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오늘=강민규 기자]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 하야' 주장이 1987년 6월 항쟁 같은 시민저항운동으로 번질 조짐이다.

검찰 등에 의한 진상규명이 늦어지는데다 여야 정치권에서도 정쟁만 있을뿐 속시원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도는 이미 10%대로 떨어진 상태다. 한국갤럽이 25·26·27일 3일간 전국 성인 1033명을 상대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의 지지도는 전주보다 8%포인트 떨어진 17%였다.  

박 대통령이 ‘국정수행을 잘 못한다’는 부정 응답은 74%에 달했다. 극렬 지지층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린 것이다. 

야권 일각에서는 내각 총사퇴후 여야 합의에 의한 거국 중립내각 구성으로 돌파구를 찾자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6일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처음 주장한 이후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민주당 의원,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이 비슷한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우리 헌정사상 여야가 합의해 구성한 거국내각이 성공한 전례가 사실상 없는데다 박 대통령의 성향상 받아들일 가능성도 적어 성사 여부는 미지수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였던 지난 2005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거국내각 구성을 제안했을 때 "평소 노선도 같고 친화력이 있어야 연정이 가능한데 이런 경우는 엄청난 혼란만 줄 뿐이다. 어느 누구도 권력을 나눌 수 없다. 권력은 가진 만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며 거부한 적이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언론보도만 무성할 뿐 당국에 의한 진상규명은 진척이 없는 상태다. 검찰이 뒷북수사로 질타를 받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등 여야는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할 특별검사  채택안도 아직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28일 오후 늦게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했다고 발표했다. 박 대통령의 지시 대상에는 우 수석을 비롯해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에 연루된 안종범 정책조정수석도 포함됐다. 이원종 대통령비서실장의 경우 지난 26일께 박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한 상태다.  

야권에서는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 쇄신과 정호성 부속비서관, 이재만 총무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 등 이른바 '문고리 3인방' 경질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야권의 주장이 수용된다고 해도 바닥 민심이 이런 정도로 만족하고 넘어갈 지는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국내는 물론 외신들 마저 '박 대통령이 라스프틴 같은 요승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었다'며 경악하고 있는 마당에 특단의 대책없이는 더이상 정상적인 국정수행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페이스북에 "국민들은 내일 '광장'에서 촛불을 들겠다고 한다. 촛불은 들불이 될지도 모른다"며 29일 오후 예정된 촛불집회 전에 박 대통령이 특단의 대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는 ‘박근혜 탄핵 집회, 29일 오후 6시 광화문광장’ ‘하야 촛불’이라는 문구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는 29일 4시 30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분노의 행진'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오후 6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박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을 개최할 계획이다. 

투쟁본부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 전국빈민연합, 민중의힘 등 재야 단체들이 망라돼 있다.

앞서 서울지역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28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영풍문고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과 시민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6 서울민중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영풍문고 앞에서 집회를 가진 뒤 을지로입구역을 지나 서울광장까지 행진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서울 도심에서 열린 첫 대규모 집회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민중들이 피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가 땅에 떨어졌고 정상적인 사회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은 원내 정당 중 유일하게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거리 집회를 시작했다. 정의당은 28일 여의도와 광화문 일대에서 시국대회를 연데 이어 29일 오후 5시부터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광장에서 또다시 '박근혜대통령 하야 촉구 시국대회'를 열기로 했다.

대학생들의 시국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최순실씨의 모교인 단국대 학생들은 28일 발표한 시국선언문에서 “한 사람에 의해 국정이 흔들리는 사이 비정규직 청년이 죽음을 맞았고, 쌀값 보장을 요구하는 노인이 물대포로 쓰러지고 진도 앞바다에서 국민이 구조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고 했다. 

박 대통령 모교인 서강대를 비롯해 서울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연세대, 홍익대, 동국대, 한국외국어대 학생 등도 이날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충남대와 경북대 등 전국 각지의 학생들도 가세했다. 
대학생들은 인터넷 구글 지도에 시국선언을 발표한 학교 현황을 공유하면서 다른 학교에도 선언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27일 성균관대 교수들로 시작된 교수사회의 시국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전남대 교수 120명은 이날 “국가의 공적 시스템은 붕괴되고 사적 친분을 맺어온 몇 사람의 사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됐다”며 “청와대 참모와 내각은 총사퇴하고 거국내각을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는 “박 대통령이야말로 국정농단의 주역이자 최순실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국기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헌정 파괴 행위의 공범”이라고 했다. 

종교계와 시민단체들도 나서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비상시국대책회의(시국회의)는 “우리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질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 관련해 12월 대규모 기도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와 서해성 작가 등으로 구성된 '119포럼'은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박 대통령 퇴진과 거국중립내각 수립을 요구하는 ‘119선언’을 했다. 청소년단체인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도 29일 1차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해외 한인사회들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 장준하 선생의 아들 장호준 목사가 포함된 ‘박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50개국 재외동포’ 일동은 이날 시국성명서를 내고 “해외에서 창피해서 낯을 들고 살 수가 없다”며 박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다. 
미주희망연대는 재외동포들 명의의 성명서가 26일 오후 인터넷에 올라온 이후 27일 오후 5시 현재 전 세계 50개국 5636명이 서명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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