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원전 불량부품 납품 따른 가동 중단사태 진단

▲ 신고리 1·2호기 전경.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신상득 전문기자] 원전의 잇단 가동중단으로 올 여름 전력대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계획예방정비와 고장 등으로 8기 가 멈춰 있는 상황에서 지난달 28일 2기가 추가로 가동을 멈췄기 때문이다. 가동이 갑자기 중단된 2기 는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불량부품이 납품된 원전이다. 결국 현재 가동이 중단된 원전은 전체 23기 중 10기에 해당한다. 10기의 설비용량은 771만6000㎾로 이는 전체 원전 23기 용량(2071만6000㎾)의 37% 수준이다. 정부는 고장 수리 중인 울진 4호기, 영광 3호기의 재가동을 서두르고, 건설 중인 원전 의 준공 일정도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장기 대책이어서 정부와 국민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오는 8월 블랙아웃(대정전) 사태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럽게 몰아닥친 전력난

당초 산업통상자원부는 올여름 전력수요가 피크를 이룰 것으로 예상되는 8월 둘째 주 최대 전력수요를 약 7900만㎾로 예상하고 같은 기간 공급능력을 지난해(7708만㎾)보다 300만㎾ 정도 많은 8000만㎾ 로 끌어올릴 계획이었다. 정부의 이 계획대로라면 매 년 전력 사용량이 증가하긴 해도 블랙아웃 사태는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전력량 사용 에 따라 환경단체의 반발에도 불구 하고 원전을 계속 건설하고 있고, 또 건설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난데없는 복병이 나타났다. 원자력발전소에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불량부품 납품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가 지난달 28일 부산 기장군 신고리 1·2호기와 경북 경주시 신월성 1·2호기에 안전시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제어케이블이 설치된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한 것. 그러나 불량 부품이 사용된 원자력발전소는 이곳이 전부가 아니라 모두 6곳이다. 현재 가동중인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 정비 중이거나 건설 중 인 신고리 1·3·4호와 신월성 2호기까지 전방위적으 로 사용됐다.

제어케이블이란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원자로의 냉각과 방사선 차단 등을 위해 안전 설비에 신호를 전달하는 핵심 장치다. 제어케이블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핵연료나 방사능 누출 등 대형 원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제보에 따라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호기를 우선 조사한 결과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사실을 발견했다”며 “원본 시험성적서를 분석해 보니 해당 부품이 시험을 통과 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원자력안전위가 확인한 불량부품이 납품된 원자력 발전소는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였다. 원자력안전위는 또 지난 4월8일부터 예방정비 중이어서 가동하고 있지 않은 신고리 1호기와 정비를 마치고 운영허가 심사단계여서 마찬가지로 가동하고 있지 않던 신월성 2호기에 대해 해당 부품을 교체하라고 지시했다. 동시에 가동 중이던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에 대해서는 즉각 가동을 중지하고 제어케이블을 교체하라고 권고했다.

시험성적서 위조로 인해 불량 부품이 확인된 원전 2기 가동이 중단되고, 정비를 마치고 곧 가동될 예정이었던 1기의 가동이 지연되면서 국내 전력수급에 초 비상이 걸렸다.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가 각각 100만㎾ 용량이므로 원전 2기가 멈춰 200만㎾의 전력공급이 당장 줄어들게 됐다. 또 계획예방정비를 거쳐 조만간 다시 가동될 예정이었다가 재가동 시기가 미뤄진 신고리 1호기까지 포함하면 총 300만㎾ 의 전력공급이 불가능해졌다. 300만㎾는 정부가 금년에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전력수요다. 결국 2013년 여름 최대 전력 공급은 지난해 전력 수요 7708만㎾ 수준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8월 둘째 주가 되면 예비전력은 200만㎾ 정도 부족할 것으로 예상 된다. 더구나 문제가 된 제어케이블을 전부 교체하는데 최소 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여 전력수요가 많은 7~8월 전력대란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 “8월초 최악의 상황” 우려

산업통상자원부 정승일 에너지산업정책관은 “전력수급이 6월 초에는 아슬아슬하고 8월 초에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여름에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5월28일부터 9월 말까지를 ‘여름철 전력수급 대책기간’으로 정하고 산업부 2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전력수급 비상대책본부’를 가동했다.

이미 계획예방정비와 고장 등의 이유로 멈춰 있던 8기와 이날 가동이 중단된 2기 등 10기의 설비용량은 771만6000㎾로 이는 전국 원전 23기 용량(2071만 6000㎾)의 37%에 해당한다. 2012년 기준 국내 총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30%라는 점을 고려하면 원전 10기가 공급하는 전력은 전체 전력공급량의 10% 가 넘는다.

박성택 산업부 전력산업과장은 “지난 주 후반부터 예비전력이 100만∼200만㎾까지 떨어지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없는 한 7월말 8월초 전력부족으로 인한 대규모 정전 등 비상사태가 닥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전력 수요 감축밖에 해결책이 없음을 의미한다. 한진현 산업부 2차관은 에너지관련 기관장 및 14개 업종별 단체 대표들을 만나 “올여름 사상 초유의 전력난이 불가피하다”며 전력 수요 감축에 산업 계가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정부는 고장 수리 중인 울진 4호기, 영광 3호기 등의 재가동을 서두르는 한편 건설 중인 원전의 준공 일정도 최대한 앞당기기로 했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서균렬 교수는 “냉방을 많이 쓰고 공장 가동을 100% 유지한다면 100만㎾ 이하로 예비 전력 떨어지고 대정전으로 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세기만에 가장 긴 여름철이 예상되는 금년 여름 원전 2기의 돌발 중단으로 전력수급 비상과 최악의 전력대란이 현실화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철강업계 반응 가장 심각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 가동 정지로 산업용 전기를 많이 쓰는 포항철강공단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는 철강업계의 특성상 24시간 전력을 사용해야 할 뿐 아니라 전력사용량이 많고, 전력이 차단되면 엄청난 손해가 야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철강업체들의 제조원가 중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5%로 국내 산업계에서 전력 사용량이 가장 많다. 포항철강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전기사용료 등을 절감하기 위해 올해도 사회적 전력절감 요구에 맞춰 발전시설의 수리일정 등을 조정하고 자가발전시설을 최대한 가동할 방침이다.

포스코는 해마다 전력량 중 약 70%는 부생가스를 이용한 자가발전과 코크스 건식 소화설비, 고로 노정압발전 등 에너지 회수설비와 LNG 복합발전설비를 통해 자체적으로 조달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더위가 일찍 찾아온 데다 원전 가동중단 사태로 6월부터 예비전력이 약 200만㎾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상돼 자가발전 만으로 버티는 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가발전율이 떨어지는 현대제철이나 동국제강 등은 아직까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당장 이달부터 ‘주간예고제’등 전력제한조치가 시행되면 추가로 전기를 아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생산계획을 변경해야 할 처지다. 지난해 전력난 때도 정부의 의무절전대책에 따랐던 만큼 올해도 한전의 수요관리제도에 따라 권장시간에 맞춰 공장을 가동하고, 조업일수를 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지난해 수요관리제 및 주간예고제에 따라 절전운동에 동참하긴 했지만 전력 사용량은 전년 대비 최대 10%까지 증가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의 경우 연간 전력 사용금액이 8000억원으로 국내에서 삼성전자와 함께 가장 높다. 올해 정확한 전력 사용량을 추산하기는 어렵지만 전기사용료 증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비상대책

정부는 전력 대란을 막기 위해 지난달 29일부터 본격적으로 전력 수급 비상대책본부 가동에 들어갔다. 산업부는 6월부터 전력 공급에 차질이 예상되고, 8월에는 전력 위기가 최고에 달할 것으로 우려하면서 9월 말까지를 여름철 전력 수급 대책 기간으로 지정했다.
또 산업체의 휴가 분산과 조업 조정을 확대 시행하고, 에너지 과소비 단속도 강화해 전력 수요 감축에 주력할 예정이다. 앞서 한진현 산업부 2차관은 전력 수급 관련 “올여름 사상 초유의 전력난이 불가피하다며 단기적으로는 공급 수단이 제한적인 만큼 수요 감축을 위한 산업계의 동참”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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