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창당 수준 리모델링에도 국민 싸늘

 

[위클리오늘=나권일 기자]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여의도 정치권은 당 지도부를 대거 물갈이하는 경선 열기로 뜨겁다. 새누리당은 16일 원내대표와 정책위 의장을 선출하고 사무총장과 대변인을 교체하는 한편, 공석인 2명의 최고위원을 선임한다. 민주당은 아예 당 이름과 강령, 당 대표와 원내대표까지 다 바꾸는 전면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지난 4일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한 것을 시작으로 19일에는 원내대표를 뽑는 경선을 치른다. 거의 ‘신장개업’ 수준의 리모델링이 이뤄지고 있지만 민주당이 원내 127석의 거대정당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도 여전하다. 5.4 전대의 후유증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김한길VS이용섭 상호비방전
지난 2일 오전, 당 대표 선거에 나선 김한길 후보가 상기된 얼굴로 국회 정론관에 섰다.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세 명의 후보 중 한 분(강기정 의원을 지칭)이 석연치 않게 사퇴하고 난 뒤 계파정치의 행태는 다시 고개를 들고, 당원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줄 세우기 징조가 보이며, 같은 당 동지인 상대후보에 대한 근거 없는 음해까지 자행돼 ‘민주당의 혼’이 훼손되고 있다. 요 며칠간 민주당이 보인 모습을 뒤돌아보면 암담할 뿐”이라며 개탄했다. 그는 이어 “우리 민주당이 모두 하나로 뭉쳐 혁신에 매진해야 할 때임에도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국민과 당원들이 어떻게 보실지 참으로 걱정이다. 엄중한 위기에 계파주의 정치를 극복하고 당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면 당의 미래는 절대 보장될 수 없다”고 이용섭 후보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용섭 후보측도 지지 않았다. 이날 오후에는 이용섭 후보의 선대위 황희석 대변인이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장에 섰다. 그는 김한길 후보측이 저지른 불법선거 증거라며 김 후보측이 서울 강북의 한 대의원에게 건 전화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자신을 김한길 의원 사무실 직원이라고 밝힌 전화상담원은 “이해찬이 이용섭을 돕고 있는데 나는 이용섭이 만약에 당대표가 되면 이해찬이 뒤에서 조종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용섭이 되면 안된다…. 이번에 5월4일날 전당대회 참석할 건가”라고 묻는 내용이었다. 황 대변인은 이 녹취록을 기자들에게 들이대며 “김한길 후보는 불법적인 전화홍보에 대해 이해찬 의원, 이용섭 후보 및 당원과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그러자 다시 김한길 후보측의 반격이 이어졌다. 김한길 후보측은 반박 보도자료에서 이용섭 후보가 오늘 점심 이후 ‘ARS투표, 기호 3번 이용섭 후보를 선택해 달라, 이용섭 후보는 선거당일 문자발송을 금지한 민주당 선관위공문을 준수했다. 반면 상대후보는 선관위 공문의 금지사항을 위반하여 선거당일 홍보문자를 발송했다. 이용섭은 정정당당한 선거운동을 통하여 여러분의 선택을 받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고 있다. 이 후보측이 불법선거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김 후보측은 이를 근거로 “이 후보측이 조금전에 발표한 성명서는 뭐고, 이런 문자를 보내는 것은 무엇인가? 국민과 당원들이 어찌 보실지 걱정”이라고 이 후보측을 거듭 비판했다.
이날의 공방전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5.4 전대를 거치면서 주류와 비주류측 앙금이 상당히 깊어져 회복에는 상당기간 시간이 흐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계파갈등 커진 민주당 5.4 전대
민주당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 ‘계파대결’은 5.4 전대를 계기로 더 심화됐다는 지적이다. 이번 5.4전대는 민주당 내 친노계 등 범주류를 대표하는 이용섭 후보와 비주류를 대표하는 김한길 후보가 출마해 주류vs비주류 세대결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범주류 측을 대표하는 이용섭 후보는 지난 1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 비주류 좌장격인 김한길 후보를 ‘분열적 리더십’으로 몰아붙였다. 이 후보는 김 후보가 지난 17대 대선 전에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전력을 들어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국회 입성으로 김 후보가 어떤 행동을 할 지 많은 분들이 불안해 한다”고 김 후보를 비판했다. 김 후보가 당권을 잡으면 민주당을 허물어뜨리고 안 의원과 새판짜기에 나설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2위를 달리던 이 후보가 친노 등 주류 세력의 위기감을 고조해 막판 뒤집기를 하겠다는 전략으로 읽혀졌다. 대세론을 위협받던 김한길 후보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 후보측 관계자는 “김 후보와 안철수 의원을 억지로 얽어매는 건 당을 분열시키려는 네거티브다. 이 후보가 과거에는 친노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듣더니 어느 새 친노 진영의 패권 놀음에 앞장서고 있다”고 힐난했다.
당권 주자들의 비난전에는 일부 최고위원 후보들도 가세했다. 친노 진영의 윤호중 후보가 “김 후보가 최고위원 후보들을 줄세우고 있다”고 비난하자, 비주류 측 유성엽 후보는 문재인 전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우원식윤호중 후보를 향해 “대선 패배의 책임이 큰 데도 뻗대고 있다”고 맞섰다.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한 안민석 의원이 “이번 전대가 민주당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계파 해체”라고 주장했지만 계파해체는 커녕 오히려 더 강화된 수준이라는 게 중론이다.

“계파대결 말자” 오더금지 모임 확산
당내 중진인 유인태 의원은 이처럼 계파대결이 극심한 이유에 대해 “친노는 비주류가 당권을 잡으면 안철수한테 당을 갖다 바칠 거란 정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비주류 쪽은 친노가 되면 희망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계파대결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4명을 뽑는 최고위원 경선도 계파별 줄세우기가 극심했다. 중도쪽에 가까운 신경민 최고위원 후보는 “계파에 의지하지 않고 뛰는 후보는 거의 없었다. 계파청산 공약을 내세운 후보들조차 계파에 의지해 선거운동을 했다”고 토로했다.
계파대결과 세과시가 심해지자 민주당 내에 ‘오더금지’ 운동이 확산됐다. 5.4 전대에서 지역위원장이 대의원들에게 특정 후보를 지지하라고 줄을 세우는 ‘오더(지침)문화’를 청산하자는 자정 운동이 벌어진 것. 계파정치 폐해 해소를 내세워 전·현직 의원들이 지난달 11일 발족해 13명으로 시작한 ‘오금(오더금지) 모임’은 5.4전대를 계기로 56명으로 늘었다. 모임을 주도한 유인태 의원은 “계파 간 불신의 골이 너무 깊다 보니 5.4 전대의 폐해가 크다. 당의 주인인 대의원들이 소신껏 당 대표를 뽑도록 하는 ‘오더 금지’ 운동이야말로 당 혁신의 실천이다”고 말했다. 오금모임은 전대 기간동안 각 지역위원회 대의원과 당원들로부터 제보를 받는 한편, 오더 모임에 동참하고 대의원에게 별도의 지침을 내린 지역위원장에게는 공개질의서를 보내고 해당 위원장의 실명을 공개한다는 원칙도 세웠다. 하지만 주류와 비주류 간 양보 없는 당권 쟁탈전으로 흐르는 이번 전대에서는 이러한 중진 의원들의 자정 노력조차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패배주의·냉소주의 만연
새 지도부를 뽑는 축제가 벌어졌지만 당내에는 패배주의와 냉소주의가 만연해있다. 민주당 내 개혁성향으로 꼽히는 정청래 의원이 지난달 28일 ‘민주당이 자주 쓰는 정치적 수사(修辭) 10가지’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는데, 그 내용이 자못 촌철살인급이어서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정 의원은 “내가 잘 안쓰는 말”이라며 “386,486은 그냥 6월 항쟁 세대라면 족해서 안쓰고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는 너무 많이 써서 차라리 안 쓰는 게 낫다”고 비꼬았다. 박기춘 원내대표가 4.24 재보선 패배 뒤 “무엇보다 더 낮고 겸허한 자세로 당의 변화와 뼈를 깎는 혁신에 매진하겠다”고 한 말을 지적한 듯 했다.
정 의원은 ‘국민속으로 들어가 현장에서 답을 찾자’는 주장에 대해선 “그걸 아직도 몰랐나?”라고 반문했고, ‘사즉생의 각오로’라는 말 역시 “그냥 웃음이 나와서 (안쓴다)”고 힐난했다. 그는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창당의 수준으로’라는 말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써와서 신뢰가 없다”고 지적했고, ‘지역과 나이, 국회의원 선수(選數)와 이념을 떠나 기득권을 버리고’라는 말에 대해서는 “한번도 실천하지 않아서”라고 꼬집었다. 정 의원은 ‘진정 국민의 아픔을 함께 하자’는 말은 “늘상 그러면서 안했기에” 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청래 의원은 마지막으로 ‘계파를 해체하고 정파 모임을 하자’는 말을 자신이 안쓰는 이유에 대해 “그것을 위해 또 모이는 게 결국 계파라서”라고 비꼬았다. 민주당의 현실을 꼬집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이 공감했다는 소문이다.

“안철수 세력과의 협력으로 체질 개선”
정치권은 5.4 전대를 치르고도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그들만의 리그’에 그친 민주당에 대해 우려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계파대결과 패배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안철수 의원 등 신진세력과 협력을 통해 체질을 개선할 것을 권하는 흐름이 일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해 화제를 모았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윤 전 장관은 “민주당은 내과적인 방법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정도다. 약을 먹는(당명과 강령을 바꾸는)것으로 지금 앓고 있는 병을 고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폭발력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존 양대 정당 이외에 한국 정치를 바꿀 수 있고 개혁할 수 있다는 에너지를 가진 존재가 유일하게 안철수 의원밖에 없다”며 안철수 세력과의 협력을 통한 변화를 주문했다. 정우택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민주당이 국민신뢰를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면 한 명의 정치신인에게 제1야당이 먹히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예고”라고 지적했다.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는 4.24재보선 패배 뒤 “5.4전당대회부터 바닥을 다지고 다시 일어서겠다”며 5.4전대의 성공적 개최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 상태다. 5.4 전대가 치러졌지만 계파대결의 후유증에다 흑색선전으로 혼탁 선거가 극심해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새 지도부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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