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내부. / 뉴시스

[위클리오늘=박찬익 기자] 문화재청은 정조의 친부인 사도세자가 묻힌 융릉(隆陵, 전 현륭원)을 수호하고 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사찰 건축물인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을 보물 제1942호로 지정했다고 14일 밝혔다.

화성 용주사는 융릉의 능침사찰이자 능에서 열리는 제사 물자를 조달하는 조포사(나라 제사에 쓰이는 물자를 조달하는 절)였다.

사도세자의 묘를 화산으로 옮긴 다음해인 정조 14년(1790) 지어졌다. 원래 이곳은 통일신라 때 창건돼 고려시대 때 소실된 갈양사의 옛터라고 전한다.

정조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위해 용주사 설립을 주도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은 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는 건물로 내부·외부를 대단히 화려하게 장식했다. 1790년 2월 공사가 시작돼 그해 9월 29일 불상이 봉안됐다.

조선 왕실은 대웅보전을 지을 때도 직접 공사를 발주하고 재원을 조달했으며 감독까지 맡았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 현륭원 의궤 등에 공사 내용과 재원, 집행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용주사 대웅보전은 여러 차례 중수됐지만, 외부 단청을 제외하면 원형이 잘 보존된 편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공포(하중을 받치기 위해 대는 부재)가 여러 개인 다포식 건물이다.

지붕은 궁궐과 사찰 건축물에 많이 쓰인 팔작지붕 형태다.

장대석을 사용한 기단, 용마루 끝에 얹는 조형물인 취두(鷲頭), 용머리 모양의 장식기와인 용두(龍頭), 지붕 마루를 회로 감싸 바르는 양성바름 기법 등 정성을 기울여 조성한 흔적이 남아 있다.

용주사는 삼문, 천보루(天保樓), 대웅보전이 일렬로 배치돼 있으며, 스님들의 살림 공간인 승당과 선당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용주사 대웅보전은 18세기 불전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건축물”이라며 “능침사찰로서의 권위와 격식, 시대성을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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