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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오늘=신상득 전문기자] 올 여름 전력대란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서울 등 수도권과 광역시 등 인구 밀집지역 가정 전기가 끊기는 것으로 확인됐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6일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현안보고에서 비공개 비상전력운영계획상 단전 순위가 1순위 아파트, 2순위 백화점·대형마트, 3순위 기업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난도 만만찮다. 민주당 박완주 의원은 “시민을 볼모로 하는 순환단전은 이해할 수 없다”며 “아파트와 단독주택 등 주거밀집지역부터 피해를 감당하라는 것은 그야말로 ‘사고는 정부와 한전이 치고 피해는 국민부터 보라’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실한 정부의 전력공급 정책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엉터리 수요예측이 전력대란을 불렀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2년마다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내놓는데 2006년과 2008년에 예측한 2012년 전력량이 턱없이 모자라는 바람에 미리 전력공급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현재 전력상황은 초여름인데도 아슬아슬하기 그지없다. 전력대란이 발생할 경우 정부의 단전 계획과 정부의 잘못된 전력수요, 원전 원자재 납품 수사 상황, 2012년 공공기관의 전력 줄이기 미흡실태 등을 중점적으로 취재했다.
 
블랙아웃 발생할 경우 단전 1순위는 아파트
지난 6일 산업부 장관과 함께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현안보고에 출석한 남호기 전력거래소 이사장은 “혼란이 적은 일반가정용 전력부터 끊게 되는 것이 매뉴얼”이라며 “기업체나 공장을 먼저 끊게 되면 경제적 영향이 크기 때문인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확인된 한국전력 비상전력운영계획에 의하면 경보 5단계 가운데 가장 급박한 수준인 ‘심각 경보’가 발령되면 수도권과 광역시 등 인구밀집지역의 집단거주시설부터 순환단전에 들어간다. 전력수급 ‘심각 경보’는 예비전력 100만㎾ 미만 상태가 20분 이상 지속되면 발령된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전력당국은 사실상 권고에 의한 전력사용 감축이 힘들다고 판단하고 강제 순환단전을 시행하게 된다.
 
아파트와 주택 등 일반 가정용 전력이 최우선 순환단전 대상이 된 것은 효과가 큰 데 반해 충격이 덜하다는 이유에서다. 복합다중시설이나 제조업 등 산업용 전력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순환단전 때 후순위로 배치했다는 것이다. 반면, 병원이나 군대, 대중교통 등 공공시설에 대한 전력은 순환단전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전 관계자는 “자동차와 IT, 철강 등 제조업 공장이 단전되면 천문학적인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 가장 마지막으로 단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지역별 단전 우선순위는 따로 운영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지만 주로 인구밀집지역을 대상으로 순환단전에 들어간다. 전력거래소가 실시간 전력수급 현황을 파악하며 한전에 시간당 50만㎾씩 강제 순환단전 명령을 내리면 한전은 전력사용량 현황에 따라 인구가 밀집돼 있어 단전 때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전력공급량을 줄일 수 있는 지역을 우선 단전대상으로 삼는다. 이 경우 주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광역시가 우선순위다. 복합다중시설이나 산업체 등은 따로 지역 우선순위가 적용되지 않는다.
 
순환단전 대상이 되면 사전에 전화나 휴대전화 문자 등을 통해 공지하고 TV와 라디오 등 대중매체를 통해 이 사실을 알릴 계획이다. 한전 관계자는 “2011년 블랙아웃 당시에도 서울·수도권과 광역시의 아파트와 주택 등을 대상으로 가장 먼저 단전 조치가 시행됐고 실시간으로 대상 가정에 단전 사실을 공지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수도권 거주자는 냉장고에 부패하기 쉬운 식품의 양을 되도록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
 
산업용 전력 절전은 철강·제지가 가장 많아
전력당국은 기업체와 공장 등 산업용 전력의 경우 순환단전에서 가장 마지막 대상이지만 전력경보 초기 단계부터 절전을 통한 수요관리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 비해 특혜를 주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전력거래소가 운영하는 ‘전력시장 운영규칙’에 따르면 산업용 전력은 전력경보 1단계인 ‘준비(예비전력 400만㎾ 이상 500만㎾ 미만)’ 단계부터 전력거래소의 ‘수요관리’ 대상에 포함된다. 이때는 전력당국과 절전에 나서기로 사전약정을 맺은 기업들이 절전에 나선다. ‘주의(예비전력 200만㎾ 이상 300만㎾ 미만)’나 ‘경계(예비전력 100만㎾ 이상 200만㎾ 미만)’ 단계에 들어가면 전력거래소는 ‘수요조절’ 상황을 발령해 기업들은 긴급절전 대상에 포함된다.
 
산업부와 절전을 사전약정한 기업들은 철강, 제지, 시멘트 업종이 많다. 반면 자동차나 반도체, IT 분야 기업들은 절전 사전약정에 참여한 곳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는 철강, 제지, 시멘트는 다른 업종에 비해 공정 가동을 조절해 전력사용량을 감축하는 게 수월하기 때문이다. 반면 자동차와 반도체는 공정 가동 중단이 어려워 절전약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정부의 엉터리 수요예측이 전력대란 불렀다
올 여름 전력대란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위조부품으로 인한 원전 정지다. 원전에 들어간 위조부품을 모두 교체하기 위해 6개월 간 300만㎾의 전기생산을 갑자기 못하게 되면서 벌어진 사태다. 만일 현재 상황에서 용량 100만㎾짜리 원자력발전소 한두기만 고장나면 바로 블랙아웃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산업부의 요즘 가장 큰 업무는 올 여름 대규모 정전사태인 블랙아웃을 어떻게 방지하느냐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올여름 전력대란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위조 부품으로 인한 원전 정지가 아니다. 바로 빗나간 정부의 전력수요 예측이다.
 
산업부는 통상 2년마다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내놓는다. 문제는 이렇게 내놓은 정부의 전력수급 계획에서 전력수요가 턱없이 모자랐던 데 있다. 실제로 2006년 말 정부는 2012년 최대 전력 수요를 6712만㎾로 예상했지만 실제 수요는 7429만㎾였다. 예측치보다 무려 717만㎾(10.1%)나 전기 수요가 많았다. 이는 원전 7기가 생산하는 전력량으로 그만큼 전력공급에 차질을 빚게 됐다는 것이다. 2008년 말에 전망한 2012년 전력수요 예측치도 7296만㎾로 실제 수요에 100만㎾ 이상 못 미쳤다. 2010년 말이 돼서야 2012년 전력수요를 비슷한 수준으로 예측했지만 이미 전력을 공급할 원전건설은 늦은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2011년부터 줄곧 전력대란 우려를 낳았다.
 
전문가들은 발전소 건설은 10년 이상 내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각종 인허가와 주민 동의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보통 화력은 7년, 원자력은 10년 이상 걸린다. 산업부가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15년 뒤까지 전망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산업부의 장기(7년 이상) 수요예측은 15%나 차이가 나기도 했다. 이렇게 수요를 적게 예측한 탓에 한국은 지난 3년간 전력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잘못된 수요예측으로 인한 전력대란 우려는 심각했다. 2009년도 전력예비율(공급 능력 기준)은 14.9%로 넉넉했다. 그러다가 2010년 6.4%로 떨어진 데 이어 지난해에는 3.8%로 줄었다. 그러자 전력이 부족할 때마다 산업부는 정작 날씨 탓만 했다. 2011년 9·15 정전 때는 이상고온을 거론했고, 2012년 2월엔 30년 만의 2월 한파를 이유로 들었다.
 
박성택 산업부 전력산업과장은 “과거 계획에서 수요 관리을 지나치게 낙관해 발전소 물량이 적게 계산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대 서균렬(원자핵공학) 교수는 “공급에서 문제가 생기는데 정부는 자꾸 수요 관리로 가려고 하니 수요 관리에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잘못된 수요예측을 한 담당자에 대한 문책이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정확한 수요를 예측하기보다 시끄럽지 않게 적당히 수치를 맞추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이는 창조적으로 일을 하기보다, 과거 수준이나 기준에 준해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일머리를 잡으려는 공무원의 닫힌 행정에 기인한다. 잘못된 수용예측이 국가의 전력대란을 초래한 것이 분명하다면 책임자에 대한 분명한 처벌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절전 장기 대책 마련 서둘러야
정부가 최근 마련한 절전 대책에 주목할 만한 게 있다. 바로 피크타임요금 제도다. 정부는 평소에는 전력을 싸게 공급하다가 수요가 늘어나고 공급이 부족한 피크 때에는 전기요금을 대폭 올리겠다고 밝혔다. 전력이 모자랄 때 비싸게 받겠다는 것은 시장 원리에 충실한 제도로 보인다. 그동안 전력이 모자랄 때나 남는 때나 같은 요금으로 공급했기 때문에 전력대란이 와도 국민 스스로가 전력소비를 줄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대전기공학부 문승일 교수는 “전력대란처럼 큰일이 벌어지고 나면 정부가 나서서 이를 진화하는 데 급급해선 안된다”며 “국민이 수용하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 기회에 피크타임요금제를 정착시키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배터리 같은 에너지 저장 장치를 대규모로 보급하는 정책도 보완돼야 한다. 전기요금이 쌀 때 전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요금이 비싼 피크 시간에 이 전기를 사용하게 되면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하면서도 전력 수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 저장은 지난 10여년 동안 축전 패널이 많이 개발됐기 때문에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축전 패널은 전기자동차나 신재생에너지 같은 관련 산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 또한 막대하다. 현재 각광받는 신재생에너지는 태양력이다. 건물 옥상이나 해수면 등에 태양에너지 패널을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고, 한국전력이 이를 사들이고 있다. 무공해 에너지인 데다 위험성도 적어 장기적으로 이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태양에너지 사업을 펼치고 있는 (주)자연에너지 문상목 대표는 “관공서나 군부대 등 건물 옥상이나 호수 등에 태양에너지 패널을 설치하고, 이곳에서 전기를 생산해 한전에 파는 일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여전히 설비자금 확보 등에 문제가 있어 국가 차원에서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공기관 절전 앞장서야
앞서 밝혔듯 이번 전력대란을 자초한 것은 정부의 잘못된 전력수요 예측이었다. 그렇다면 정부는 앞장서 절전사업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나 전력대란 사태가 초래됐던 2012년 정부는 공공기관의 절전 참여율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이번 여름 전력대란에서도 과연 공공기관이 얼마나 절전에 나섰는지 파악조차 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와 함께 참여율이 저조할 것이란 분석을 가능케 한다.
 
지난 4일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2012년 공공기관 1만9000개소 5% 절전의무화 점검결과’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력대란 당시 정부는 공공기관 1만9000개소에 대한 5% 절감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경영평가 대상 111개 기관 중 70개 기관만 5% 절감을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고, 공공기관 1만9670개소의 절전 결과는 파악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은 전년동기대비 31.7% 전력사용량이 증가했으며 한국세라믹기술원,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한국감정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연구재단 등도 전년보다 각각 8.2%, 7.5%, 6.5%, 3.9%, 0.4% 증가했다. 또 지난해 ‘5% 절전의무화’와 함께 시행된 ‘숨은 낭비전력 찾기 운동’에도 공공기관의 참여율은 매우 저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56개 중앙행정기관 중 17.6(31%)만 이 운동을 시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행정기관을 제외한 1만9684개의 공공기관을 살펴보면 1만2997개소가 절전 운동을 시행한 것으로 조사됐으나 나머지 6687개 기관은 시행여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 의원은 “매년 반복되는 전기 수급 차질로 인해 정부는 국민과 기업들에게 희생과 절약을 강요하고 있다”며 “정부를 포함한 공공기관부터 솔선수범해야만 정부 정책이 국민들에 더욱 설득력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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