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그것이알고싶다'.

[위클리오늘=설현수 기자]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이미 법적, 역사적 판단이 내려지고 국가에 의해 기념일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에서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시민이 저항한 명예로운 사건으로 정의된 사건이다.

5.18 당시 시민 학살과 관련해 사형까지 선고받았지만 전두환과 당시 신군부 세력은 여전히 발포 명령 등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전두환씨는 자서전에서 5.18 당시 600명의 북한군 특수부대가 남침했다는 일부 주장을 인용하면서 무기를 탈취하고 군인들을 살해한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9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전두환 회고록' 속 전 씨의 주장을 검증해보고, 전씨가 이미 법적으로 판단된 사실 조차 부인하며 5.18에 대한 책임과 민주화 운동성을 부정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 논란의 시작 '전두환 회고록'
      
 전두환. 신군부의 핵심인물로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그는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뒤 권좌에 올라 7년의 재임기간 동안 반대자들을 철저히 억눌러왔다. 

민정당이 정권 연장에 성공하면서 그가 저지른 집권 과정의 불법행위와 재임 중의 폭압적인 통치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하는 듯 했으나 결국 법적 처벌을 피할 수는 없었다. 

군사 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그리고 권력형 비리에 대한 재판을 거쳐 그는 ‘반란수괴죄’,‘상관살해죄’,‘내란수괴죄’,‘내란목적살인죄’,‘뇌물죄’등 12개 항목의 혐의가 인정돼 1996년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뒤이어 정치적 사면과 복권이 단행됐다. 그런데, 그가 37년 만에 논란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민간인 학살은 없었다. 발포 명령자도 없었다.”

놀랍게도 그는 여전히 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없었고 자신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과 전혀 무관하다고 회고록을 통해 주장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회고록에서 이른 바 북한군 침투설을 제기한 것. 전두환씨는 5.18 당시 600명의 북한군 특수부대가 남침해 대한민국의 전복을 시도했다는 지만원 씨 등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무기를 탈취하고 군인들을 살해한 행위를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 대규모 학살, 발포명령자는 누구인가

1980년 5월 17일,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이튿날인 5월 18일 오전부터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가 학생과 시민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가자 시민들은 저항하기 시작했다. 

5월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 모인 10만의 시민들은 비무장 상태로 계엄령 해제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했다. 그 때 시민들을 상대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일어났다.  

“불과 한 1미터 사이를 두고 대치하고 있었어요, 군인들하고 시민들하고. 광주 시민들이 다 보는 데서 총을 쏜 거예요. 그래가지고 옆에서 툭툭 쓰러지니까....”-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전 회장 정수만

수많은 시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총격에 쓰러졌다. 심지어 시신을 수습하려던 시민들이나 임산부와 어린이 등 무고한 민간인들 역시 비참하게 희생됐다. 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가 국민을 향해 총격을 가한 충격적인 상황. 

5월 27일 계엄군이 도청에 재진입하기까지 열흘 동안 확인된 사망자는 160여 명이고, 부상자는 5000명에 육박하며, 암매장되거나 실종된 이들의 숫자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광주에서의 최초 발포명령자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시민들의 무력시위에 맞선 자위권의 발동이었다는 전두환 회고록의 주장은 과연 정당한가. 

# 전투원이 아닌 민간인을 상대로 헬기에서 사격을?

“그날 분명히 헬기 동체 좌측에 장착된 그 기관총이 뿜어대는 것을 봤어요”- 헬기 사격 목격자 최형국씨

“벽면을 스쳐 맞은 거라든지 그다음에 바닥에 있는 것들은 이것보다 같은 위치거나 높은 위치 아니면 쏠 수가 없는 탄흔이죠. 헬기에서의 사격 가능성이 굉장히 유력해지는 거고...”- 국과수 김동환 총기안전실장

목격자들의 증언이 이어져왔고 얼마 전 광주 전일빌딩에서 기관총 사격의 탄흔까지 발견됐지만, ‘광주엔 사격이 가능한 헬기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전두환 씨와 군 당국의 주장. 

공수부대의 발포는 자위권 행사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면서도 헬기 기총소사만큼은 애써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진압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은 이런 주장과는 다른 내용을 증언했다. 

# 누가 광주시민을 폭도로 둔갑시키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것은 전두환 씨만이 아니었다. 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초유의 범죄 행위에도 불구하고 경미한 처벌만 받았던 당시 군 수뇌부들이 37년 만에 털어놓은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거 자체를 내가 부인해. 무엇이 민주화요 그게 폭동이지.”

“광주에 틀림없이 북괴가 습격했을 거예요. 우리가 잘 잡지 못하고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

1980년 5월 광주의 진상규명은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두환 씨는 과연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과 무관한가. 

북한특수부대가 광주시민을 선동했고 폭도들이 무기고를 습격해 군인을 살상하는 폭력 사태가 벌어졌다는 전두환씨의 주장은 과연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인가. 

sbs '그것이알고싶다' '화려한 휴가, 그리고 각하의 회고록' 29일 밤 11시5분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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