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장학회 비밀회동 보도와 관련 최성진 한겨레신문 기자에게 검찰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구형했다. 사진=뉴시스

검찰 “최필립 이사장·이진숙 본부장 비밀회동 휴대폰으로 들은 것은 위법” 주장
최 기자 “검찰이 보도의 공익성 판단할 수준 되는 지 의구심 든다” 반발
 

[위클리오늘=신상득 전문기자]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겨레신문 최성진 기자에게 검찰이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을 구형했다. 최 기자가 기소된 이유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의 대화를 전화로 몰래 엿들은 혐의 때문이다. 검찰은 “정수장학회 지분매각 논의를 취재한 행위는 통비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과의 대화를 몰래 엿들은 것이기 때문에 법 위반이 명백하다. 또 보도의 공익성이 크지 않다”라는 논리를 내세웠으나 최 기자는 “검찰이 보도의 공익성을 판단할만한 수준이 되는지 의구심이 든다”면서 “지금 이 시대에 검사로서의 양심과 상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최 기자에 대한 혐의는 조만간 선고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겠지만, 재판부가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객관적으로 이 사건을 판단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수장학회 비밀회동 대화록
지난해 10월8일 오후 5시쯤 서울 중구 정동 정수장학회 사무실에서 비밀회동이 열렸다.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당시 MBC 기획홍보본부장의 회동이었다. 한겨레신문은 이들의 대화내용을 요약해 신문에 공개했다. 비밀회동에서 나눈 대화의 주요 내용은 정수장학회가 갖고 있는 MBC 지분 30%와 부산일보 지분 100%를 매각하자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날 대화가 관심을 끈 것은 시기적으로 대선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대선 직전 박근혜 후보에게 매우 민감한 사안을 발표하는 것은 투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부일장학회를 인수해 설립됐다. 부일장학회는 김지태 개인 재산을 출연해 1959년 11월 설립해 1962년 5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인수됐다. 18대 대선이 한참 진행될 당시 김지태의 유가족은 당시 부일장학회를 빼앗겼다고 주장했고, 박근혜 후보측은 김지태가 친일에 대한 사과로 헌납한 것이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정수장학회는 딸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재직했고, 박근혜가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이후 최필립이 이사장을 맡았다. 아무튼 정수장학회는 MBC지분 30%를 보유하고 있고, 부산일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날 비밀회동에서 나눈 대화는 정수장학회가 갖고 있는 MBC 지분을 매각하자는 내용이었다. MBC 지분 매각과 관련해 이들은 1)내년 상반기 MBC를 상장하자 2)상장하면서 정수장학회의 지분 30%를 팔면 6000억원이 생긴다 3)6000억원에서 발생하는 매년 이자 200억원으로 영남지역의 대학생들에게 반값등록금을 주자 4)이를 위해 대학교 100곳은 없애야 한다 4)똥과 기자는 피해야 한다 5)MBC 지분 매각과 관련한 내용에 언론이 자극하지 않는 방안을 찾자고 합의점을 찾았다.
 
부산일보 매각과 관련해서 최필립 이사장은 1)부산일보가 노조에 휘둘리고 있다 2)하는 일도 없이 7000만원씩 연봉을 받아가는데 700만원도 아깝다 3)부산과 울산 등 경남지역의 업체에 부산일보를 매각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비밀회동 내용이 공개된 것은 최필립 이사장의 스마트폰을 통해 한겨레신문 최성진 기자가 대화내용을 모두 녹음한 데 따른 것이었다. 최 기자와 통화를 하던 최필립 이사장은 이진숙 본부장이 방문하자 스마트폰을 끄고 대화를 한다고 했는데, 스마트폰이 꺼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가 진행된 데 따른 것이었다. 대화내용은 최 기자의 휴대폰을 통해 고스란히 녹음됐고, 한겨레신문을 통해 보도가 나오게 됐다.
 
비밀회동을 둘러싼 의혹
최필립 이사장과 이진숙 본부장과의 비밀회동 대화내용이 한겨레기자를 통해 보도된 것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주요 의혹은 최 이사장은 왜 한겨레 기자와 통화를 하고 지냈을까. 과연 스마트폰이 오작동한 것일까. 최 이사장이 고의로 휴대폰을 켜놓고 한겨레 기자에게 대화내용이 흘러나가도록 한 것은 아닐까 등이었다.
 
이런 의혹이 제기된 것은 당시 최 이사장의 행보 때문이었다. 당시 최 이사장은 정수장학회 이사장에서 끝내 물러나지 않겠다고 밝혔다. 최 이사장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지를 지키고 박근혜 후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사장직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박근혜 후보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정수장학회에서 최 이사장이 물러나는 게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와의 연결고리를 끊는 일로 비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수장학회 문제가 터지고 지지율이 떨어져 박근혜 후보가 휘청거리는 상황에서도 그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의문이 든다. 과연 최 이사장이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원했을까 하는 점이다. 과거사 문제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에서 최 이사장이 정수장학회를 통해 박근혜 후보를 밟으려 한 건 그가 정수장학회를 완전 장악하려고 한 건 아닐까. 이미 이사 2명을 자기 심복으로 선임한 상황에서 박근혜 후보가 낙선한다면 야당 후보는 자신의 당선이 최 이사장이 간접적 기여를 했으니 정수장학회 장악을 얼마든지 눈감아 줄 수 있을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다면 최 이사장은 정수장학회 주도권을 쥘 수 없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경우 최 이사장과 최 기자의 통화는 납득이 된다. 이들은 박근혜 낙선에 얼마든지 뜻을 같이 할 수 있을 법하다. 그렇다면 최 이사장이 고의로 스마트폰을 켜놓고 대화내용을 흘려보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외려 풀린다.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 추락에도 최 이사장이 사퇴를 거부한 행동도 이해가 된다.
 
검찰 수사, 과연 정당한가
이런 의혹이 말끔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은 지난 2일 최성진 기자에게 통비법 위반 혐의로 징역1년에 자격정지 1년을 구형했다. 앞서 검찰은 최필립 전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전 MBC 기획홍보본부장의 ‘정수장학회 언론사 지분 매각’ 논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3인의 비공개 대화를 녹음한 것은 명백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며 “녹음과 보도가 긴급한 목적 등 위법성이 조각될만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실형 구형의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또 “대법원이 세 차례에 걸쳐 기자‧국회의원의 통비법 위반 사건 판결을 하면서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상당성, 공개의 이익이 (사생활 침해보다)초과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최 기자는 직접 녹음한 것을 녹취록으로 풀어서 보도했다. 정당행위로 인정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제기된 의혹처럼 최 이사장이 정수장학회를 장악하려다 실패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최 기자에 대한 검찰의 구형을 보면 또다른 의혹이 불거질만하다. 그간 정권의 시녀 역할을 자처해온 검찰이 기자로서의 정당한 보도행위에 대해 통비법의 잣대를 들이댄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자진해 시녀역할을 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흘러나온 엄청난 뉴스를 보도하지 않을 기자가 과연 있을까. 그를 과연 기자라고 할 수 있을까. 엄청난 특종감이 흘러나오는 걸 모른 척 덮을 기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보도의 공익성이 크지 않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MBC를 상장하고, 30%지분을 팔아 반값등록금을 실현하자는 대화내용이 왜 공익성이 없는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최 기자를 비롯한 민변의 반발
최 기자는 검찰의 구형을 예상했다는 듯 “지난 8~9개월 동안 검찰의 수사 태도를 보면서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며 “검찰이 보도의 공익성을 판단할만한 수준이 되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이 시대에 검사로서의 양심과 상식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며 “소송이 진행되는 것 자체로 많은 기자들한테 위축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되므로 검찰의 무리한 기소와 수사에 맞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남은 재판에 최대한 성실히 당당하게 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재화 변호사는 “통비법은 의도적 도청을 방지하기 위한 법”이라면서 “통상적으로 기자 등이 업무상 활동으로 취득한 것까지 방지하라는 것은 아니다”라며 “보도 행위는 공익적 차원이기 때문에 위법성 조각 사유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원은 검찰과 달리 법과 양심에 따라 무죄 판결할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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