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항명에 제 임기 못 채우고 중도하차

▲ 한상대 검찰총장이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대회의실에서 사퇴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이날 한 총장은 오후에 검찰개혁안과 대국민 사과문 발표 후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었지만 취소 후 오전으로 앞당겨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뉴시스
“저는 오늘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합니다. 먼저 최근 검찰에서 부장검사 억대 뇌물사건과 피의자를 상대로 성행위를 한 차마 말씀드리기조차 부끄러운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 크나큰 충격과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검찰총장으로서 고개 숙여 사죄를 드립니다. 남의 잘못을 단죄해야할 검사의 신분을 망각하고 오히려 그 직위를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른 데 대해 검찰의 총수로서 어떠한 비난과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 저는 이제 검찰을 떠납니다. 떠나는 사람은 말이 없습니다. 검찰 개혁을 포함한 모든 권한은 후임자에게 맡기고 표표히 여러분과 작별을 하고자 합니다.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한상대 검찰총장이 30일 짤막한 회견문을 남기고 검찰을 떠났다. 이로써 한 총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한 11번째 검찰총장이 됐다.
 
청와대도 즉각 한 총장의 사의를 수용했다. 청와대 박정하 대변인은 한 총장의 사퇴 회견이 있자마자 이명박 대통령이 “검찰이 보여준 최근 일련의 사태는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국민의 신뢰를 잃게 했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 한상대 총장이 책임을 지고 퇴진하는 것을 계기로 삼아 검찰은 철저한 자기반성을 토대로 시대에 맞는 개혁을 추진하는 것만이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고 검찰 스스로에 대한 국민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 총장이 사퇴하면서 그가 발표하려 했던 검찰개혁안의 실행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중수부 폐지를 골자로 한 개혁안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특수통 검사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컸고, 한 총장이 최재경 중수부장을 감찰하라고 지시하면서 사상 초유의 검찰 항명 사태로 번졌다.
 
결국 한 총장의 사퇴와 청와대의 즉각 수용으로 파국으로 치닫던 검찰 사태는 진정국면을 맞았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한 총장이 대검중수부 폐지 등 개혁안을 실현시키지 못함으로써 검찰 자체의 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가게 된 것. 이로써 검찰개혁의 ‘공’은 다시 정치권으로 넘어가게 됐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법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며 파상공세로 대선 정국에 임하고 있다. 박 후보와 문 후보 모두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특수수사 기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상태다. 
 
먼저 박 후보는 대통령 친인척과 권력형 비리에 특별감찰관제를 도입하고, 상설특검제와 검경 수사권 분점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문 후보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검찰 인력의 행정기관 파견 금지 등을 검찰개혁 과제로 제시했다. 민주당은 대검 중수부 폐지안이 포함된 검찰청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하기도 했다.
 
정치권 뿐 아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법피해자모임, 새사회연대 등 10여개 단체로 구성된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연석회의’는 지난 14일 토론회를 열고 대선후보들이 검찰 개혁에 나설 것을 주문하는 등 시민단체들도 검찰 개혁을 주문하며 대선주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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