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 실체 규명되나?

 

[위클리오늘=신상득 사회·문화전문기자] 조현오(58) 전 경찰청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의 출처로 과거 안기부 간부 출신인 임경묵 씨를 거명했다. 임 씨는 황당한 주장이라면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며 발끈했다. 발언의 출처를 공개하지 않다가 법정구속까지 당했던 조 전 청장이 항소심 심리에서 돌연 임 씨 이름을 거론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 전 청장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임 씨를 거론했을까. 주변에서는 정치공작이니 하는 말들이 많다. 임경묵 씨 법정 출두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결말이 자못 궁금하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 발언과 법정구속 전말
조현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2010년 3월말 서울경찰청 대강당에서 전경과 지휘관 등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는 자리에서 놀랄만한 발언을 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무엇 때문에 사망했습니까. 뛰어내리기 바로 전날 이 계좌가 발견되지 않았나. 10만원짜리 수표가,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는데…”라고 말한 것. 경찰의 제2인자의 이 말은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노무현 재단은 강력히 반발하면서 조 전 청장을 ‘사자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오랜 수사 끝에 조씨는 2012년 9월 검찰에 기소됐고, 같은 해 10월 1심에서 법정구속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12단독 이성호 부장판사는 “조 전 청장이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다’고 한 발언은 허위사실”이라고 못 박았다. 나아가 이 판사는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국론을 분열시켰음에도 발언의 출처인 ‘믿을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며 “차명계좌 발언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면 개인과 조직을 감쌀 것이 아니라 발언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질책했다. 또 2010년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 이후 조 전 청장의 언행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판사는 “믿을 만한 사람한테 들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며, 무책임한 언행을 반복한 점은 허위사실 공표보다 더 나쁜 행위”라고 지적했다. 

항소심 첫 공판에서 말 바꾼 조현오 전 경찰청장
그러나 조 전 청장은 지난 23일 열린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부장판사 전주혜) 항소심 첫 공판에서 돌연 태도를 바꿨다. ‘그가 법정에 서길 원하지 않는다.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출처 밝히는 꺼린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조 전 청장의 이런 태도 변화는 재판부가 ‘피고인의 말만으로는 믿을 수 없다. 누구로부터 들었는지 말해야 한다.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피고인이 모든 부담을 지게 되는 셈’이라고 주장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청장이 지목한 인물은 옛 안기부 대공정책실장 출신으로 국정원 산하 연구소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임경묵 씨. 조 전 청장은 법정에서 “2010년 3월31일 강연을 하기 일주일 전쯤 임 전 이사장과 서울의 모 호텔 일식당에서 만나 2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다. (차명계좌 관련 내용에 대해) 임 전 이사장이 지나치듯 얘기해 줬는데, 강연 도중 그 얘기가 떠올라 말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전 청장은 또 “임 전 이사장은 국가 정보기관 사무관 특채 때 첫 출입처가 검찰이었기 때문에 발언을 해줄 당시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수사기획관과 가까운 사이였다.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어 임 전 이사장이 한 얘기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조 전 청장은 임 전 이사장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장이던 당시 나보다 경찰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이를 보도한 조선닷컴에 따르면 조현오 전 청장은 “2010년 8월 강연 내용이 보도된 이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했던 당시 대검 중수부 최고 책임자로부터 ‘이상한 돈 흐름이 발견됐었다’는 내용을 들었고, 대검 중수부 금융자금수사팀장을 지냈던 법무사 이모 씨로부터 같은 해 12월 구체적인 얘길 들었다”며 발언의 출처 2명을 추가로 공개하면서 “보석으로 풀려난 이후 (제보자들을) 직접 만나려고 했으나 접촉이 잘 안 되거나 증인으로 출석해 줄 것을 요구해도 진행이 잘 안 되는 상황”이라는 말을 했다. 

“사실 무근” 발끈하는 임경묵
임경묵 씨는 강력히 반발했다. 그는 “민간인이 어떻게 그런 내용을 아느냐, 사실 무근이다. 단체 모임에서 한 번 정도 스쳤을 뿐”이라며 명예훼손으로 조 전 청장을 고소할 뜻을 밝혔다. 임 전 이사장은 “검찰에 파견을 나간 적도 없고, 대검 수사기획관을 알지도 못 한다”며 조현오 청장과의 관계에 대해 “우연히 아는 사람들과 모여 밥 한 끼 먹은 게 전부다. 잘 모른다”는 말을 했다. 임 씨는 또 “교회 장로로서 나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할 지는 변호사를 선임해 의논해 봐야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실 공방의 끝은?
재판부는 5월14일 임 씨를 증인으로 불러 차명계좌 발언의 출처 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다.
조 전 경찰청장과 임 씨는 법정에서 심각한 싸움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은 임 씨가 사실여부를 떠나 조 전 청장의 주장을 거짓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임 씨와 조 전 청장 관계를 입증할만한 증인이나 통화내역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만에 하나 조 전 청장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증인이나 통화내역이 밝혀질 경우 임 씨는 위증죄 처벌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연유에서든 임 씨가 조 전 청장의 주장을 인정하는 일이 벌어지면 엄청난 정치적 격랑이 휘몰아칠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정권의 사조직’이라는 비난도 면키 어렵다.
조 전 청장의 발언을 확인하려는 항소심 재판부의 의지도 엿보인다. 재판부가 “큰 용기를 내서 제보자를 지금이라도 밝혀 다행”이라면서 임경묵 전 이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는 언론보도가 이를 방증한다. 또 재판부가 1심에서 법정구속된 조 전 청장을 보석으로 풀어줌으로써 조 전 청장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려는 노력도 눈에 띄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벌어질 진실공방에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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