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저리그 LA다저스행을 앞둔 류현진 선수가 14일 오후 인천공항에서 출국에 앞서 손들어 인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괴물투수’ 류현진(25·한화 이글스)은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는 얼마나 통할까.
LA 다저스가 류현진에게 이적료로 무려 280억 원이라는 거액을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 제안한 것은 좌완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통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류현진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는 미국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MLB의 퍼펙트와 노히트 노런 투수와 비교된다고 호언을 했다. 물론 보라스의 발언은 류현진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겠지만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32년간 프로야구 선수 에이전트로 활동하며 이 바닥에서 뼈가 굵은 야구선수 출신의 그다.

PTS 결과 수준급 구위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던진 공의 속력만 측정하던 것과 달리 공의 구질 등을 더욱 입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장치가 있다. 바로 투구궤적추적시스템(PTS·Pitch Tracking System)이다. 군대의 미사일 추적시스템에서 착안해 미국의 IT 회사인 스포트비전이 2003년 개발했는데, 4년 전부터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전체가 선수 스카우트나 분석에 PTS를 활용하고 있다.

이 PTS를 류현진에게 적용한 결과 그의 직구 구위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수준급으로 평가된다.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측정한 류현진의 평균 직구 구속은 92마일(약 148㎞)이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구속과 비슷한 수준이다. 왼손투수로서는 볼이 꽤나 빠르다. 메이저리그 왼손투수들의 평균 직구 구속은 144㎞ 정도다.

PTS에서 중요하게 평가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는 직구(fastball)의 수직 움직임이다. 일반 투수들의 공이 중력으로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낙하하는 데 반해 류현진의 공 궤적은 직선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타자들에게는 마치 공이 ‘떠오르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패스트 라이징볼(fast rising ball)인데, 흔히들 볼끝이 살아 움직인다고 말한다.

2009 WBC에서 측정한 류현진 직구의 수직 움직임 폭은 최대 40㎝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수준급 투수들의 수직 움직임이 30㎝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훌륭하다. 타자 입장에서는 메이저리그 수준급 직구보다 더 떠오르는 느낌이 들 수 있다.

▲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2 팔도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2회말 한화 선발 류현진이 역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강력한 무기 체인지업
한국야구위원회(KBO) 공식 통계회사인 스포츠투아이가 분석한 류현진의 올 시즌 직구 수직 움직임은 약 32㎝였다. 여기에 직구와 같은 투구 폼으로 던지며 직구와 같은 궤적에서 떨어지는 체인지업은 왼손투수가 오른손타자를 상대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1m87, 99㎏의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직구보다 시속 15㎞가량 구속이 늦기 때문에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강점이 있다.

일단 무기는 제대로 장착했다. LA다저스가 류현진을 제3선발감으로 즉시 써 먹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체인지업이라는 확실한 변화구를 가진 류현진이 커브로 완급조절 능력까지 보여준다면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류현진은 이렇게 뛰어난 하드웨어뿐 아니라 두둑한 배짱과 승부근성 등 투수로서 갖춰야 할 소프트웨어마저 겸비해 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39·한화)의 전성기를 충분히 능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딛자마자 한국 무대를 평정한 류현진은 7시즌 동안 2점대(2.80) 평균 자책점을 유지하고 있다. 2010년에는 1.82라는 경이적인 평균 자책점으로 최고 투수의 면모를 확실하게 뽐냈다. 그러나 강타자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는 한국야구와 수준이 다르다. 다르빗슈 유(텍사스 레인저스)도 일본 무대에서 7년간 93승38패 평균자책점 1.99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지만 빅 리그에 데뷔한 올해 평균자책점이 4점대 가까이 솟구쳤다. 메이저리그와 아시아 야구의 수준 차이를 어느 정도 가늠하게 해주는 사례다.

구종 다양화로 빅 리그 준비
류현진은 일찌감치 메이저리그 진출을 준비했다. 그는 지난해 2월 스프링캠프 때부터 기존 직구-체인지업의 레퍼토리에 대해 변화를 주기 위해 구종의 다양화에 힘썼다. 1년 동안 투심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을 손보며 차근차근 빅 리그 진출을 준비했다. 올해 초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공 끝이 지저분한 투심 패스트볼을 익혔다. 메이저리그 출신의 팀 선배인 박찬호로부터 그립을 전수 받는 등 신무기 장착에 대해 고심했다. 하지만 결국 투구 밸런스 변화에 대한 위험성 때문에 투심패스트볼 장착을 포기했다.

류현진이 다양한 구종에 대한 도전을 이어갔던 것은 빅 리그 진출을 위한 준비 작업 때문이었다. 그는 새로운 목표를 찾아 끊임없는 노력을 이어갔다. 미국 진출 가능성이 불투명한 가운데서도 묵묵히 자신의 구종을 다듬으며 꿈을 준비했다.

지명타자제가 없는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에 속해 있는 다저스에 입단하면 류현진은 타석에 나서야 한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투수에게 엄청난 타격 솜씨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한화에 입단한 이후 타격을 할 기회가 없었지만 동산고 시절 파워와 정확도를 갖춘 4번 타자로 이름을 날렸다. 동산고 3학년 때 10경기에서 43타수 13안타를 날렸고, 2005년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 고교 슬러거 홈런레이스에서 7개의 홈런포를 쏘며 홈런왕에 오른 기억도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류현진이 공은 왼손으로 던지지만 타격은 오른쪽으로 하는 ‘좌투우타’라는 사실이다.

7년 새 100배 가까이 뛴 몸값
류현진은 인천 동산고 3학년 때 다저스로부터 입단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 2005년 제60회 청룡기 대회 8강 성남고전에 선발 등판해 17K 완봉승을 거두는 등 에이스이자 중심타자로 동산고의 우승을 이끈 류현진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팔꿈치 수술 전력, 군 입대 문제 등을 구실 삼아 높은 몸값을 베팅하는 데 난색을 표했다. 다저스가 고작 30만 달러를 제시하는 바람에 동산고 측은 발끈했고, 더 이상 매력적인 오퍼가 없어 메이저리그행은 무산됐다. 이제 연간 400만∼5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연봉까지 감안하면 류현진의 몸값은 7년 새 100배 가까이 뛴 셈이다. 다저스로서는 돈을 조금 아끼려다 데려가지 못했던 류현진을 이제는 특급대우로 모셔가야 하게 됐다.

이후에도 당시 드래프트는 류현진에 대한 지명 기회를 날린 SK(연고 지명권)와 롯데(2차 1번 지명권)의 실수가 종종 화제가 되곤 했다. 다저스에게도 마찬가지다. 팔꿈치 수술 전력 때문에 외면 받은 끝에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된 류현진은 데뷔 첫해인 2006년 18승6패 1세이브, 방어율 2.23의 눈부신 성적으로 투수 3관왕과 신인왕, 정규시즌 MVP까지 거머쥐었다. 류현진의 최종 입단 사인은 다음달 7일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한국 프로야구를 거친 최초의 메이저리거 류현진의 선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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