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파 축구스타들 올 시즌 기상도

 

캡틴 박지성 ‘완장의 무게’ 실감 중    

▲ 박주영. [사진=뉴시스]

무대 바꾼 박주영 명예회복 담금질

신입생 기성용 돌풍의 핵으로 부상
친정 지킨 이청용 에이스 위상 견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축구 본고장’ 유럽 무대의 2012~13 시즌 초반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축구팬들은 이번 시즌에도 변함없이 ‘유럽파’ 한국선수들의 맹활약을 염원하고 있다. 박지성, 박주영, 기성용 등 유럽파 축구선수들의 이번 시즌 활약상은 어느 정도일까. 이번 시즌 코리언 유럽파의 가장 큰 특징은 명문클럽에서 중소클럽으로 이적했다는 점이다. 공통적으로 ‘용의 꼬리보다 뱀 머리’를 택한 셈이다. 선수들이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한 때문이다.

 

올시즌 개막을 앞두고 많은 해외파 축구 스타들이 이례적으로 자리이동을 했다. 한국 유럽파의 맏형이라고 불릴 만한 박지성(31)을 필두로 기성용(23), 차두리(32), 올림픽 메달리스트 김보경(23), 구자철(23), 박주영(27)이 새 둥지를 틀었다. 올 시즌 코리언 유럽파의 소속팀은 이전에 비하면 지명도와 위상에서 상대적으로 명성이 낮은 중하위 팀이다.


박지성의 새 소속팀인 퀸즈파크레인저스(QPR)나 기성용의 스완지시티, 구자철의 아우크스부르크는 모두 우승 도전과는 거리가 먼 팀이다. 어떡해서라도 1부 잔류가 목표인 팀이다. 스코틀랜드의 명문 셀틱에서 이적한 차두리의 뒤셀도르프는 올 시즌 분데스리가로 갓 올라온 팀이고, 박주영이 아스널에서 옮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셀타 비고 또한 이번 시즌에 1부 리그로 승격한 팀이다. J리그 세레조 오사카에서 활약하다 런던 올림픽 기간 중 이적한 김보경의 카디프시티도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에 속해 있다.
 

이런 코리안 유럽파의 변모를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봐 줘야 한다. 과거와 달리 대외적인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한 결정이고 판단이기 때문이다. 박지성이 7년간 활약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떠나 QPR로 이적한 이유는 좀처럼 잡지 못한 출전기회 때문이었다. 리그 최고의 팀 맨유에서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 출전도 하고 우승컵을 거머쥘 수 있는 기회도 있지만 출전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게 사실이다.

▲ 박지성. [사진=AP/뉴시스]

박지성도 그동안 맨유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속내를 가끔 드러내다가 급기야 지난해 주전경쟁에서 밀리며 출전기회를 잡지 못하자 새로운 길을 택했다. 맨유에서의 조연을 벗어나는 대신 QPR에서의 주연급을 차지한 것이다. 당연히 그에게 리더이자 주장이라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다. 세계 최고의 리그인 EPL에서 동양인 선수가 주장 완장을 찼다는 것만으로 센세이셔널한 사건이다. 박지성의 위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입증하는 대목이다.


항상 이기는 데 익숙했던 맨유와 달리 QPR은 약체로 꼽힌다. 지난 시즌에도 17위로 강등권에서 간신히 한숨을 돌렸다. 이번 시즌에도 박지성은 QPR 주장 완장을 차고 개막전부터 3경기 연속 풀타임을 출전했지만 1무2패에 그치며 하위권으로 내려앉았다. 맨유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전술적 역할만 소화해내면 됐던 박지성이 이제는 팀의 리더이자 에이스로서 보다 많은 것을 책임지게 됐다. 국민 모두는 박지성이 QPR을 1부 리그에 안정적으로 잔류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우는 것은 물론 자신감 있는 플레이로 많은 골을 넣어주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이는 다른 코리언 유럽파들에게도 공통된 숙제다. EPL에서 보기 드물게 FC 바르셀로나식의 짧은 패스와 점유율 축구를 구사하는 스완지시티는 기성용을 영입하기 위해 팀 역대 최고의 이적료(600만 파운드)를 투입했다. 기성용의 잠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팀의 미래 에이스로 키우겠다는 구단의 야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12∼13 시즌 개막 후 2승 1무를 거두며 쾌조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스완지시티는 기성용의 합류에 기대가 크다.

▲ 기성용. [사진=뉴시스]

기성용은 지난 1일 1명이 퇴장 당해 수적 열세였던 선덜랜드와의 3라운드 경기에 후반 교체 투입돼 미드필더로서 침착한 모습으로 안정적인 경기를 이끌며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데뷔전에서 기대 이상의 플레이를 선보인 만큼 주전 경쟁에서도 전망이 밝다. 올 시즌 스완지 시티의 돌풍과 기성용의 활약에 더욱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1년을 허비한 이청용은 팀의 1부 리그 재진입을 위해 전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진출 3년 만에 챔피언십리그에서 뛰어야 하지만 이청용의 위상은 여전히 견고하다. 2부 리그 강등으로 다른 팀으로의 이적이 점쳐졌지만 결국 팀에 남기로 한 이청용은 몸 상태를 정상으로 끌어올렸고, 지난 시즌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능력을 쏟아 붓고 있다. 오언 코일 볼턴 감독의 신뢰가 여전한 데다 이청용이 제 모습만 보여주면 볼턴의 상승세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프리미어리거인 선덜랜드의 ‘영건’ 지동원은 공격수 스티븐 플레처가 영입되면서 주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게 됐다. 스코틀랜드 국가대표로도 활약한 플레처는 지난 시즌 울버햄프턴에서 32경기에 출전, 12골을 터뜨렸다. 중위권 팀인 선덜랜드는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인 공격수 루이 사아에 이어 플레처까지 영입하면서 공격 진용을 보강했다. 주로 교체멤버로 출전했던 지동원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위기다. 마틴 오닐 감독은 지동원을 임대 대상으로 꼽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이청용. [사진=AP/뉴시스]

구자철의 아우크스부르크도 초반 2연패에 빠지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구자철은 원 소속팀 볼프스부르크에서는 충분한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지만 지난 시즌 막판 아우크스부르크로 임대되면서 맹활약해 팀의 강등을 막아내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임대기간을 연장해 올 시즌 아우크스부르크에 남게 된 구자철은 실질적인 에이스다. 런던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인 구자철에게 복귀 이후 휴식을 줄 여유가 없을 만큼 팀 내 비중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 ‘임대신화’를 쓴 구자철은 지난 2일 열린 샬케04와의 분데스리가 2라운드에서 오른쪽 발목 인대를 다쳐 우즈베키스탄과의 월드컵 예선에도 합류하지 못하는 등 8주간의 공백이 예상되고 있다. 마르쿠스 바이지를 감독은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해 구자철이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 중용할 의사를 밝혔다.


함께 셀틱에서 한솥밥을 먹다가 2년 만에 분데스리가로 유턴한 차두리는 아직 뒤셀도르프에서 데뷔전을 치르지 않았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넘치는 파워를 앞세워 오른쪽 윙백 자리를 꿰찰 것으로 보인다. 과거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데다 언어문제에 전혀 지장이 없어 안정된 적응과 함께 성공을 다짐하고 있다. 팀으로서도 1부 잔류를 위해선 차두리의 고군분투가 필요하다.


한일월드컵 이후 이천수에 이어 두 번째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로 진출한 박주영은 셀타 비고에서 아직 데뷔전을 치르지 않았지만 감독과 동료들, 팬들의 호감을 받고 있다. 프랑스 리그앙 AS모나코 시절 골잡이 역할을 훌륭히 해 낸 박주영의 명성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팀 내에 뛰어난 공격수가 4명이나 있는 만큼 박주영의 선발 출장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그의 스페인축구 적응 여부에 따라 출장기회가 좌우될 전망이다. 등번호 18번이 확정된 박주영이 첫 시즌 목표로 15골 이상을 넣겠다고 밝혔다. 박주영이 ‘성공시대’를 구가할지 관심을 끈다.


영에게 지난 1년간의 런던생활은 악몽에 가까웠다. 박주영은 아스널 입단 이후 리그 1경기 출전에 그치고 자신의 등번호 9번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며 아예 전력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기술과 감각이 강점인 박주영은 힘을 앞세운 잉글랜드식 축구와 달리 아기자기한 스페인 축구에 더 잘 어울릴 것으로 평가된다. 런던에서 쓰라림을 맛본 그가 스페인에서 재기할 것이란 긍정적인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기회이자 위기를 맞은 박주영이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데뷔 초반 좋은 활약을 펼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보경의 경우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잉글랜드 프로축구 2부 리그 카디프시티로 옮겨 유럽 생활을 시작했다. 당장은 현지 적응이 우선이지만 팀의 1부 리그 입성을 위해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유럽 무대 첫 팀을 2부 리그에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논란은 있어도 본인이 선택한 만큼 이적 첫해에 어떡해서든지 좋은 결과를 내야 하는 입장이다.
 

알차게 새 시즌을 준비한 손흥민은 최근 지난 시즌 함부르크의 부진을 만회하는 인상적인 활약으로 ‘샛별’다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에도 그랬듯 중요한 순간에 부상위험을 잘 관리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스위스 리그 바젤FC에서 왼쪽 윙백으로 주전자리를 굳힌 박주호(25), 네덜란드 흐로닝언에서 뛰고 있는 석현준(21)도 새 시즌 팀 내 입지를 좀 더 넓혀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모든 한국 선수들의 선전으로 기분 좋은 2012∼13 시즌이 되기를 기대해보자.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