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린 후보, ‘보수자격시비’ 논란 내막

▲ 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MBC 스튜디오에서 열린 ‘서울시교육감 재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후보들이 토론 시작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면, 남승희, 이수호, 문용린, 최명복 후보.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 김래주 기자> 대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날선 공방은 연일 불을 뿜고 있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교육감 재선거는 대선 뒤에 가려져 서울 시민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대통령선거 당일 함께 치러지는 서울시교육감 재선거는 지난 9월26일 곽노현 전 교육감에 대한 대법원의 당선무효 판결에 따른 것이다.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관심을 끄는 것은 진보적인 성향의 곽 씨가 추진했던 학생인권조례, 무상급식 등의 교육 관련 노선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현행법상 교육감은 정당에 소속되어서는 안된다.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정치적인 중립성을 보장하자는 취지다. 그래서 교육감 후보는 보수와 진보로 양분된다. 이번 교육감 선거도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압축된다. 유권자는 자신의 성향에 따라 보수를 지지할 수도, 진보를 지지할 수도 있다. 현재 교육감 선거판을 언뜻 보면 진보는 이수호 후보로 명백한 자기 노선을 견지하면서 최고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보수는 문용린 후보로 단일화를 표방하곤 있으나 문 후보의 정치적 성향,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정체성이 매우 모호한 상황이다. 그래서 이번 교육감 선거를 보수와 진보의 대결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문용린 후보를 추대한 시민단체가 문 후보를 대부분 떠났다는 말도 들린다. 보수의 대표로 다른 후보를 추대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보수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난 것일까. 왜 문용린 후보를 보수 단일화 후보가 아니라는 의견이 분분한 것일까. 선거가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보수의 재집결 의사는 과연 타당하고, 또 가능한 일인가.

#1. 파행 겪은 보수단일화

문용린 후보는 자신이 보수단일화 후보임을 표방하고 있으나 정작 ‘보수단일화’ 과정을 들여다보면 도무지 마뜩찮다. 보수 단일화를 하려면 이를 주도하는 보수 단체나 조직이 있어야 하고, 이 단체나 조직에서 여론조사나 모바일 오픈프라이머리, 시민참여 대의원 투표 등 다양한 단일화 과정이 있게 마련이다.
이번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6월 초순 보수 교육감 후보를 단일화하기 위한 좋은교육감추대시민위원회(이하 위원회)가 구성됐다. 위원회에는 이상훈 애국단체총연합회 상임위의장, 이희범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사무총장, 유은종 공교육살리기교사연합 대표 등 100여 시민단체와 전 교육부총리, 정원식 전 총리, 홍재철 목사 등이 참가했다.
이들은 9월 30일 후보 정책 발표 듣고, 11월 2일 후보를 선출하기로 했다. 그런 상황에서 29일 오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위원회 부위원장 출신 문용린 후보가 보수단일후보로 출마할 것이란 기사가 떴고, 이튿날 조선일보에 마찬가지 기사가 실렸다.
11월 2일 후보단일화 투표에서는 정원식 전 총리를 비롯해 20명의 심사위원이 현장투표해, 15표를 얻은 문용린 씨가 후보로 당선됐다. 후보 경선에 나서려던 후보들은 후보 선출 방식 등에 불만을 제기하면서 후보로 나서지 않거나,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후보로 나섰다. 결국 위원회가 보수 대표로 내세운 인물 중에서 문용린 후보가 출마했고, 추대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던 최명복 교육의원과 이상면 전 서울대교수, 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수가 후보로 나섰다.
이로 인해 결국 보수단일화는 성사되지 못한 채 파행을 거듭하면서, 보수쪽에서 문용린 후보, 최명복 후보, 이상면 후보, 남승희 후보가 난립하는 상황이 됐고, 진보쪽에서는 이수호 후보만 단일후보로 나서게 됐다.
주목할 사실은 문 후보를 보수진영의 단일후보로 추대하는데 지렛대 역할을 한 ‘좋은교육감추대시민회의’의 임시기구를 지난 5월 문 후보 자신이 만들어 준비위원장을 맡아서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보수단일화 후보를 추대하기 위한 조직을 자신이 만들어 자신을 추천하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2. 문용린 후보 과연 보수?

보수단일화를 자처하는 문용린 후보는 과연 보수인가. 문 후보와 함께 출마한 후보들은 이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는다. 보수단일화도 아닐 뿐 아니라 보수도 아니라고 목청을 돋운다. 동시에 그의 과거 이력을 문제 삼는다. 문 후보의 과거 이력은 김대중 정부시절 교육부장관을 역임한 데서 찾는다. 비록 얼마 전까지 새누리당에서 국민행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이념적 스탠스가 모호한 진보세력이란 주장이다.
실제로 문 후보는 지난 3일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와 교육희망이 교육감 후보를 상대로 실시한 교육현안 32개 항목 조사에서 진보적인 색채를 드러냈다. 문 후보는 특히 교권추락과 동성애정당화교육 등을 주장해 논란에 휩싸였던 곽노현 전 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찬성, 판단유보, 반대 의사를 묻는 질문에서 “취지가 좋다. 교권에 대한 부작용을 보완해 취지를 살리겠다”며 판단유보 입장을 견지했다. 보수를 자처한 후보가 곽 전 교육감의 좌편향적 시각을 드러낸 셈이다.
전교조의 정치세력화를 의미하는 ‘교원정치기본권 보장’에 대해서도 문 후보는 판단유보로 답했으며, 전교조의 교육개혁 상징인 ‘혁신학교’에 대해서도 판단유보 입장을 보이는 등 좌편향적 시각을 드러냈다. 32개 문항에 대한 조사 결과에서 보인 문 후보의 스탠스는 보수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았다.
이에 대해 보수진영의 한 학부모단체 관계자는 “문 후보의 친 전교교적 인식이 우려스럽다”며 “보수인지 진보인지 알 수 없는 후보”라고 지적했다.
문 후보의 부도덕한 과거 행적도 도마에 올랐다. 특히 김대중 정권하에서 교육부장관에 재직하던 2000년 5월17일 이튿날 광주 5.18 묘역 참배를 앞두고 광주의 ‘새천년 NHK 룸가라오케’에서 386 정치인들과의 접대부를 곁에 앉히고 술판을 벌인 사건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2002년 2월 하순에는 “저소득층 자녀의 과외비 지원을 검토하겠다”는 발언으로 교원단체들로부터 공교육을 포기한 처사라며 강력한 항의를 받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좌편향적 시각을 갖고 있고, 도덕적으로도 부도덕한 인사가 자신이 만들다시피한 위원회의 20명 투표로 보수단일후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보수단체의 한 관계자는 “만일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바로 말을 갈아탈 사람이 문용린 후보”라며 “태생적으로 보수가 아닌 인물에게 보수의 탈을 씌운다고 보수가 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3. “정당인 출마는 실정법 위반” 논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현행법은 정당인에 대한 교육감 후보 출마를 차단하고 있다. 문제는 문용린 후보가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는 사실. 물론 선관위는 김종인 수하에서 캠프 요직을 맡았을 지라도 당원이 아니기 때문에 실정법에 위반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평당원도 출마를 금지시키는 마당에 캠프 핵심 요원 출신이 출마했다는 건 논란거리가 충분히 될 수도 있다.
지난달 27일 오후 열린 문용린 후보 개소식에 새누리당 현역 의원이 참가해 “이번에 자신 있으시죠, 파이팅”이라고 축사를 한 사실, ‘필승’이라고 쓰인 떡을 함께 커팅한 사실 등도 현행법 위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문용린 후보 캠프의 조직국장인 김치규라는 인물이 새누리당 당원이라는 사실, 지난 11월 23일 새누리당 교육분과 위원 50명에게 “동지 여러분(중략), 미리 연락하시고 캠프에 내방 바란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것도 정당에서 누군가 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4. 문 후보 떠난 시민단체, 이유는?

위원회를 처음 만들었던 시민단체 핵심 인사 대부분이 문용린 후보를 떠나 다른 캠프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문 후보 캠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시민단체들이 문 후보의 좌편향적 시각에 회의를 품고 떠났다는 것. 문 후보를 떠난 이유는 좌편향적 시각도 이유지만, 위원회의 보수단일 후보 추대 과정의 한계 때문으로 보인다.

#5. ‘어부지리’ 이수호-비상 걸린 보수

문용린 후보를 둘러싸고 좌편향적 시각에 대한 비판, 갈지자 행보의 정치노선에 대한 비판, 정당인의 교육감 입후보에 따른 실정법 위반 논란 등으로 진보 세력인 이수호 후보가 어부지리하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다. 실제로 ‘오마이뉴스’가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대표 안일원)에 의뢰해 11월 28~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수호 후보가 가장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내일이 선거일이라면 누구에게 투표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이수호 후보가 22.7%, 문용린 후보가 19.7%를 얻어, 오차범위 내인 3.0%포인트 차로 이 후보가 문 후보를 앞서고 있었다. 뒤이어 보수성향인 이상면 후보가 13.0%, 최명복 후보가 4.3%, 남승희 후보가 2.3%를 기록했다. 중요한 사실은 무응답은 38.0%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곽노현 전 교육감에 이어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도 진보단일후보가 우세를 보이자 보수단체에서는 비상이 걸린 분위기다. 문 후보는 보수입지를 줄곧 견지하고 있는 다른 후보에게 후보사퇴를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줄곧 보수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최명복 후보에게 사람을 보내 사퇴를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최 후보가 워낙 강경한 데다 최근 보수단일화에 간여했던 시민단체가 대거 최 후보에게 몰려간 상태여서 문 후보의 설득이 효과를 낼 지는 미지수다.
 
#6. 보수 재결집 움직임

문용린 후보가 보수단일 후보로서 자격이 미달된다고 판단하고 이탈한 보수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보수 재결집 조짐이 일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시민단체는 문 후보가 선출되기 전 위원회를 이끌었던 공교육살리기교사연합 유은종 대표,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이경자 상임대표,  애국단체총협의회 박정수 집행위원장 등 30여 단체 대표들이다.
이들은 문 후보가 보수단일후보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새로운 후보로 최명복 후보를 추대할 움직임이다.
유은종 공교육살리기교사연합 대표는 “문 후보는 보수 단일후보로 볼 수 없는 데다 철새 정치인, 도덕적 결함, 좌편향적 시각 때문에 더 이상 지지할 수 없다”며 “일관성 있게 보수를 견지하는 후보를 중심으로 재결집해 힘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지율이 워낙 낮은 데다 지명도 또한 떨어져 보수시민단체의 움직임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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