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 성격에 웃고 우는 프로농구 감독들

프로농구 감독은 농구인에게는 최고의 자리다. 구단에서의 대우는 물론이고 누구나 농구판에 발을 디딘 사람이면 이 자리에 오르기를 소원한다. 한국농구연맹(KBL)의 경기이사를 지낸 김동광 씨도 삼성 감독으로 선임되자 큰 기쁨을 표시할 정도의 자리다. 하지만 이 자리는 10개뿐이다.
농구인 가운데 최정점에 서 있는 10명의 감독들. 하지만 이들은 공교롭게도 외국인 선수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이 팀 성적에 직결되고, 팀 성적은 바로 감독의 능력을 평가하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 성격 따라 팀워크·적응도 천차만별
팀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 커 감독들 특별관리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가 열린 지난 7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이곳에 모인 감독들은 한결같이 긴장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시즌에는 공교롭게도 외국인 선수의 자원이 충분하지 못했다. 지난 시즌 드래프트 없이 자유계약으로 팀당 한 명씩 뽑았던 것과는 달리 이번 시즌에는 두 명의 선수를 드래프트를 통해 뽑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외국인 선수는 기량뿐만 아니라 한국농구 적응도가 선발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팀 전력의 절반’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선수의 성격도 구단을 운영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따라서 감독들은 KBL에서 이미 뛰면서 기량뿐 아니라 성격도 검증된 선수들을 선호하게 된다.

올 시즌 외국인 선수로 가장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감독은 울산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이다. 모비스는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함지훈에다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1순위로 건진 김시래, 국가대표 가드 양동근과 혼혈귀화선수로 창원 LG에서 데려온 문태영이 있어 시즌 개막 전부터 우승후보 ‘0순위’로 꼽혔다.
팀마다 13~14게임을 치른 16일 현재 모비스는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서울 SK와 승률이 같은 공동 1위이고, 중하위권으로 평가받던 인천 전자랜드와는 불과 0.5게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압도적 우세를 보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선두권에서 혼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 모비스 유재학 감독.
모비스 유재학 감독 
내성적인 라틀리프에 애간장
모비스의 이러한 예상 밖 전적은 외국인 선수에서 기인했다. 지난 7월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로 입단한 리카르도 라틀리프(23·200.5㎝)가 유 감독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고 있는 것. 유 감독은 “라틀리프는 굉장히 내성적”이라며 “플레이가 잘 안 풀리거나 혼내면 의기소침해져서 혼내지도 못하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유 감독은 라틀리프를 살살 어르고 달래며 시즌을 소화하고 있다. 유 감독의 이러한 배려 때문에 다행히 라틀리프는 2라운드 들어 점점 살아나고 있다. 지난 11일 원주 동부와의 홈경기에서는 26점을 올렸고, 리바운드도 9개나 걷어내며 ‘더블더블’급 활약을 보여 팀의 3연승을 이끌었다.

라틀리프가 정상적인 활약을 하자 유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드래프트 때 외국인 선수의 성격을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기량이나 체격 등은 보면 알 수 있지만 성격은 좀처럼 알 수가 없으니 드래프트 때 점이라도 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그동안 답답했던 속내를 드러냈다.

▲ KGC인삼공사 이상범 감독.
KGC인삼공사 이상범 감독 
활달한 파틸로에 함박웃음
유 감독의 이런 점과 달리 안양 KGC인삼공사의 이상범 감독은 외국인 선수 후안 파틸로(24·197㎝)의 적극적인 성격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파틸로는 2라운드 들어 조금 고전하고 있지만, 1라운드 때는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았다.

14일 현재 평균 19.08점을 넣었고, 평균 리바운드 8.5개나 걷어냈다. 게다가 화려한 덩크슛을 경기마다 보여주며 농구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감독은 “파틸로가 활발한 성격으로 빠르게 팀에 적응하고 있다”면서 “40분 풀타임을 뛸 수 있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파틸로와 찰떡궁합을 보이고 있는 포인트가드 김태술도 “경기 때 파틸로와 눈으로 대화할 만큼 친해졌다”면서 “앞으로는 더욱 화려한 플레이를 펼칠 선수”라고 파틸로를 평가했다.
 

▲ SK 문경은 감독.
SK 문경은 감독
‘한국화’된 헤인즈 보면 흐믓
서울 SK는 애런 헤인즈(31·200㎝)는 이미 KBL에서 검증이 끝난 선수다. 지난 여름 드래프트가 열린 라스베이거스에서도 헤인즈의 인기는 최정상이었다. 비록 외국인 선수치고는 덩치가 큰 편은 아니지만 그런 체격조건을 모두 커버할 만큼 화려한 플레이와 득점력을 갖췄다. 감독들이 큰 키와 덩치를 선호해 1라운드에 뽑힐 수 있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문경은 감독은 순서가 되자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헤인즈를 선택했다.

헤인즈는 어느덧 한국에서 5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삼성, 모비스, LG 그리고 SK까지 많은 팀을 거치면서 한국 농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외국인 선수로 손꼽힌다. 이 때문인지 크리스 알렉산더(32·213㎝)는 자신이 한 살 더 많지만 헤인즈를 맏형처럼 챙긴다. 문경은 감독은 “외국인 선수 두 명이 경쟁하다보면 사이가 나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헤인즈는 크리스가 뛸 때 열심히 응원하고, 작전 시간에는 조언을 아낌없이 해준다”며 흐뭇해했다. 이어 “우리 팀이 성적이 좋은 건 훈훈한 동료애를 보여주는 외국인 선수 때문이다”고 헤인즈의 칭찬에 열을 올렸다. SK는 헤인즈와 알렉산더라는 외국인 선수들 덕분에 시즌마다 초반에 고전했던 것에서 벗어나며 공동 2위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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