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관 사망사건으로 본 박근혜 후보

 <위클리오늘 한기주 기자>  지난 2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최측근 중 한사람인 이춘상(46) 보좌관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역대 대통령 선거사상 캠프 관계자가 유세 과정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사고는 강원도 인제에서 춘천으로 이동하던 홍천군 두촌면 44번 국도에서 발생했다. 이 보좌관이 숨진 것은 물론 같은 차에 타고 있던 김우동 홍보팀장이 중태에 빠지는 등 일행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 보좌관의 시신은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옮겨졌다. 박 후보는 사고 즉시 홍천 병원에서 이 보좌관을 조문한 뒤, 이튿날 성모병원을 잇따라 조문했다. 이어 4일에는 장례식이 열렸고, 박 후보는 모든 일을 뒤로 한 채 장례식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며 유족을 위로했다. 박 후보는 장례식이 있던 날 오후 TV토론에 참가해 문재인, 이정희 후보와 토론을 벌였다. 

불과 3일 동안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었지만, 박 후보와 이 보좌관, 나아가 다른 3명의 보좌관과의 끈끈한 관계가 화제가 됐다. 대통령 후보를 얼굴도 보지 못하고 투표에 나서는 게 대선의 한계인 상황에서 후보를 보좌하는 주변인물을 보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박 후보와 보좌관들의 15년 인연은 국민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더구나 박 후보가 이 보좌관 시신을 앞에 두고 “너와의 약속을 지켜주마” 약속했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캠프 관계자들을 숙연케 했다.
 
15년간 한번도 교체하지 않은 측근
 두터운 신뢰 기반…가족 같은 관계
새누리당에 따르면 이 보좌관은 박 후보가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캠프 1기 공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박 후보의 정치 입문은 IMF로 인한 국가경제 위기 상황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를 자극하려는 한나라당의 선택이었다. 1979년 이후 19년간 칩거하다시피 한 박 후보가 정치 전면에 나설 때 그는 보좌그룹 4명을 공채했다. 숨진 이 보좌관을 비롯해 이재만(46), 정호성(43), 안봉근(46) 보좌관 등 4명이었다.
박 후보는 이들과 15년간 동고동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좌관이나 비서관 교체를 밥먹듯하는 일반 국회의원과 달리 그는 한 사람도 교체하지 않았다. 두터운 신뢰가 쌓이면서 박 후보의 최측근 핵심 4인방으로 불렸다. 숨진 이 보좌관은 이번 대선 캠프에서 박 후보의 SNS메시지 관리, 온라인 홍보, 팬클럽 관리 등을 맡았다. 이 보좌관은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박근혜 후보의 미니홈피를 개설했으며 온라인 홍보도 도맡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 업무와 후원금도 관리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이춘상 보좌관을 가족처럼 믿고 일을 맡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좌관은 평소 박 후보를 현장 수행하지 않지만, 이날 박 후보의 메시지 준비 차원에서 강원도 유세에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보좌관은 15년간의 바쁜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도 2009년 8월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학구열도 남달랐다. 
박 후보의 보좌관 관리에 대해 주변에서는 박 후보의 탁월한 신뢰정치를 말한다. 주변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가 가장 힘든 법인데 박 후보는 누구보다 주변 사람의 인정을 받는 정치인이라는 것. 박 후보 캠프의 임모(43) 씨는 “박 후보는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다. 보좌관이나 측근 등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사소한 약속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이 주변사람들에게 신뢰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의 잇단 죽음
“의연함으로 극복” 평가
박 후보의 최측근 사망은 충분히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할만하다. 23세 되던 1974년 8·15 기념 행사에서 모친 육영수 여사를 떠나보냈다. 문세광이 쏜 총탄에 머리를 맞아 숨졌던 것. 그로부터 5년 뒤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숨졌다. 그리고 이번에 또 최측근을 먼저 떠나 보냈다. 이 보좌관의 죽음이 더욱 큰 아픔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이후 박 후보는 20년 가까이 칩거하다시피 지내다 IMF위기 때 대구 달서에서 보궐선거에 출마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2006년 5월 20일에는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얼굴이 11cm가량 찢어지는 최악의 정치테러를 당한다. 박 대표는 곧바로 인근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돼 2시간 가량 수술을 받았다. 박 후보가 수술 뒤 처음 내뱉은 말은 “대전은요?”였다고 한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로서 의연함을 보여준 대목이다.
 
발인식에서 늠름한 보좌관 가족
슬픔 중에도 박 후보 선거 걱정
이 보좌관의 형 은상 씨는 동생이 죽은 상황에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 후보와 함께 하는 여러 사람들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박 후보께서 대통령이 돼 보다 강하고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발인식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박 후보가 어지간해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분인데, 참으로 많이 울었다”며 "그간 고통이 씻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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