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1 7일 세계의명화 '쉰들러리스트', 나치의 절대폭력에 저항한 오스카 쉰들러 실존기

▲ 영화 쉰들러리스트 스틸컷.

[위클리오늘=강민규 기자] EBS1TV의 7일 세계의명화 <쉰들러 리스트>(원제: Schindler’s List)는 전 재산을 바쳐 유태인 1,100여 명의 목숨을 구했던 ‘오스카 쉰들러’라는 실존 인물을 다룬 영화이다. 

의도적으로 흑백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겨우 70년 전, 영화 제작 당시에는 불과 5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었다. 

독일 군인들이 유태인을 거리낌 없이 죽이는 장면들은 소름이 돋을 만큼 차갑게 묘사되었다. 

특히 유태인 마을을 소탕하는 장면에서는 바흐의 음악이 사용되었는데, 객관성이 중시되었던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바흐의 곡은 차가운 느낌으로 연주되어 학살 장면을 더 잔인하게 부각하고 있다. 

<쉰들러 리스트> 속의 유태인들은 유태인들이 어떻게 학살됐는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말이 안 된다며 믿지 않는다. 

그 장면은 유태인 학살이 얼마나 말도 안 되고 잔인했던 일인지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돈을 밝히는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꽤 흥미롭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1993년 연출한 작품이다.

주연인 리암 니슨과 벤 킹슬리, 랄프 파인즈, 캐롤라인 구돌, 조나단 사갈 등이 출연했다.

러닝타임 195분.

#<쉰들러 리스트>줄거리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9년 가을, 독일은 폴란드를 점령한다. 독일군은 곧 이어 모든 유태인들에게 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유태인들의 사유 재산을 몰수한다. 

독일인 사업가인 오스카 쉰들러는 유태인이 소유하던 공장을 인수하러 폴란드의 크라쿠프에 도착한다. 

오스카 쉰들러는 나치 당원이 되어, SS(나치 친위대) 대원들과 친분을 쌓은 후 공장을 인수하는 데 성공한다. 

뿐만 아니라,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유태인을 공장에 고용하고, 유태인 회계사 잇자크는 쉰들러의 공장으로 유태인들을 끌어 모은다. 

돈 때문에 유태인을 고용하던 쉰들러는 유태인들의 비참한 실상을 직접 목격하고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독일의 유태인 정책이 점점 잔인해지고, 마침내 모든 유태인들을 아우슈비츠로 이동하던 무렵, 쉰들러는 적어도 자신이 공장에 고용했던 유태인들을 살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쉰들러는 잇자크와 함께 유태인 1100여 명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독일군 장교에게 뇌물을 바치고서 그들을 인도받는다. 유태인들은 남자와 여자, 두 그룹으로 나뉘어 기차를 타고 쉰들러의 고향으로 향한다. 

남자들은 무사히 도착한 반면, 서류에 착오가 생겨 여자들을 태운 기차는 아우슈비츠로 향한다. 뒤늦게 착오를 발견한 쉰들러는 다시 독일군을 돈으로 매수해 아우슈비츠에 있던 여자들까지 구해낸다. 

그로부터 약 7개월간 쉰들러의 공장에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했고, 쉰들러는 전 재산을 털어 유태인들을 먹여 살린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나치 당원들을 포함한 모든 전범들이 위기에 놓인다. 당원인 쉰들러 역시 도망가는 신세가 된다. 

그 와중에도 쉰들러는 자신의 목숨을 생각하기보다, 왜 유태인을 더 구해지 못했는지 스스로를 책망한다.
 
#<쉰들러 리스트> 주제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한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히틀러가 유태인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다든가, 당시 부를 장악했던 유태인이 증오의 대상이었다는 이야기만이 떠돌 뿐이다. 

<쉰들러 리스트>에서는 유태인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유와 상관없이 잔혹했던 역사, ‘학살’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유태인을 학살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았던 사실이지만, 그 ‘누구나’는 침묵하고 동조하고 방관했을 뿐이다. 

그런 시대 안에서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살리고자 했던 오스카 쉰들러라는 사람의 용기가 더욱 숭고하게 다가온다. 도망을 가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몇 명을 더 살릴 수 있었다고 자책하는 모습에서 그의 인간애가 가장 빛을 발한다.
 
#<쉰들러 리스트>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어린 시절에 만든 8mm 단편영화를 친구들에게 돈을 받고 보여줄 만큼 예술과 비즈니스를 일거양득하는 수완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던 스필버그는 <슈가랜드 특급>이 흥행에 실패하자 할리우드에서 영영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에 사로잡혔다. 

<죠스>의 촬영기간 내내 스필버그는 거의 신경쇠약 직전의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는 싸구려 공포영화의 재탕에 불과한 <죠스>가 자기 경력의 끝장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청년 스필버그의 스트레스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죠스>의 가공할 성공 이후, 스필버그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재편하는 거물 ‘흥행사’로 불쑥 올라섰다. <죠스> 이후 스필버그는 <레이더스> <인디아나 존스> 등의 영화로 할리우드의 역대 흥행기록을 깼다. 

연속 흥행기록 경신은 스필버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스필버그 영화는 늘 피터팬 신드롬이라는 비난에 시달렸으며 때로는 이데올로기 비판 공세를 받았다. 

남근 모양의 거대한 상어의 습격을 통해 거세공포증을 부추기는 <죠스>에서부터 흑백의 인종갈등을 흑인 남성과 흑인 여인의 갈등으로 치환시켰다는 <칼라 퍼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서구 어린 아이의 환상으로 대동아전쟁의 현장을 놀이터로 변모시켰다는 <태양의 제국>에 이르기까지 스필버그 영화는 늘 신나고 활력 넘치는 게임의 규칙처럼 보이면서도 뭔가 음험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대상이었다.

또한 관객들은 그의 작품에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반면 평단의 평가는 냉혹했는데 , <칼라 퍼플>, <영혼은 그대 곁에> 등의 작품성 있는 영화들도 평단에서 무시당하곤 했다.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던 존 포드, 프랭크 카프라, 데이비드 린 등의 거장의 영화와 동급의 위치에 오르기를 열망했던 스필버그는 동시대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마틴 스콜세지와 같은 존경을 받고 싶어 했지만 대중은 그를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쉰들러 리스트>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스필버그의 작품에 대한 평단과 대중의 시선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1990년대의 스필버그는 여전히 <쥬라기 공원>을 연출한 흥행사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아미스타드>를 만든 진지한 작가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1999년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하며 자신에 대한 평단과 대중들의 이중적인 시선을 불식시켰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마이너리티 리포트> <캐치 미 이프 유 캔> <터미널> <우주전쟁> <뮌헨> <링컨>까지 다양한 영화들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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