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학 부정선거 해부

 
지난 21일 치러진 부산 외국어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개표 직전 투표함을 통째로 바꿔치기해 당선되는 초유의 부정투표 사태가 벌어졌다. 범인은 총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이었다. 선거관리를 맡은 이들은 집행부 출신으로 구성된 총학생회 후보자를 당선시키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뿐만 아니라 치밀한 범죄를 위해 사전에 모의를 했으며, 부정선거를 위해 필요한 투표함 1개를 남구선관위에서 추가로 빌렸다 범행 후 반납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학에서 투표함이 바꿔치기 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로 대학교수와 학생들은 마치 1950년대 자유당 정권을 보는 것 같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총학생회의 대담하고도 충격적인 투표함 바꿔치기를 집중 해부했다.

#1. 압도적 당선과 부정투표 의혹
지난 21일 치러진 부산외국어대 총학생회장 선거에는 현 총학생회 ‘예스위캔’의 집행부 간부인 ‘챔피언’을 비롯한 3팀의 총학생회장-부회장 후보가 출마했다. 이날 투표에서 ‘챔피언’은 다른 두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챔피언’은 전체 8309명 중 3328명(40.7%)이 참가한 투표에서 총 1625표(투표자의 48%)를 얻었다. 나머지 2개 팀은 851표와 729표를 얻는 데 그쳤다.
 
선거기간 내내 약세로 평가된 ‘챔피언’이 당선되자 나머지 두 후보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선거관리위원장과 위원이 모두 현 총학생회 간부였기 때문에 부정투표 소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현 부학생회장이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았고, 선거관리위원 3명도 총학생회 집행부였다.
 
부정투표 의혹은 한 학생이 투표를 마치고 촬영한 인증샷의 투표함이 교내 언론사가 촬영한 투표함 사진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선거관리를 맡은 총학에 항의하면서 공식적으로 불거졌다. 탈락 후보와 지지자들의 거센 항의에 대학본부는 교수 2명, 직원 2명, 학생 2명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나섰고, 당시 선거를 위해 부산 남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빌려온 투표함 개수가 실제 투표에 사용한 개수(9개)보다 1개 더 많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학내에서는 “너무 창피하다. 부끄러운 부정선거” 등 갖은 자숙과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여기에 부정선거를 뒷받침할만한 CCTV기록 등 증거가 속속 발견되자 현 총학생회장과 부회장은 마침내 23일 자신들이 투표함 바꿔치기했다고 실토했다. 학교측은 논란이 가열되자 교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부정선거에 개입한 현 총학 간부들에게 진술서를 제출토록 하는 등 사태 진화에 나섰다.
 
#2. 범행수법과 범행과정
‘예스위캔’은 수년째 이어온 비운동권을 표방하는 총학생회다. 이들은 총학 간부 출신인 후배 ‘챔피언’이 예상 밖으로 학생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선거관리위원장인 부학생회장을 중심으로 투표함 바꿔치기를 공모했다. 선거관리위원장과 위원이 모두 현행 총학생회 집행부였기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총학생회장의 지시를 받은 중선관위는 먼저 부산 남구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투표함을 빌릴 때 당초 필요한 개수보다 1개를 더 빌렸고, 이 투표함에 챔피언 후보에 기표된 1697표를 넣어 봉한 뒤 벤처관에 숨겨두었다. 그리고 투표 당일 오후 10시 투표가 마감되자 투표함을 실은 차량을 몰고 C관에 들러 투표함 1개를 미리 준비한 것과 바꿔치기했다. 투표함을 실은 차량이 개표소로 가려면 차량이 U턴을 해야 하는데 벤처관 쪽으로 직진하는 모습이 CCTV에 찍힌 것을 근거로 진상위가 범행을 추궁하자 이들이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개표가 시작될 때 몰표로 된 개표함이 다른 선관위원들이나 학생들에게 들통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투표함 2개를 동시에 개봉해 탁자 위에 쏟아내는 대담함을 보였다. 이들은 진상조사위원회 조사에서 “부정선거로 총학생회장 당선이 확정된 이튿날인 22일 투표용지를 꺼내 남구 선관위에 반납하고, 용지는 바닷가에 버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위는 “총학생회장이 집행부에서 일하다가 출마한 후배를 당선시키기로 하고, 총학 간부들에게 지시하면서 부정선거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진상위는 이들이 바꿔치기한 투표함의 투표지 수가 실제 투표지 수에 매우 근접한 사실을 확인하고, 추가 연루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4명이 연루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중 1명은 가담을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학측은 ‘챔피언’ 선대본부와 무관한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 범행 배경 및 주변 반응
부산외국어대의 투표함 바꿔치기를 통한 부정선거의 원인는 무엇보다 대학생들의 도덕성 부재에 기인한다. 획일화된 교육, 성과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자라면서 갖게 된 비도덕성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가 목표로 하는 것을 성취하기만 하면 된다는 비뚤어진 의식이 이 같은 범행을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 대학의 한 교수는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기성세대의 비뚤어진 가치관이 초래한 비극”이라며 “제자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교수들의 잘못이 크다”며 고개를 숙였다.
 
대학 총학생회의 부실한 선거 시스템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선관위를 현 집행부가 맡음으로써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투표 결과를 조작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부산외대의 경우 부학생회장이 선거관리위원장, 총학 간부 3명이 선관위원을 각각 맡고 있었다. 총학은 자신들의 집행부 출신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현행 시스템 상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이 대학의 김모(25) 학생은 “1950년대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 시대에나 있을 법한 범죄행위가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에서 벌어졌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라며 “재발을 방지하려면 총학 대표 선출을 위한 선관위 구성 시스템부터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외대의 한 졸업생도 “정치권에서조차 벌어지는 않은 일이 모교에서 벌어져 가슴이 아프다”며 “부정선거에 연루된 학생에 대해서는 사법처리를 해서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학교측 관계자는 “정확한 진상조사를 통해 부정선거 가담자에 대해서는 학칙에 따라 엄히 처리할 예정”이라며 “진상조사가 끝나는 대로 제적조치 등 적절한 징계 수위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4. 향후 대책과 전망
대학 선관위는 부정선거에 연루된 ‘챔피언’을 당선무효 처리한 데 이어 새 위원장을 선출하고 챔피언을 제외한 나머지 두 팀을 상대로 28일 재투표를 실시했다. 대학 선관위는 공정한 선거를 위해 봉인지 부착, 카메라 설치, 개표장소까지 참관인 대동 등 대책을 마련해 투표를 실시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무관심과 자괴감으로 인해 투표 정족수(재적인원의 33.3%)를 간신히 채우는 데 그쳤고, ‘총학생회 공백 사태’는 겨우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갈등의 불씨가 살아있다. 재선거에서 패배한 후보 측이 현 총학생회 집행부를 형사 고발조치할 가능성, 대학에서 고발조치할 가능성, 대학 측의 사태 은폐 의혹 등 학내 진통이 우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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