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기수석, 윤창중 장악못해 화근자초

▲ 이남기 홍보수석이 윤창중 대변인을 '장악'하지 표하는 못하면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있다. 사진은 윤창중 사태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하는 이남기 홍보수석.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한기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1호 인사’인 윤 전 대변인이 저지른 기상천외한 성추문으로 박 대통령 지지율이 다시 50% 선으로 추락했다. 북핵사태로 비롯된 안보위기 관리와 성공적인 방미(訪美)외교로 쌓은 점수를 다 까먹은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은 홍보라인 뿐만 아니라 방미수행단 전원이 고강도 감찰 조사를 받느라 한겨울 살얼음판 분위기다. 새누리당의 실세 김무성 의원이 “청와대에 근무하는 공직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주(禁酒)를 선언하라”고 질타해도 변명 한마디 못할 정도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국내에서부터 홍보수석실 기강 문란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공직기강 확립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모든 공직자들이 자신의 처신을 돌아보고 스스로의 자세를 다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박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해 “윤창중 성추행 사건의 본질은 고위 공직자가 대통령 미국 방문이라는 엄중한 업무 시간에 밤새 술을 마시고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때문에 대통령이 청와대뿐 아니라 관가 전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조사와 예방을 지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공직 전반에 감사와 감찰 바람이 불어닥쳤다.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었지만 관가는 서슬퍼런 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윤창중 스캔들’은 권력의 심장부라는 청와대의 흐트러진 공직 기강이 백일하에 드러난 전무후무한 사례다. 특히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청와대 출범 당시부터 삐거덕댔다는 게 정설이다. 우선 위계질서가 문란했다. 홍보수석실 서열은 ‘홍보수석-홍보기획비서관-대변인-국정홍보비서관-춘추관장’ 순이다. 윤창중 전 대변인은 최형두 홍보기획비서관보다 아래인 ‘서열 3위’의 1급 공무원에 해당한다. 하지만 윤 전 대변인은 자신이 늘 이 수석보다 한 수 위인 듯 행동했다고 한다. 윤 전 대변인은 기자출신이지만 노태우 정권 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다 다시 기자로 복귀했다. 이후에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 캠프에서 일하다 언론계에 복귀하기를 반복했던 전형적인 ‘폴리널리스트’였다. 반면 이 수석은 윤 전 대변인보다 상급자이긴 하지만 정치경험이나 순발력, 대국민 홍보 경력이 없었던 방송국 예능 PD 출신이다.
 
윤창중, 미국에서도 홍보팀과 따로 움직여
윤 전 대변인은 이런 이유로 이수석을 사실상 홍보수석실의 상급자로 대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석이 의견을 내면 윤 전 대변인이 ‘그게 아니다’며 끼어드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이 수석도 윤 전 대변인을 장악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 누가 따라가느냐를 놓고 윤 전 대변인과 김행 대변인이 벌인 신경전이다. 두 사람의 설득에 실패한 이 수석은 “그러면 두 사람이 다 가라”고 말하며 두 손 다 들고 말았다고 한다. 결국 윤 전 대변인이 방미 때 수행하고, 6월 방중(訪中)때는 김 대변인이 수행하기로 정리가 되긴 됐지만 그때부터 직원들이 “윤 전 대변인이 어디 이 수석 말을 들을 사람이냐”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
 
윤 전 대변인은 방미 때 미국 현지에서 한 차례 브리핑을 한 것 외에는 홍보팀과 거의 따로 움직였다. 윤 전 대변인은 기자들과 술을 마시는 대신 여성 인턴과 술을 마셨고, 새벽 5시까지 워싱턴DC의 모처에서 술자리를 갖는 등 상관인 이 수석의 지휘권 밖에 있었다.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면서 언론 브리핑을 담당해야 할 대변인이 사적으로 ‘술판’을 벌였지만, 제재 한 번 받지 않았다. 윤 전 대변인은 지난 5일 뉴욕에 도착해 자신과 이남기 홍보수석의 의전차량을 확인한 뒤 “왜 나는 수석들이 타는 의전차량을 주지 않느냐. 급을 높여 달라”고 이 수석 등에게 거칠게 항의했다고 한다. 역대 정권의 청와대 대변인들은 프레스센터 차량을 대부분 사용했는데도 자신을 “수석 대접을 해 달라”고 생떼를 썼다는 것이다. 견디다 못한 이 수석이 “그럼 내가 타는 캐딜락 리무진을 쓰라”고 했다고 한다.
 
윤창중스캔들은 이런 부실한 홍보수석실의 팀워크에서 비롯된 예고된 참변에 다름 아니다. 이 수석은 최근 주변 인사들에게 “윤창중은 내 인생 최대의 악연(惡緣)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홍보수석실의 수장으로서 윤 전 대변인을 장악하지 못한 이 수석의 자승자박일수도 있다.
 
쪽잠자며 고생한 홍보라인 직원들 폭탄맞아
방미 기간 중 거의 잠도 못 자고 취재 지원에 나섰던 이들 대부분은 윤창중스캔들이라는 날벼락을 맞고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홍보수석실 직원들은 쪽잠을 자고 파김치가 돼도록 일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돼 안타깝다”고 호소했다. 이번 방미에 동행한 홍보수석실 직원들은 윤 전 대변인과 이남기 홍보수석을 제외하고 모두 8명이다. 대변인실에서 전광삼 선임행정관, 이미연 외신대변인이 수행했고, 춘추관에서 최상화 춘추관장 등 5명, 국정홍보비서관실에서 1명이 방미길에 올랐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팀은 최근 홍보수석실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방미 기간 중 행적 전체에 대한 고강도 감찰을 벌였다. 폭탄을 맞은 홍보수석실은 리모델링에 가까운 고강도의 조직개편이 단행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워싱턴DC의 주미대사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행사 기간 중 일부 청와대 수행원들은 인턴들에게 방으로 술을 가져오라고 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한 수행원은 “이왕이면 여자 인턴이 가져와라”는 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턴들이 수치심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청와대 공직기강팀은 이런 불만이 쌓인 상태에서 윤창중스캔들이 터졌던 것으로 보고 있다. 공직기강팀이 방미단 직원 전원을 대상으로 △방미 기간 중 음주 여부 △윤 전 대변인 사건 당시 대응 태도 △업무 시간 중 규정 위반 등에 대해 강도높게 조사한 것도 이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 위주의 청와대 참모시스템 바꿔야
청와대는 전대미문의 윤창중스캔들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직원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해서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한 무관용 원칙’을 지켜나가는 한편 대통령의 해외순방과 관련해 ‘청와대 업무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또 윤창중스캔들과 같은 국격훼손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앞으로는 대통령의 외국 방문 시 청와대 공직기강팀을 수행단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새누리당도 고위 공직자들이 취임하기 전에 성추행 예방 교육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윤창중법’ 마련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같은 대증요법보다는 박 대통령이 이번 기회를 청와대시스템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여론이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도 14일 박 대통령을 만나 청와대 홍보라인과 인사시스템의 개편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근본적으로 박대통령의 리더십이 달라져야 황당한 스캔들의 재발을 막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남기 수석은 지난 10일,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을 알게 된 후 26시간이 지나서야 보고한 이유에 대해 “대통령에게 아무 때나 불쑥불쑥 들어가서 보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수석비서관조차 대통령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지적에 다름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동지’의식을 공유하며, 맞담배까지 피는 단계는 아니더라도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처럼 “대통령과 수석 간에 격의 없이 가벼운 대화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대통령의 격의없는 리더십, 부드러운 리더십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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