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오늘=김아연 기자] 한 편의 코미디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주주총회를 나흘 앞둔 13일 주요 일간지에는 ‘삼성물산 주주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는 광고가 실렸다. 내용은 삼성물산의 주식을 위임해 달라는 것이었다. 절박함도 드러났다. ‘주주님들의 주식 단 한주라도…’, ‘저희들이 일일이 찾아뵙고 위임절차를…’. 광고는 ‘표구걸’과 다름없었다.

그간 필자는 헤지펀드의 공격도 예상치 못하고 합병을 결정하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애써 부정했다.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이 준비없는 큰 결정을 내리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광고까지 접하게 되니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돈으로 ‘으악’을 지르는 헤지펀드에 맨몸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헛웃음이 나고 기가 찼다.

그러나 진짜 코미디는 오후에 벌어졌다. 엘리엇의 홍보대행사로부터 한 통의 메일이 왔다. 여지껏 그랬듯 엘리엇의 입장을 한글로 번역한 몇 줄의 글과 사진이 한 장 첨부돼 있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엘리엇 마케팅팀의 우리나라 정보 취합 능력은 10여년 전에 머물러 있었다.

사진은 이랬다.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폴 싱어 엘리엇 회장이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있는 모습이었다. 주석은 이렇게 달렸다. ‘폴 싱어 회장은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진출하자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한국에 가서 직접 경기를 보고 한국을 응원하고 싶은 일념으로…’.

이건 누가봐도 ‘감성팔이’다. 어느 후진국에 달려가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들과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라는 멘트를 날리며 호응을 이끌어내는 수준의 감성팔이다. 때가 어느 때인데 이제는 기억속에서도 흐릿한 2002년 월드컵으로 여론몰이를 하나. 이런 것에 혹할 것이란 판단이 깔린, 우리나라 국민을 무시해도 한참 무시한 처사다.

우리나라는 시세차익이 목표인 헤지펀드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경영권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으니 이런 하급한 수준의 선전전을 하는 헤지펀드가 우리나라를 깔보고 쳐들어오는 것이다. 엘리엇은 합병과 관련된 대부분의 기사를 번역해 읽어본다고 한다. 이 글도 꼭 읽어보길. “우리나라 국민이 바보로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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