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일요시네마 '터미널' 26일 방송

[위클리오늘=강민규 기자] ‘크라코지아’(영화 속 가상의 국가) 출신인 나보스키(톰 행크스)는 미국의 심장부라 불리는 뉴욕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뉴욕 JFK 공항에 내린 그는 날벼락과도 같은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가 미국으로 가는 그 시각, 조국 크라코지아에서 유혈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국가의 기능을 잠정적으로 상실하게 됐으니 나보스키는 졸지에 무효화된 비자를 들고 미국에 입국하려는 신세가 됐다. 위험천만한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부푼 꿈을 안고 입성하려 했던 뉴욕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태다. 

나보스키는 모든 이들이 이동 중인 터미널이라는 공간처럼 그 자체로 정착할 수 없는 중간에 끼어있는 상태다. 어쩔 수 없다. 그는 공항에서 잠시 여장을 풀기로 한다. 

예상과 달리 나보스키는 점점 더 공항이 편해진다. 제 집 안방처럼 여기며 여기 저기를 기웃거린다. 거대한 공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 그곳 공항 노동자들과 친분을 쌓기에 이른다. 

급기야는 승무원 아멜리아(캐서린 제타 존스)와의 로맨스까지 꿈꾸게 됐다. 과연 나보스키는 이 터미널을, 이 황당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는 어디로 갈 수 있는 것일까.

영화 '터미널'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영화 속 이야기처럼 실제로 16년동안 공항 터미널을 한발짝도 벗어나지 안은 채 공항 터미널 안에서 살았던 인물이 있다.  이 허구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16년째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에 살았던 이란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 

그는 '앨프레드경'이라 불리우며 16년째 공항 안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다. 메르한은 16년이라는 세월동안 샤를 드골 공항안에서 지내야만 했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해주는 서류인 난민카드와 여권을 분실했기 때문이다. 종이에 불과한 서류 때문에 그는 10년 이상을 공항에 갇혀 살아야 했던 것이다. 

이민여권을 발급 받은 후 조국 이란을 떠난 그는 유럽 여러 나라에 망명을 요청한 끝에 벨기에 정부에서 난민 신분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영국을 향하던 중 UN이 인정해주는 난민카드와 여권을 분실했고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가 없었기 때문에 입국이 거부된 그는 영국과 벨기에 프랑스를 왔다 갔다 하다 결국 자포자기하여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 눌러앉게 된 것이다.

영화 '터미널'을 제작한 드림웍스가 그의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대가로 메르한에게 25만 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터미널'은 메르한에서 힌트를 얻어 완성된 작품이지만 모티브만 가져왔을 뿐 내용은 전적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들어낸 가공의 세계다.

JFK 공항을 100% 세트로 구현한 감독은 그 속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모습의 미국의 초상을 담아낸다. 공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은 별 문제 없이 완벽하게 굴러가는 듯 보인다. 다만 나보스키라는 제3국의 이방인이 갑작스레 공간에 정착하게 되면서 공항을 유쾌한 혼란 속에 빠뜨린다. 

하지만 나보스키는 물리쳐야하거나 적대시할 상대는 아니다. 오히려 공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스필버그식 영웅 캐릭터에 가깝다. 이런 모습은 특히 나보스키와 공항의 노동자들이 연대하는 장면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보스키가 아멜리아와의 데이트에 성공하기를 모두가 합심해서 응원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영화 '터미널'은 미국의 9·11 테러가 발생한 이후인 2004년에 제작됐다.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 JFK 공항이 그 배경이며 그곳에 이방인 나보스키가 원치 않게 체류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항과 이방인의 등장 등은 자연스레 테러 이후 미국적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영화 '터미널'에는 테러를 겪은 미국인들이 겪을 법한 혼란이나 두려움의 감정들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이방인 나보스키의 조국의 긴박한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현실을 애써 외면하거나 위로하려는 듯 보인다. 결국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게 됐다’는 결론에까지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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