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이 대우조선 투자금의 출자전환을 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고민이 깊다.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송원석 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 국민 노후자금을 낭비했다는 비난의 중심에 선 국민연금이 이번엔 대우조선해양(DSME)의 구조조정 문제로 딜레마에 빠졌다.

삼성 합병에 동의한 탓에 1000억원의 손실을 입어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 정부가 대우조선의 구조조정에 공적자금을 투입키로 결정, 대우조선에 투자한 3600억원에 대한 출자전환을 놓고 고민에 빠진 것이다.

국민연금 측이 대우조선 채무재조정안에 동의하면 또 다시 대규모 기금 손실이 불가피하지만 마냥 반대하기도 어려운 입장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워크아웃과 법정관리를 결합한 프리패키지드플랜, 이른바 P플랜을 가동하면 투자원금 대부분을 까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으로선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내놓은 대우조선의 구조조정 방안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뾰족한 답을 찾기 어려워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최근 국민연금과 시중은행 등이 1조3100억원 가량의 출자전환에 동의해야 대우조선을 살릴 수 있다며,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직접 나서 "대우조선이 주저앉을 경우 은행들이 협력업체의 여신 회수에 나서면 줄도산하게 될 것"이라며 채권단을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내달 17∼18일 5회에 걸쳐 열리는 대우조선 사채권자집회를 통해 회사채 1조3500억원, CP 2000억원의 50%를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50%는 만기 연장하는 채무재조정을 밀어붙인뒤 신규 자금을 투입한다는게 기본 방침이다.

문제는 금융당국의 채무재조정안이 사채권자 집회에서 통과되려면 출석 의결권의 총 발행채권액 3분의 1 이상을 가진 채권자들이 참석,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특히 발행 채권 총액 3분의 1 이상의 찬성 요건도 충족해야 하는데, 국민연금이 이중 30%에 육박하는 3900억원어치의 대우조선 회사채를 보유하고 있어 국민연금이 이번 대우조선 구고조정 캐스팅보프를 쥐고 있다.

국민연금은 이에 따라 조만간 박성태 리스크관리센터장이 위원장을 맡는 투자관리위원회를 열고 대우조선 자구안에 대해 논의할 방침이지만, 뾰족한 해법이 없는 실정이다.

업계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최종족으로 투자위원회를 통해 동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지만 정부의 뜻을 따르겠다고 발표할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이 '찬성·반대·기권'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 사채권자 집회에 불참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정부의 구조조정안에 동의하지 않을 명분도 충분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청와대 압력을 못이겨 합병안에 찬성, 엄청난 손실을 입혔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국민연금이다.

홍완선 전 기금운용부장은 1000억원의 손해를 입힌(배임)혐의로 재판 중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 대한 합병 무효 청구소송이 진행중이다.

출자전환했을 때 책정되는 가격과 기간도 문제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7월 분식회계 혐의를 받아 거래가 중단됐기 때문에 출자전환이 이뤄져도 주식 매매가 불가능, 국민의 돈 3600억원은 대우조선에 상당기간 묶일 수밖에 없다.

출자전환시 가격은 현재 4만4800원에서 10% 할인된 4만430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산은이 지난해 12월 1조8000억원을 출자전환하면서 10%할인된 가격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10% 할인된 가격으로 대우조선 주식을 인수한다고 해도 거래가 풀리면 주가는 꾸준히 하락할 것이 불보덧 뻔해 국민연금이 원금 이상의 국민노후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게 중론이다.

정부의 구조조정 노력에도 불구, 아예 대우조선의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가 수 천억원의 손실이 예상됨에도 국민연금에 어떤 상의나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여론은 물론 기금운용의 효율성 등을 고려, 정부 의견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더욱이 정권교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어서 현 금융당국의 요청을 거절한 것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감도 없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정부의 뜻을 거절하는 것도 이해된다"며 "결국 강제성을 띤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연금 측은 아직 가타부타 확실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자구안 방안을 놓고 검토를 시작한 단계이며 기금의 이익을 높일수 있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만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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