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경찰공소시효 미완성 소명부족"

 
진 씨는 지난 2003년 인터넷 채팅으로 한 여성을 만나게 됐다. 유흥업소 종업원 경력이 있는 그는 수려한 외모와 언변으로 여성에게 접근했다. 진심을 다하는 척 “사귀자, 결혼하자”며 끊임없이 속삭였다. 몇 차례 잠자리를 통해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 그는 이 여성에게 성관계 장면을 촬영하자고 제안했다. 깜짝 놀란 여성은 단호히 거부했지만, 그의 촬영 집념은 대단했다. 이 여성은 “혼자 보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싶다”는 등 진 씨의 갖은 사탕발림에 속아 마침내 촬영을 허락하게 됐다. 촬영을 마친 뒤 그는 만나기를 거부했다.

진 씨는 이런 수법으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2년 동안 100명 가까운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다. 피해 여성은 직장인과 대학생, 주부까지 다양했다. 그는 잠자리를 가진 대부분의 여성과 성관계를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한 사람을 상대로 두세 차례 촬영하기도 했다. 촬영은 전문가 수준이었다. 최소 2~3대의 카메라와 조명 등 전문 장비를 동원했다. 경찰은 진 씨가 이렇게 촬영한 150편을 들고 일본으로 출국했다고 밝혔다.

동영상 갖고 일본행 웹하드-P2P에 올려
진 씨는 혼자 보기에는 아까웠는지, 혹은 수컷으로서의 허영심이 자극을 받았는지 갖고 간 여성들과의 성관계 동영상을 웹하드와 P2P에 올렸다. 자기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하고 여성들은 알몸을 모두 까발렸다.

그가 동영상을 올린 사이트는 일본에 서버를 둔 사이트 ‘하자텐(haja10.com)’이었다. 그가 촬영한 동영상에도 하자텐이라는 마크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하자텐은 유료 동영상 사이트로 그는 이 사이트를 직접 관리하며 갖고 간 동영상을 유포했다. 경찰은 진 씨가 유료 회원에게서 돈을 받아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이득금 규모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자신의 성관계 동영상이 인터넷에 떠도는 걸 보게 된 한 여성이 진 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주변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동영상 속의 여성 중에는 주변 사람들이 알아볼까 두려워 성형 수술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일본에 체류하던 진 씨는 여권 기간을 연장하려 지난 20일 국내에 입국하다 김포공항에서 체포됐다. 피해 여성 고소로 2007년 수배가 내려져 있던 것. 경찰은 진 씨가 자신이 수배자 신분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진 씨를 상대로 수사를 벌이던 경찰은 난관에 봉착했다. 진 씨가 동영상 유포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 그는 경찰 조사에서 “영상 촬영에 상대가 동의했고,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에 동영상을 파기해 유포 경위를 모른다”고 주장했다.

피해 여성들의 비협조도 수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에 응한 여성은 두 명 뿐이다. 경찰에 따르면 겨우 연락이 닿은 피해 여성 10여 명은 대부분 “그 일을 잊고 조용히 살고 싶다” “7년이 지난 얘기를 왜 다시 꺼내느냐”며 증언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동영상 유포가 진 씨의 범행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으로 건너가 자신이 직접 ‘하자텐’이란 사이트를 관리했고, 이 사이트에서 동영상이 유포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동영상을 파기했다는 진술도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동영상을 올린 점도 법망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판단이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과 공소시효 완성 여부 논란
서울 서초경찰서는 진 씨를 상대로 수사를 벌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진 씨가 고소당하기 전에 출국했으므로 도피로 보기 어렵고, 이에 대한 경찰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범죄자가 외국으로 도피하면 공소시효가 인정되지 않는데, 이번 범죄의 경우 진 씨가 고소 전에 출국했으므로 도피라고 보려면 소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경찰은 진 씨의 출국이 동영상을 유포할 목적에 의한 도피라는 데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만일 경찰이 의도적 도피 혹은 일본에서의 범행을 노린 도피라고 소명하지 못할 경우 진 씨는 처벌을 면하게 된다. 결국 진 씨의 처벌은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경찰과 검찰의 소명 여부에 따라 결정될 상황이 됐다. 수사를 주목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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