 공장을 확보할 수 있었겠느냐”며 “조달청의 직접생산확인증 발부는 결국 불법행위만 조장했다”고 꼬집었다.

 

27개 단체 불법행위 적발과정

 

 조달청은 2011년 4월4일부터 15일까지 2주동안 최근 6개월간 계약 실적이 있는 34개 단체를 상대로 99개 물품에 대한 1차 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27개 단체에서 하청생산 등 문제점을 적발했다. 이때 발견된 문제점은 △공장과 대지 일부를 임차후 수주물량을 임대업체에 하청을 주거나 명의를 대여하는 경우 △외형상 생산시설과 인력을 갖추고는 있으나 매우 부실해 실질적으로 하청생산을 통해 납품하는경우△자금과 기술력이 있는 제조업체와 협약을 맺고 제품생산을 맡기는 경우 등이었다. 조달청은 27개 단체에 대한 조사를 중소기업청에 의뢰하였고, 중소기업청의 위탁으로 중소기업중앙회가 5월18일부터 8월1일까지 실사를 벌여 불법하청, 허위신청, 명의대여, 조사거부 등을 확인했다. 이들 단체는 한 품목만 위반해도 모든 제품의 확인서가 취소되는 위반 유형으로 적발됐다. 중기청은 27개 단체에 대해 9월15일 모든 제품의 입찰자격 등록을 취소했으며, 그 결과 모든 공공기관에서 위반 단체와의 신규 계약이 중단됐다.

 

형식적인 주무부처의 의견 청취

 

 조달청은 ‘제조 물품의 직접생산 확인기준’, ‘직접생산 위반업체의 처리지침’, ‘판로지원법 시행 관련 구매정보망시스템 변경 안내’ 등을 통해 수도 없이 하청생산을 없애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2010년 10월부터는 하청 생산으로 적발되면 해당제품만 취소하던 것을 모든 제품을 취소토록 하고,  6개월 이내에 직접생산 신청을 못하도록 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2주 동안 실사를 벌여 27곳을 중기청에 통보까지 했다. 그러나 조달청은 2011년 10 월이 되면서 돌연 태도가 바뀌어 27개 단체를 비호하기 시작했다. 직접생산 위반 23개 단체는 향후 6~12개월간 모든 공공기관이 집행하는 입찰참가 및 수의계약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최소 3년이 지나야 납품 재개가 가능하다고도 했다. 조달청은 이어 관계부처의 의견을 듣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는 정부납품을 중단하면 42개시설에서 적자 및 해고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하면서, 직접생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물품만 취소하고, 보건복지부가 직접 생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보훈처는 국가유공자의 생활 안정과 자립기반 마련을 위한 취지가 무색해 진다면서 사업이 중단되면 단체행동 등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도 정부지원사업장의 장애인 근로자 실직이 불가피하다며 위반하지 않은 실제 생산품에 대한 제한조치를 유예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냈다.

 

조달청의 주먹구구식 행정

 

 조달청은 이후 위반단체 처리방안을 마련해 27개 단체를 구제키로 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판로지원법에 규정된 중기청 만의 직접 생산 확인 취소 권한을 묵살하고, 주무부처에서 직접생산확인증을 받기로 결정한 뒤 27개 단체에게 박탈됐던 납품권한을 주게 됐다. 문제는 이런 조달청의 행정이 거의 구멍가게 수준이란 점이다. 조달청은 많은 보훈단체와 사회복지법인이 직접 생산을 하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않았다.  이들 단체가 자가 공장을 확보하고 있어야 불법 하청생산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알고 있었지만,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예컨대 3년간 경과조치를 두고, 그 기간 내에 자가 공장을 마련하는 단체에 한해 직접생산확인증을 발급한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정책을 입안하지도 않았다. 자리보전만 하다가 떠나면 그만이라는 식의 안일한 탁상공론식 업무처리로 일관했다. 그러다가 27곳을 적발했고, 중기청은 이들 단체에 대해 판로지원법이 규정하고 있는대로 6개월간 직접생산 확인을 중지시킨 것이다. 여기에서 조달청의 불법행위가 시작됐다. 중기청은 조달청이 의뢰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6개월 조달계약을 정지시킨 것인데, 이걸 조달청이 나서서 풀게 되면서 불법을 자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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