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의원, 국민의당 신임 당대표 선출..61.58%

▲ <사진=뉴시스 제공>

[위클리오늘=이하나 기자] 국민의당 신임 당대표에 박지원 의원이 선출됐다.

국민의당은 15일 오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창당 이후 첫 전국당원대표자대회를 열고 박지원 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했다.

박지원 의원은 61.58%(1인2표제)라는 득표율로 임기 2년의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 박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은 키우고! 당원은 섬기고! 우리 후보는 대통령 만들고! 3GO 필승 전략'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박지원 의원은 20대 총선 직후 당선인 워크숍에서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에 추대된 김성식 당선인과 함께 원내대표로 만장일치 합의 추대됐다. 2010년 민주당, 2012년 민주통합당에 이어 세 번째로 원내대표직을 맡았다.

지난해 6월 '20대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으로 안철수‧천정배 두 상임공동대표가 동시 사퇴하자, 비상대책위원장직을 겸임하며 당을 이끌었다. 당헌과 당규를 제‧개정하고, 17개 시도당을 창당했으며 정당 사상 최초로 전당원 투표제를 도입했다.

지난해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로 당을 이끌어왔던 박직원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내내 문병호·김영환 후보를 위시한 타 후보들의 맹공을 받아왔다. 특히 '김수민 사태' 직후 당을 이끌어온 8개월 동안 독단적으로 당을 운영했다는 공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12월9일 표결을 고수하다 탄핵 반대파로 몰려 당 지지율 급락 빌미를 제공했다는 논리도 타 후보들의 단골 공격 소재였다. 아울러 노련한 정치인 이미지가 안철수 전 공동대표의 새정치 캐릭터와 맞지 않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박 의원에게 다른 후보들의 비판이 몰리면서 전당대회는 자연스레 박지원 대 반(反)박지원 구도로 굳어졌고, 이는 되레 전당대회가 박 대표 중심으로 펼쳐져 다른 후보들이 부각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지원 의원은 대표적인 DJ맨으로 전대 초반부터 대세론을 형성하며 큰 이변없이 당권을 쥐었다.

박 의원은 1992년 14대 국회의원으로 처음 뱃지를 달았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전남 목포시에서 무소속으로 당선, 화려하게 재기했다. 이후 야권의 호남민심 대변인을 자처하면서 19‧20대 국회의원을 내리 지내며 대표적인 호남권 국회의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전남 진도 출생인 박지원 의원은 목포 문태고등학교와 단국대 상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럭키금성상사에서 근무한 후 동서양행 뉴욕지사 지사장으로 일하며 미국에서 뉴욕한인회 회장을 맡았다.

박지원 의원은 미국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DJ 대통령 만들기에 돌입한다. 그는 평민당 진도군 대통령선거대책위원장을 시작으로 민주당 수석부대변인, 김대중 대표 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민주당 대변인 시절 동교동계를 출입하던 기자들보다 부지런하게 활동,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1998년 국민의정부가 출범한 후 대통령비서실 공보수석비서관, 문화관광부 장관을 맡았고 대통령비서실 실장까지 맡는 등 일명 ‘소통령‘으로 통했다.

박지원 의원은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 이후 대북송금특검으로 인해 옥고를 치렀으며 이때부터 친노(親盧‧친노무현)진영과 불편한 관계를 맺게 됐다. 지난해 1월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 동교동계 인사들을 대거 이끌고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박지원 의원 프로필>

▲1942년 전남 진도 ▲문태고 ▲단국대 경영학과 ▲미주지역한인회 총연합회장 ▲청와대 공보수석 ▲문화관광부 장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대통령 비서실장 ▲김대중평화센터 비서실장 ▲민주당 정책위의장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원내대표 ▲14·18·19·20대 국회의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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