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찬란한 시대의 빛과 그림자


<도둑들> <광해> 등 관객몰이

 


예년과 달리 올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두 편 나왔는데,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관객 1억 명 돌파에 크게 기여했다. 영화 <도둑들>은 1298만 2801명, <광해, 왕이 된 남자>는 1109만 9000명을 기록했다. 또한 <댄싱퀸>,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건축학개론>, <내 아내의 모든 것>, <연가시> 등이 관객 400만 명 이상을 동원해 ‘연 관객 1억 명 돌파’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최근 5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늑대소년>도 비수기인 11월에 톡톡히 한몫을 한 셈이다. 또한 화제작 <남영동 1985>와 <26년>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 신기록 행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한국영화가 <어벤져스>(707만 명), <다크나이트 라이즈>(639만 명), <어메이징 스파이더맨>(485만 명) 등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 속에서도 강세를 이어갔다. 한국 영화의 장르와 소재의 다양화, 기획 수준의 향상이 관객들의 적극적인 호응을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탄탄한 기획과 시나리오가 흥행 요인

영진위의 한 관계자는 “2006년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거품이 꺼지고 기획과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탄탄해졌을 때 제작을 시작한 결과가 비로소 나타난 것”이라고 밝혔다. 2004년 이후 꾸준히 상승세를 탄 한국영화는 2006년 관객 수 9174만 5620명까지 올랐으나 2007년 이후 다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가 2012년 반전했다. 한국영화 점유율은 59%로 지난해 51.9%보다 7.1%포인트 올랐다. 이 관계자는 “올해 국민 1인당 연 평균 영화 관람 횟수가 3.12회로 미국, 프랑스, 호주에 이어 세계 4위”라며 “한국 영화의 질적 성장과 관객의 욕구가 맞물려 이러한 결과를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영화의 주 소비층이 1020세대뿐만 아니라 3040세대까지 확대된 것도 결정적 요인으로 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1020세대가 현재 3040세대가 되면서 주 관객층의 폭이 넓어졌다는 분석이다. 관객 수 1억 명 돌파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외화까지 포함한 전체 관객 수도 18일까지 역대 최다인 1억 6882만 명을 기록했다. 영진위 관계자는 “올해 1억 8000만 명 정도 기록할 것으로 판단한다. 문화 소비층은 한 번 확대되면 갑자기 줄어들지 않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 이 추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독립·저예산 영화 설 자리 없어

하지만 한국영화 관객 수 1억 명을 돌파한 것이 한국 영화계에 과연 좋기만 한 일일까.
올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은 “많은 영화들이 상영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막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며 “관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고자 만든 멀티플렉스의 의미가 퇴색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독립영화, 저예산영화 같은 작은 영화들이 설 수 있는 자리가 비좁다는 것은 기정사실화된 부분이다. 투자와 제작, 배급까지 대기업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영진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배급사별 점유율에 따르면 올해 메이저 배급사인 CJ가 24.7%, 쇼박스가 14.0%, 롯데가 13.8%를 차지하며 국내 3대 배급사가 52.5%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쇼박스가 배급한 <도둑들>의 경우 전국 1091개 상영관을 차지했고 CJ가 배급한 <광해, 왕이 된 남자>의 경우 1001개의 스크린을 차지했다. 반면에 최근 개봉 8일 만에 종영을 선언한 <터치>는 전국 95개의 스크린에 걸렸을 뿐이다. 서울 한 곳을 포함해 전국 12개 극장에서 하루 1~2회 퐁당퐁당(교차상영) 상영됐다고 한다. <터치>의 민병훈 감독은 “이런 배급 시스템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시장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와 같은 속칭 장사가 되지 않는 영화가 외면 받는 현실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제작부터 난항을 겪고 개봉조차 하지 못하는 영화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재미 위주 풍토 벗어나 창작의 폭 넓혀야

한국영화의 제작 환경이 재미 위주로 흘러가고 감독들이 투자자의 선택에 모든 것을 맡기는 분위기 속에서 결국 박찬욱, 홍상수, 봉준호, 이창동과 같은 감독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이란 불안감도 존재한다. 관객들은 창작의 폭을 넓혀 영화가 크게 발전하길 바라고 있다. 영진위 측은 영화 양극화의 폭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노력 중이고 영화인들은 그 때만 기다리고 있지만 양극화의 폭이 좁아져 공존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2012년 한국영화 관객 1억 명 돌파’가 의미하는 바는 매우 크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한국 영화산업의 저력이 빛을 발한 시기가 바로 2012년이며, 이러한 힘이 ‘한국영화 관객 1억 명 돌파’로 드러났다. 2000년대 후반 영화 제작, 투자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에 위기가 있었지만, 지속적인 노력으로 난관을 극복하면서 한국 영화산업의 저력을 보여 주었다.
영진위는 오는 12월 6일 ‘한국영화 관객 1억 명 돌파’를 기념하는 관객 초청행사를 열어 한국영화 관객에 감사함을 전하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한국영화 관객 1억 명 돌파’가 한국영화 산업을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성장의 발판이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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