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 은메달리스트 한순철 '못 다한 가슴 속 이야기'

한때의 전성기를 뒤로하고 대한민국 복싱은 그간 대중의 무관심 속에 기나긴 쇠락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러한 잿빛 현실 속에서 지난 여름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한 노장 복서의 오뚝이 같은 올림픽 메달 도전기. 주인공은 바로 ‘무명의 베테랑’ 한순철 선수(서울시청)였다.

▲ 지난 8월 7일(한국시간) 런던올림픽 복싱 남자 라이트급 8강전에서 파즐리딘 가이브나자로프(우즈베키스탄)를 16-13으로 꺾은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 선수는 2012 런던올림픽에서 극적으로 은메달을 거머쥐며 생의 마지막 빅 매치를 화려한 피날레로 장식했다. 연극이 끝나도 여운은 이어지듯, 드라마틱한 한 선수의 복싱인생은 아직도 잔잔한 감동을 남기고 있다. 지난 9월 중순 대한민국 복싱 역사를 새롭게 쓴 그를 만나 못 다한 가슴 속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런던올림픽 복싱경기는 대표적인 비인기 종목이었다. 스타가 없는 사각 링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엔 너무 비좁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한 선수는 단 둘, 그중 한 명이 28세의 노장 한순철(라이트급)이었다. 지난 2006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안타깝게 금메달을 놓친 이후 그는 ‘한물간’ 선수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선 16강 탈락의 저조한 성적에 머물렀다. 그런 그가 런던에서 메달을 획득하리라 예상하는 이는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수없이 흘린 땀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링에 올라선 그의 눈빛은 자신감에 차 있고, 내지르는 주먹에도 힘이 실려 있었다. 동점의 상황에서 극적으로 판정승을 한 16강전 이후 승승장구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점차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과는 대한민국 복싱 사의 암흑기를 마감시킨 16년 만의 은메달.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쾌거였다. 그때로부터 한 달 뒤, 후배들의 경기가 치러지는 공주대학교 예산캠퍼스에 응원차 찾아온 그와 마주쳤다. 방송 출연 등 유명세를 치른 탓에 조금은 피곤한 얼굴, 그럼에도 미소를 곁들여 인사를 건네는 그에게서 여유가 느껴졌다.


결혼까지 미루며 따낸 은메달


 ― 한 선수 자신은 물론 아내를 비롯해 가족들 역시 화제가 됐다. 두 살배기 딸은 아빠의 은메달을 보고 뭐라고 하던가.


▲ 일단은 두 살짜리가 얘기는 못하고(웃음)… TV에서 몇 번 봤는지 태극기나 코리아란 글자를 보면 ‘아빠 아빠’ 하며 가리킨다. 은메달을 목에 걸어주니 그걸 가지고 놀더라. 알아보기는 하는 것 같다.


― 12월 2일 늦깎이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 동안 결혼을 미룬 이유는 무엇인지.


▲ 그간 체전과 아시안 게임, 그리고 올림픽이 이어져 시간이 없었다. 나 같은 복싱선수는  몇 개월 쉬다보면 몸 컨디션이 망가지니까.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하면 다시 정상 컨디션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미루게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해야 되겠구나 싶더라. 그래서 늦게나마 서두르게 됐다.


― 아내한테 많이 미안할 것 같다.


▲ 혼자 두이(딸)를 돌보며 묵묵히 뒷바라지 해줬다. 솔직히 너무 미안하다.


― 올림픽 은메달로 군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안다. 어쩌면 운동선수로서 큰 부담을 던 셈인데.


▲ 좀 조심스럽다. 내가 얻은 시간을 복싱을 위해서 쓸 생각이다.


어머니 부담 덜려 실업팀 선택


― 복싱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땀 흘려온 첫 번째 이유가 어머니를 위해서였다고 들었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고생이 많았을 텐데.


▲ 맞다. 아버지는 덤프트럭 운전기사셨는데 트럭 수리를 하다가 벨트에 옷이 휘말려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그 후 어머니는 나와 동생 뒷바라지를 하며 온갖 고생을 다 하셨다. 어머니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기 위해 대학 대신 실업팀을 선택했는데, 어머니는 아직까지 안타까워하신다. 아직까지 어머니께 변변히 효도한 게 없다. 그래서 가슴이 더 아프다.


― 불시에 벌어진 일이라 충격이 매우 컸을 것 같다.


▲ 당시에는 정말 충격이 컸다. 아버지는 처음에는 복싱하는 걸 반대하시다가 나중에는 가장 열렬한 지지자가 돼 주셨다. 어쩌면 이 은메달도 하늘에서 아버지가 도움을 주신 것 같이 느껴진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가 제일 충격이 크셨겠지만 내색하지 않으시며 우리 형제를 키워 오셨다.


― 중학교 때 복싱을 처음 시작했다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


▲ 체육선생님께서 복싱을 권하셨다. 설악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사실 난 몸이 정말 약했다. 그때 몸무게가 29킬로그램밖에 안됐으니까. 그래도 하면 할수록 복싱이 재미있었다. 부모님도 처음에는 반대하시다가 복싱으로 명문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에 허락하셨다. 그렇게 시작한 복싱으로 설악중학교, 속초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개교 이래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 사춘기 시절부터 복싱선수로 살았고, 불의의 사고도 있었다. 방황의 시기는 없었나.


▲ 힘든 시절이긴 했지만 방황을 할 겨를이 없었다. 은사님들께서 수시로 챙겨주시고 신경써주셨다. 혹 흔들리는 시기가 와도 막아주시고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셨다.


―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서 후배들을 대할 때 책임감도 커졌을 듯한데.


▲ 일단은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행동도 더 조심스러워졌다. 비록 난 은메달에 그쳤지만 후배들이 금메달을 따서 우리나라 복싱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 이젠 아내와 딸을 위한 시간도 가져야 할 것 같다.


▲ 딸에게는 정말 좋은 아빠, 명예로운 아빠가 되고 싶다. 와이프한테는 정말로 어린 나이에 나를 만나 고생만 했다. 이제는 좀 더 성숙한 남편이 되도록 할 것이다.
황정호 프리랜서

 

 상자기사 / 이 정도면 금메달 같은 은메달

2012 런던올림픽 남자 복싱 라이트급(60㎏급)에서 한순철 선수가 따낸 은메달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의 이승배 선수 이후 16년 만에 일궈낸 한국 복싱의 쾌거다. 한국 복싱은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김광선, 박시헌이 마지막으로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 ‘노 골드’의 상황이 이어져왔다.


이번 런던올림픽에서 한순철 선수는 우크라이나의 바실 로마첸코(9월 12일 세계랭킹 2위 랭크)와 금메달을 두고 결전을 치렀으나 끝내 패해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 단 두 명의 선수가 대표로 출전한 올림픽에서 이뤄낸 쾌거라는 점에서 이번 은메달의 가치는 금메달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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