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등 각론만 즐비··· 거시적 목표 없어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두 대선후보의 경제정책 공약을 들여다보면 이에 대한 상황인식과 문제의식이 잘 담겨 있다. 그래서 두 후보의 공약은 접근법에서부터 상당한 차이가 있으면서도 공통점 또한 적지 않다. 우선 ‘그랜드플랜’이 없다. 일자리, 복지 등 각론은 즐비하지만 경제성장의 거시적 목표는 뚜렷한 게 없다. 이를테면 이명박(MB) 정부의 747(7%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대국)과 같은 포괄적 목표치가 없다. 이는 MB정책에 대한 반작용 성격이 짙다. 거창하기만 할 뿐 실현이 불투명한 목표는 아예 내걸지 않은 것이다. 마치 비행기 이름같은 747은 목적지 근처도 가보지 못한 채 일찌감치 추락하고 말았다. 

두 후보의 경제공약엔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반성이 깔려 있다.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복지 경쟁을 펼치는 것은 그 산물이다. 
그렇다면 두 후보의 공약들은 모두 실현이 가능한 것인가. 그렇지가 않으니 문제다. 양측 공약 모두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돈을 쓰겠다는 곳은 많은데 재원조달 방법은 분명치 않은 탓이다. 공약 실현가능성이 의심받는 이유다. 돈(재원)이 확보되지 않으면 정책은 실현되지 않는다. 공약을 지키겠다고 무리하게 재정지출을 늘릴 경우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정부 부채가 급증하면서 재정건전성이 급속히 악화할 개연성이 크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가 남 얘기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두 후보의 경제정책은 닮았다. 각론에서 차이가 있으나 뚜렷한 성장 목표가 없고 백화점식 복지정책을 내건 것은 마찬가지다. 재원조달이 소요액과 맞아떨어지지 않는 점도 그렇다. 이 때문에 상당수 경제정책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를 던진다. 더욱이 차기 정권 내내 3%대 미만의 저성장 기조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기업수익이 악화하고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큰 것이다. 복지 여건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양측 주장처럼 복지가 내수를 살려 성장을 촉진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장담키 어려운 가설이다. 오히려 복지 자체가 좌초하거나 무리한 복지 지출로 재정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꼬리를 문다. 특히 후자의 경우 나라살림이 거덜난 남유럽 국가의 전철을 밟는 꼴이 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돈 쓰겠다는 곳 많은데 재원 마련은 어떻게
두 후보의 공약과 재원조달 방안에 분명한 차이는 있다. 박 후보는 “증세는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달리 문 후보는 연평균 17조2000억원 증세안을 제시했다. 양측은 최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제출한 답변자료를 통해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제출된 ‘박근혜 공약 수입·지출표’를 보면 복지를 포함해 각종 공약 이행에 97조5900억원이 필요하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공약은 더 추가될 것이고 소요액은 늘 것이다. 박 후보는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론에 증세안은 넣지 않았다. 5년간 예산절감과 세출구조조정으로 71조원, 세제개편으로 48조원, 복지행정 개혁으로 10조6000억원, 기타 재정수입 증대로 5조원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총 134조5000억원, 연평균 27조원을 증세 없이 마련하겠다는 얘기다. 11월 26일 TV토론에서도 “증세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증세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홍성걸 국민대 교수의 질문에 박 후보는 “경제 상황이 어려운데 국민께 부담부터 드린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증세 반대 입장을 밝혔다. 증세는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홍 교수의 지적처럼 증세 없이 이처럼 막대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 후보 캠프 내부에서도 증세 불가피론이 고개를 든지 오래다. 더욱이 소요예산은 급증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MB정부 100대 과제중 일몰되지 않는 것이 누락돼 있는데 이를 포함하면 재원소요는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의 각종 공약 이행에는 연평균 34조7000억원이 필요하다. 문 후보는 이중 절반 가량을 예산절감, 추가 세입증가로 나머지 절반 가량은 증세로 조달하겠다는 것이다. MB대형국책사업 전면 재검토, 사회간접자본(SOC) 등 경제개발 예산 축소 등을 통한 세출예산 절감으로 11조2000억원, 복지전달체계 구조조정 등을 통한 세입증가로  6조4000억원을 조달하고 17조 2000억원은 증세로 해결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문 후보의 ‘대차대조표’ 역시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우선 재원 소요가 더 늘 가능성이 크다. 고령자, 중장년층과 청년의 세대융합형 창업지원, 대학입학지원처 설치 등 ‘비예산’으로 잡아놓은 숱한 공약들이 결국엔 재원 소요를 늘리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장기 불황에 진입한 터에 증세도 쉽지 않은 일이다. 문 후보는 소득세 최고세율(38%) 적용 확대, 대기업 법인세 최고세율 22%에서 25%로 원상회복, 비과세 감면제도 축소 등의 증세안을 제시했는데 고소득자와 기업들의 저항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이광재 사무총장은 “공약 이행에 필요한 돈의 규모는 택시미터기 올라가듯 계속 올라갈 가능성이 큰데 재원조달 방안은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두 후보 모두 공약 이행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평가했다.  
 
저성장 악조건, 재정이 버텨낼까
두 후보 모두 복지경쟁을 펼치면서도, 즉 재정지출 요인을 쏟아내면서도 재정건전성 회복을 외친다. 박 후보는 공공부문 개혁, 빚을 내지 않는 재원조달, 세출절감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문 후보는 세제개혁, 복지지출구조 개혁 등을 통한 재정건전성 회복을 말한다. 모순된 주장이다. 돈 쓸 곳을 잔뜩 늘어놓고 재정건전성도 높이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반대방향으로 뛰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망은 낙관론보다는 비관론 쪽에 가깝다. 경제전망이 너무 어둡고 후보들의 전략은 추상적이다. 박 후보는 신성장동력으로 정보통신기술 등 과학기술의 응용을 강조한다. 과학기술을 각 산업 분야와 접목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장을 촉진한다는 구상이다. 문 후보는 첨단기술 기반형 산업육성, 신재생에너지 등을 신성장동력으로 제시했다. 세계경제에 한파가 몰아친 상황에서 이 정도로 성장 엔진이 힘차게 돌아갈지 의문이다. 
일자리 창출 방안도 신뢰를 얻기엔 역부족이다. 두 후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OECD 기준인 15∼64세 고용률이 작년 기준 63.9%였음을 감안하면 150만개의 일자리가 더 만들어져야 한다. 저성장 국면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두 후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차별금지, 최저인금 인상, 법정정년 60세 연장, 기업의 근로자 해고요건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모두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들이다.
재정건전성을 걱정해야 하는 이유는 널려 있다. 저성장 속에 재정지출을 늘리려면 빚을 늘릴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 하우스푸어 대책도 위협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박 후보는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금융회사와 민간 자산관리회사(AMC)가 보유한 연체채권을 매입해 금융채무불이행자들의 채무상환을 돕겠다는 구상이다. 채권이 부실화할 경우 재정 부실로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 후보는 이자제한법상 연 39%인 이자율 상한을 25%로 14%p 내리는 방안 등을 제시하고 있다.
안그래도 재정 전망은 어둡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 10월 발표한 ‘2013년 및 중기 재정운용 분석’ 보고서를 통해 내년 관리재정수지가 마이너스 18조5000억원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2014년에도 20조원 이상 재정적자가 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흐름으로 국가채무는 2012년 450조9000억원에서 2013년 478조6000억원, 2014년 517조1000억원, 2015년 554조원, 2016년 591조8000억원으로 600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다. 
적어도 향후 4∼5년은 저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상당수 경제전문가들이 3%대 이하의 저성장 시대를 전망하고 있다. 최악의 환경이 차기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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