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옥·한화갑·김지하·김중태 등 속속 합류 배경

▲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100%국민대통합위원회 임명장 수여식에서 한광옥 수석부위원장과 함께 김중태 전 서울대 민족주의 비교연구회장에게 부위원장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 한기주 기자> 한광옥·한화갑 전 열린우리당 대표, 김경재 전 열린우리당 의원 등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영욕을 함께 해온 동교동계 주요 인사들이 속속 박근혜 캠프에 합류하고 있다. 나아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그의 아들 현철 씨, 이인제·이회창·심대평 전 자유선진당 대표, 김종필 전 자민련 대표,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심지어 1960~70년대 유신정권의 피해자 김지하, 김중태까지 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광주·전남지역 교수 220명도 박 후보를 지지했다. 동교동계 20여명이 박 후보 캠프에 합류할 것이란 말도 흘러나온다.
선거 막바지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정치판에서 흔히 벌어지는 뒷거래라도 있었던 것일까. 70~80세가 다 돼 배신행위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박근혜 후보 말대로 국민대통합을 이뤄내고 있는 것일까. 동서화합을 이뤄내는 과정으로 봐도 좋을까. 특히 동교동계 인사들의 행보는 얼른 이해하기 힘들다. 박정희 시절 갖은 고문과 협박, 심지어는 살인 위기까지 넘긴 이들이기 때문이다.
가슴에 맺힌 한으로 보자면, 박근혜는 죽여도 시원치 않을 만큼 용서하기 힘든 원수의 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박 후보 캠프에 합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법하다. 동교동계 동지에 대한 단순한 배신행위나, 홀대하는 민주통합당에 보복으로 내린 결정으로 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섣부른 평가는 자칫 거인을 난쟁이로 오판하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교동계 리틀 DJ 한화갑의 변

12월 6일 오후 3시 국회헌정기념관. 대선을 불과 13일 남겨둔 시점에 아주 특별한 강연이 열렸다. 강사는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 강의 주제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지도자의 역할’. 한 전 대표는 목포고, 서울대 외교학과, 한국항공대 산업대학원을 마쳤다. 이어 새천년민주당 대표, 새정치국민회의 원내총무를 역임했다. 14~17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표적인 동교동계 인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리틀 DJ’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이날 관객은 민주통합당 관계자가 아니라 새누리당 당직자가 대부분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마이크를 잡은 그의 어조는 당당했다. 누군가를 배신하는 자의 비굴함 따위는 애초 없었다. 그는 한화갑을 비싼 값에 사줘서 한편으로 고맙다고 했다. 박 후보 지지가 호남지역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화갑이가 비싼 가격에 팔려가겠다고 생각했다”며 “대신 전라도에 대해 확실하게 (지원)한다는 보장을 해라. 그래야 한화갑이가 전라도를 위해 팔려간 거라고 전라도 사람에게 말할 것 아니냐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의 어조는 갈수록 비장했다. “어제 전라도와 광주 유세에서 박 후보가 한화갑이 요청한 공약을 실천하겠다고 확약했다. 그래서 아버지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의 심정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기로 했다. 또 한양 올라간 이 도령을 기다리며 옥중에서 큰 칼 차고 눈물 흘리던 춘향이의 심정으로 지지하기로 했다. 김대중 때도 못했던 일을 박 후보가 했다는 말을 듣길 원한다.”

한 전 대표는 이어 “지금은 유신 때처럼 말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정희 후보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며 지난 4일 실시된 18대 대선 후보 TV 토론 당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 후보의 막말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이번에는 여자 대통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남자끼리 대통령을 하니 매일 싸운다. 섬세한 어머니 마음으로 봉사하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 전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민주통합당, 동교동계에 대한 불편한 심경도 드러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대북송금특검을 실시하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다. 또 민주당 대표 한화갑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기소해서 국회의원직을 박탈했다. 대한민국 정치인 치고 자기 돈 가지고 정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의 도움을 받아 정치하는 것이다. 경선 때 법을 지키고 경선했던 사람 있으면 하느님한테 맹세하고 나와 보라”고 목청을 돋웠다.

그는 또 “노무현도 나를 기소했을 당시 울산에서 한 당원이 올라와서 대통령 후보 경선 때 (노 전 대통령이) 돈을 얼마 줬다고 공개했으나 검찰이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교동계 김옥두 전 의원이 편지로 서운한 심경을 드러낸 것과 관련해서는 “유신시대 같으면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면서도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라도 사람으로서 내 고향 사람에게 칭찬받는 일을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 전 대표는 특강 직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지지 선언과 별개로 새누리당에 입당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강의에 앞서 새누리당 안형환 대변인은 지지선언 관련 브리핑을 갖고 한 전 대표의 합류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요청에 의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즉, 2004년 8월 DJ가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후보를 만났을 때 자신이 다하지 못한 동서화합을 위해 일할 적임자로 박 후보를 지목하고 국민대통합을 위해 힘써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 안 대변인은 또 “일부 동교동계 정치인들은 아직도 박근혜 후보 지지에 대해 망설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한민국을 위한 애국의 길’이라는 역사의 대의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1960년대 인혁당 피해자 김중태의 변

12월 6일 오후 박근혜 후보의 TV찬조연설. 이 자리에는 1960년대 인혁당 사건의 대표적인 피해자 김중태 씨가 나섰다. 그가 맡은 직책은 새누리당 국민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 그는 1960년대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 여섯 번에 걸쳐 6년간 옥살이를 한 당사자다.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가 간첩사건을 조작해 억울하게 옥살이를 시킨 유신정권 최대의 인권유린 사례로 손꼽힌다. 그는 1970년대 8년간 옥살이한 시인 김지하와 막역한 친구사이다. 1960년대와 70년대 박정희 정권과 맞서 반유신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던 이들이 지금은 기묘하게도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후보의 선거운동원으로 뛰고 있다. 그는 담담하게 자신이 피해자였던 시절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우리는 당시 금서였던 마르크스-레닌-모택동의 저작들을 이불을 덮어쓰고 읽었다. 하지만 우리는 본래 사상적으로 자유주의자였다. 당시 6·3 민주화운동 자체가 공산주의자들의 조종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중앙정보부가 사건을 조작해 우리를 적색분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박정희 정권의 독재성과 비민주성에 대해서 반대했을 뿐 대한민국 정통성 자체를 부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의 어투는 여기에서 강해졌다. “지금 문재인 후보의 민주통합당과 이정희 후보의 통합진보당은 자기네들을 진보주의자라고 자처하면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를 향해서는 수구꼴통 정당, 유신 독재세력의 잔재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들의 진보는 명목만 진보일 뿐 실제로는 퇴보다. 이러한 진보를 가장한 퇴보주의자들의 집합소가 바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이다.”

그는 “1년에 300만명이 굶어죽는, 자유라고는 굶어죽을 자유밖에 없는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지지하며 탈북자들을 배신자라고 부르는 종북주의자, 친북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끊임없이 훼손하고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 정체성 수호 차원에서 저 같은 사람도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국’ 타이틀 4관왕으로 첫째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뀐 유일한 나라, 둘째 30년이라는 최단 기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 셋째 낫 놓고 기역(ㄱ)자도 모르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문맹률 0%의 유일한 나라, 넷째 물이 바짝 마른 강과 나무 한 포기 없는 벌거숭이 민둥산을 18년 만에 녹음방초 우거진 푸른 강산으로 변화시킨 유일한 나라”라고 설명한 뒤 “1960년 4·19로부터 1987년 6·10 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민주화운동에 피와 땀과 정열과 청춘을 바쳤던 민주인사들은 수백만에 이르러 누구 한 사람의 공로라고 말할 수 없지만, 둘째항의 산업화와 나머지 3대 유일국 타이틀에 박정희 대통령이 관련되지 않은 부분은 한 군데도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와 함께 “대한민국 사회는 권력 있고 돈 있는 윗사람들만 이득을 보고 힘없고 돈 없는 경제적·사회적 약자들만 손해를 보는 파행적 구조”라며 “이 파행적 구조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반목과 분열의 대한민국을 치유하여 국민적 대화합을 이룬 바탕 위에서 국운을 새로이 열고 미래를 개척할 지도자는 박근혜 후보 단 한사람 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김 부위원장은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5년간 추적한 국제언론인연맹 사무총장 피터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스위스 비밀계좌를 추적했는데 전혀 없었다. 개발도상국 지도자 가운데 유일하게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만들지 않은 대통령인 것을 밝혀내고 한국을 비난하던 입장에서 칭찬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또 “박 후보가 지금도 40년전 만들어진 금성사 선풍기를 사용하고 있다"며 “박정희 대통령 사후 들어선 대통령들이 일곱 분이나 되지만 어느 누구도 비리로부터 자유로운 대통령이 없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위클리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