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진영 단일대오 형성한 것은 1987년 이후 처음

 

 

지난 11월 28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역 앞에 ‘준비된 여성 대통령’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새누리당 선거유세 차량이 거리유세를 위해 멈춰 섰다. 산타클로스처럼 위 아래 빨간 털옷으로 무장한 여성 선거운동원 20여명이 응원구호를 외치는 가운데 거센 바람에 종종걸음으로 달려가던 몇몇 시민들이 낯익은 인물들을 보고 멈춰 섰다.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와 박진 전 의원, 원희룡 전 의원 등이 박근혜 후보 지지연설을 하기 위해 우루루 유세 차량의 단상 위로 올라왔던 것.
붉은 야구 점퍼를 입고 첫 번째 연사로 나선 정몽준 전 대표는 요즘 유행하는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에 빗대 북한정권을 ‘북한스타일’이라고 규정한 뒤 “툭하면 협박이나 하는 북한스타일이 좋다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되겠습니까?”라며 야당인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시민들의 안보심리를 자극했다. 영국에 머물러있다 박근혜 후보 선거운동을 위해 달려온 원희룡 전 의원은 “박근혜 후보는 약속한 것은 지키는 사람입니다. 새정치와 복지국가의 약속도 꼭 지킬 것입니다”라며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야권단일화 태풍 비껴갔다”
새누리당의 선거전략은 이처럼 새정치에 대한 약속, 그리고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는 안정 희구세력을 확실히 장악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최근의 선거운동은 박근혜 후보가 전국을 순회하며 적극적인 스킨십으로 ‘박근혜 바람’을 일으키고 박 후보가 없는 지역은 중앙선대위 공동위원장들과 당의 간부들이 팀을 이뤄 거리유세를 진행하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11월 27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간 뒤 박 후보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에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면서 야권 후보단일화의 큰 태풍을 비껴갔다는 안도감 속에 총력전에 돌입한 양상이다. 새누리당은 밖으로는 2030세대와 중도층 표심을 공략하는 한편, 안으로는 보수층 결집에 나선다는 투트랙 전략을 펴고 있다. ‘집토끼’와 ‘산토끼’를 동시에 잡겠다는 복안이다.
우선 집토끼를 잡기 위해 보수진영이 총 집결했다. 이회창 전 의원과 이인제 의원 등 별도로 존재했던 보수세력들이 최근 잇따라 새누리당에 합류했고, 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도 좌파 척결의 깃발로 뭉칠 전망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조만간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친이계에 대한 구애도 적극적으로 펼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07년 대선에서 친이계 외곽조직이었던 ‘선진국민연대’ 핵심인사들도 이미 박근혜 후보 외곽캠프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수진영 단일대오 형성
보수진영이 대선에서 이렇게 단단한 단일대오를 형성한 것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한 이후 처음이라는 평가다. 새누리당의 한 전략가는 이를 근거로 “국민들에게 정권교체 열망도 있지만 안정심리가 더 강하기 때문에 이번 선거는 해볼 만하다. 각성한 보수진영이 총집결하면 50% 넘는 득표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층과 중도층을 지지자로 돌려세우기 위한 ‘산토끼 잡기’ 전략은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이 중심이 되어 전개되고 있다. 안 위원장은 “지금까지 우리가 내놓은 측근·친인척 비리 척결 방안, 민주적 국정운영 방안, 정당과 국회 쇄신 방안 등은 안철수 전 후보가 주장하던 새 정치와 같은 방향이다. 새누리당이 적극 반영하면 된다”며 안철수 후보의 사퇴에 실망한 중도층에게 구애의 전략을 폈다. 서병수 당무조정본부장도 “중도층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공약이 필요하다. 교육, 보육, 장애인 문제 등 구체적으로 특정 그룹에 맞는 정책을 속속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집토끼와 산토끼를 잡는 기본 전략 아래 펼쳐지고 있는 선거운동 전술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문재인 후보에 대한 확실한 구분짓기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달 27일 대전역 광장 유세에서 행한 공식선거운동 첫 유세에서 “지금 야당 후보는 스스로를 폐족이라고 불렀던 실패한 정권의 최고 핵심 실세였다”고 문재인 후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박 후보는 “정권을 잡자마자 국가보안법을 폐기하겠다, 사학법을 개정하겠다 등 이념 투쟁으로 날밤을 지샜다. 민생이 파탄나는 데도 밤낮없이 편가르고 국민을 선동한 사람들이다. 입으로는 서민정권이라 주장하지만 지난 정권에서 서민을 위한 정책이 하나라도 기억나는 것 있나?”라고 반문했다. 박 후보는 “이런 실패한 과거 정권이 다시 부활해서는 안된다”며 문 후보를 공격했다. 이회창 전 선진당 총재도 찬조연설에서 “이번 대통령 선거는 백과 흑의 대결이다. 약속된 미래를 선택하느냐 아니면 억울하고 참담한 탄식이 터져나오는 미래를 선택하느냐의 기로”라고 가세했다.

문재인·안철수 틈새 벌리기
두 번째 나타나고 있는 전술은 야권후보 단일화 효과 차단을 위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틈새 벌리기다. 이회창 전 선진당 총재가 이날 박 후보 지원유세에서 “문재인 후보는 정치에 처음 나온 순진한 안철수 후보를 슬슬 구스르다가 결국 벼랑에 몰아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게 했다. 후보직 사퇴란 것은 정치적으로 자살과 같다. 통큰 형님이라면서 순진한 사람을 스스로 자살하게 만든 사람을 어떻게 신뢰받고 정직한 국가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비판한 것이 그 사례다. 정몽준 공동선대위원장이 지난 28일 영등포역 거리유세에서 “여러분! 안철수 후보가 사퇴해서 안타깝죠”라며 시민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킨 뒤 “안철수 후보가 왜 사퇴했나요? 문재인 후보가 안 후보의 대북정책이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같다고 공격하면서 마음이 떠난 것”이라며 두 사람의 틈벌리기에 주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 번째는 맺힌 과거를 풀고 미래로 가기 위한 ‘결자해지’ 전술이다. 박근혜 후보가 26일 국회의원직 사퇴에 앞서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에 따른 피해자 보상법을 발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은 피해자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금 지급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법안이 통과되면 약 1천200명의 피해자들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단체 지지회견 러시
이같은 공식 선거운동이 유세현장에서 전개되는 한편 물밑에서는 조직과 돈이 박 후보에 몰리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특히 여의도동 새누리당사 4층 기자실은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각계 인사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오고가는 바람에 기자실 문턱이 닳을 정도로 바빠졌다. 박 후보 선대위의 조직총괄본부와 직능총괄본부, 국민소통본부 등 3대 ‘조직’ 담당 본부가 선거 막판 ‘총력전’ 체제로 돌입하면서 이들 조직과 관련된 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지지 선언을 하고 있는 것. 새누리당 기자실 담당자에 따르면 11월 이후 지금까지 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 단체만 50여개에 달한다.
박 후보의 조직 업무는 박 후보의 핵심 측근들이 직접 챙길 정도로 선거운동에서 중요한 부문이다. 친박계 핵심인 유정복 의원은 직능총괄본부를 맡아 물밑에서 각종 직능단체와 접촉해 박 후보의 세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홍문종 조직총괄본부장도 전국 시·도 단위의 당 조직을 관리하며 현장 활동을 독려하고 있다. 국민소통본부는 박 후보의 최대 외곽조직 ‘국민희망포럼’을 주도하는 이성헌 전 의원이 본부장을 맡고 있는데, 공식회원은 수만 명이지만, 실제로는 전국 시·도 지부까지 조직 구성을 완료해 30만여 명의 회원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7만 여명의 회원을 보유한 ‘대한민국 박사모’ 등 팬클럽 회원들도 적극적으로 뛰고 있다. 박사모는 시도별로 30개 본부를 뒀고 본부 산하에 최대 8개 지부가 속해 있을 정도로 공식 조직 못지 않은 방대한 규모다.

박근혜 펀드 250억 목표달성
‘박근혜 펀드’도 출시 51시간만에 250억원의 목표액를 달성하면서 자금문제도 청신호가 켜졌다. 새누리당에 따르면 박근혜 펀드는 1만1천831명이 가입했는데, 1인당 평균 200만원 이상을 낸 셈이라고 한다. 서병수 새누리당 당무조정위원장은 “가입해주신 분들의 열기와 진정성을 바탕으로 이번 12월19일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의 ‘박근혜 테마주’도 상종가를 기록중이다. 안철수 무소속 전 후보가 사퇴한 뒤 박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박근혜 후보의 동생 박지만 씨가 최대주주인 EG는 주가가 상승했다. 박 후보가 내세우는 복지 공약 수혜주로 분류되는 보령메디앙스와 아가방컴퍼니 등도 상승했다.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박 후보가 앞서나가고 조직과 자금문제도 순항하고 있지만 박근혜 후보 진영은 부자 몸조심하듯 신중하게 선거운동을 해나간다는 방침이다. 대선같은 큰 선거전에서는 실수 하나가 순식간에 국면전환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에 15년 정치인생을 몽땅 걸고 타고 온 배를 불살라버린 박근혜 후보의 파부침주 전략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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