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살인 방화로 치닫기도

 

[위클리오늘=신상득 전문기자]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살인에 방화까지 벌어지고 있다. 금년 들어 살인사건만 2건이나 발생했다. 정부는 다양한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층간소음 분쟁을 해결하기에 턱없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13일 인천에서 발생한 방화살인 사건을 통해 층간소음 분쟁의 실태와 대안 등을 두루 짚어 보았다.

 
층간소음으로 벌어진 방화 살인 참극

지난 13일 오후 6시쯤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의 한 다세대 주택. 아래층 세입자와 말다툼을 하던 집주인이 흉기를 휘두른 뒤 불을 질렀다. 집주인은 70대 노인 임모(72) 씨였다. 황혼 인생의 노인이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다름 아닌 층간소음이었다.

이날 오후 5시40분쯤 임 씨는 1층 현관문 앞에 있던 조모(50) 씨에게 “웅성웅성대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불평했다. 조 씨의 항의로 말다툼이 시작됐고, 조 씨의 부인 박모(50) 씨가 둘을 뜯어말렸다. 그러나 격분한 임 씨는 1년 전 샌드백 사건을 거론하며 2층으로 올라갔다. 샌드백 사건이란 1년 전 조 씨가 작은 방 천장에 샌드백을 설치하고 이를 치면서 벌어진 분쟁이다. 1년 전부터 악감정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임 씨는 2층에서 60㎝ 길이의 등산용 도끼를 들고 나와 조 씨 부부에게 휘둘렀다. 조 씨 부부는 황급히 반지하에 사는 김모(66·여) 씨의 집으로 도망쳤다. 김 씨가 임 씨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 씨 부부는 임씨가 휘두른 도끼에 부상을 입고 다시 1층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경찰에 구조를 요청했다.

무슨 탓인지 임 씨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다. 임 씨는 도끼로 현관문 유리와 집기를 마구 부수고는 집 거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조 씨 부부가 안방 문을 열었을 때 거실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조 씨 부부는 창문에 매달려 도움을 요청하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지나가던 시민에 의해 구출됐다. 하지만 작은 방에 있던 딸(27)과 남자친구 최모(24) 씨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돼 숨졌다.

경찰조사 결과 임 씨는 2년여 전부터 암 투병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그와 가깝게 지낸 이웃 주민들은 “그럴 분이 아닌데…병을 앓게 되면서 이전보다 예민해진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암 투병으로 예민해진 70대 노인이 층간 소음에 1년간 속을 끓이다가 홧김에 자신 소유의 집에 불을 질러 2명의 인명피해가 난 사건이다.

설이었던 지난 2월10일에도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다가구 주택 1층에 사는 40대 박모(49) 씨가 층간소음을 이유로 2층집 홍모(67) 씨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화염병을 던져 일가족 6명이 화상을 입거나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앞서 2월9일에는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아파트에서 김모(45) 씨가 층간소음 문제로 싸움을 벌이다 윗집 노부부의 30대 아들 형제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20여일 뒤 피해자 아버지가 충격으로 세상을 떴다.

이와 같은 경우처럼 방화나 살인까지는 이르지 않지만 멱살을 움켜쥐고 주먹다짐을 벌이거나 욕설을 내뱉으며 싸우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정부의 노력

환경부는 지난해 3월 층간소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수도권에서만 운영되는 센터를 연내 5대 광역시로 확대키로 하고 이를 위해 추경예산 1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웃사이센터가 설치된 이후 층간소음 분쟁을 해결하려는 민원상담이 폭주하고 있다. 2012년 말까지 전국에서 모두 7021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이웃사이센터를 개설하기 전까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접수된 연간 300여 건에 비하면 20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또 이웃사이센터가 서울과 경기도, 인천시에서만 운영되는 점을 감안하면 7021건은 엄청난 규모라고 할 수 있다.

그간 층간소음 민원은 2005년 114건에서 2010년 339건으로 조금씩 증가하다가 이웃사이센터가 설치된 후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셈이다. 민원이 증가세를 보이는 것은 환경부가 이웃사이센터를 설치한 사실이 알려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환경부는 이웃사이센터에 접수된 민원 중에서 특별히 1829건을 현장진단 대상으로 분류하고 현장방문 상담 등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또 지금까지 갈등 당사자를 면담해 소음 발생의 원인을 파악, 조정하고 화해를 권고하는 방식으로 1107건을 해결했다.

이웃사이센터 조사 결과 사람의 움직임인 아이들 뛰는 소리와 어른 발걸음 소리가 1388건으로 76%를 차지해 층간소음의 주된 요인으로 분석됐다. 나머지는 망치질 소리를 포함한 물건 떨어뜨리는 소리 67건, 가구 끄는 소리 43건, 피아노 등 악기 소리 38건, 가전제품 소음 35건 등이었다. 이는 평소 생활에서 층간분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셈이다.

국토교통부는 주택을 지을 때 주택성능등급 인정 및 관리기준(2008년 9월29일)을 정해 두고 있다. 1000세대이상(에너지성능등급은 300세대이상) 공동주택은 의무적으로 성능등급을 인정받아 입주자 모집 공고 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평가는 사업계획승인 설계도에 따라 소음, 구조, 환경, 생활환경, 화재소방 등 5개 부문 14개 범주 20개 항목에 대해 이루어진다. 이중 소음관련 등급은 경량충격음, 중량충격음, 화장실 소음, 경계소음이 포함돼 있다.

국토교통부는 공동주택에 적용하는 층간소음 저감을 위한 바닥 구조기준을 사업승인 대상이 아닌 다세대·다가구주택 등에도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층간소음 규제는 아파트에만 적용되고 다세대·다가구주택 등은 사실상 공동주택임에도 기준이 없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르면 올해 하반기까지 일반주택에도 층간소음 피해 방지대책을 확대 적용하는 내용으로 건축법을 개정하고 내년 중 본격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현재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적용되는 바닥두께, 중량·경량충격음 제한 등을 다세대·다가구주택에도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기준은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검토해볼 것”이라며 “아무래도 층간소음 기준이 적용되면 다세대 등의 공사비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층간소음 싸움 못하도록 한 판결

지난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51부(부장판사김재호)는 층간소음 발생으로 벌어진 이웃 간 싸움에 대해 서로 접촉하지 않고 일정 간격을 유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판결을 내렸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한 아파트 주민 A씨가 이웃주민 B씨를 상대로 낸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인 것이다.

평소 층간소음으로 살인사건 등 흉흉한 일이 발생하자 A씨는 아래층에 사는 B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살아왔으나 아래층에 사는 B씨는 A씨 집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머리가 아파 직접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현관문을 두드렸다. A씨는 이에 ‘집에 들어오지 마라’ ‘초인종 누르지 마라’ ‘현관문 두드리지 마라’ ‘전화 걸거나 문자 보내지 마라’ ‘주민들한테 허위사실 퍼뜨리지 마라’는 내용을 담은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여기에 B씨가 이를 위반하면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간접강제 결정도 신청했다.

법원은 A씨의 가처분 신청 중 ‘집에 들어오지 마라’ ‘초인종 누르지 마라’ ‘현관문 두드리지 마라’는 내용은 허용하고 나머지는 기각했다. 두 사람이 같은 아파트 동 주민이므로 평소에도 마주칠 가능성이 농후해 B씨의 행동을 지나치게 제약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층간소음 분쟁의 정부 노력과 한계

환경부의 이웃사이센터는 설립기간, 규모 등을 감안할 때 층간소음 분쟁 해결에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예산과 인력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현재 현장진단 인력은 10명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가 주택을 지을 때 1000세대 이상 공동주택에 대해 성능등급을 인정받도록 하고 있는 데다, 앞으로 다가구·다세대 주택에 대해서도 층간소음 저감을 위한 바닥구조기준을 마련하기로 한 것은 늦게나마 층간소음 분쟁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건설된 아파트와 다가구·다세대 주택이 대부분인 점을 감안하면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마련이 절실해 보인다.

환경부는 층간소음 기준을 정해두고 있다. 낮시간(오전6시~오후10시)은 1분간 측정소음이 평균 40db이상이고, 야간(오후10시~오전6시)에는 35db이상일 때를 층간 소음 기준으로 삼는다. 이 기준을 초과하면 피해자가 금전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3년간 최대소음에 350만원까지 가능하다. 최고소음도 기준으로 주간 55㏈, 야간 50㏈은 순간적으로만 발생해도 배상요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 배상을 요구해 적용된 사례는 없다. 정부는 금전배상 대신 소음 원인에 대한 조정에 주력할 방침이다. 따라서 금전배상은 앞으로도 이뤄질 가능성이 많지 않아 보인다.

국회차원의 층간소음 분쟁 해소 노력과 한계

환경부가 ‘층간소음’ 기준을 정하고 입주자는 입주 전 층간소음 정보를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의 ‘소음·진동관리법’ 개정안을 지난 3월 발의했다.

법안에 따르면 환경부는 층간소음 관리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층간소음 측정, 피해사례 조사 및 피해조정을 할 수 있다. 건설사 등은 해당 아파트의 층간소음을 확인해 이를 공개, 입주자들이 층간소음 정보를 미리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김 의원은 “층간소음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방안도 중요하지만 층간소음이 심한 아파트에 입주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방안 역시 새로 짓는 아파트나 다가구·다세대 주택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 기존 아파트를 상대로 어떤 방법으로 소음을 측정해 이를 공인받을 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마련이 선행돼야만 한다.

대안

전문가들은 층간소음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를 알고 이를 활용하면 유리하다고 말한다. 1단계는 아파트관리사무소를 통해 중재를 부탁한다. 이는 아파트 관리규약에 따른 제재에 해당한다. 2단계는 이웃사이센터에 전화상담을 신청한다. 센터 전문가가 현장 진단으로 분쟁해결을 유도해 준다. 3단계는 경찰에 신고하는 방법이다. 고의적인 경우 범칙금은 최고 10만원이다. 서로 감정이 격해 질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4단계는 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피해 현장조사를 의뢰하면 된다. 이때는 층간소음이 환경부가 정한 기준을 초과했는지, 배상기준이 되는 지 확인할 수 있다.

층간소음은 개인적인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소리에 특히 민감하다든지, ‘욱’하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다든지 하는 사람에게는 동일한 소음이라도 끔찍한 고통으로 작용하거나 대형사건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위에 적시한 대안을 활용하기 앞서 아래층 거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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