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Assassination)=감독:최동훈/출연: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개봉 : 2015.7.22./러닝타임: 139분/ 시청연령: 15세.

암살.

[위클리오늘=설현수 기자] sbs가 15일 광복절 특집으로 편성한 영화 '암살'은 2015년 7월 말 광복절을 앞두고 개봉해 누적관객 1270만명을 동원한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작 중 하나다. 한국영화 통산 흥행기록 랭킹 7위다.

영화 '암살'의 무대는 1933년 일제 식민지 통치로 조국의 미래에 한치의 희망도 없어보이던 한민족 최대의 암흑기. 당시 대부분의 국내 지식인들과 중상류층은 일제에 동화돼 친일화된 상태였다.
 
영화 '암살'은 대한독립의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무장투쟁을 선택한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다룬다. 스토리의 8할은 작가와 감독의 상상이지만 근간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의열단 박재혁 의사가 영화 '암살'의 제작 모티브가 됐고, 전지현이 연기한 여주인공의 롤모델은 여성 독립투사 남자현 지사였다.

김구 선생이 이끌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 측에 노출되지 않은 세 명을 암살작전에 지목한다.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 폭탄 전문가 황덕삼! 김구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은 이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암살단의 타깃은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 한편, 누군가에게 거액의 의뢰를 받은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이 암살단의 뒤를 쫓는다.

"1920년 의열단의 박재혁 의사는 상해에서 나가사키를 거쳐 부산으로 잠입했다.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를 암살하고 붙잡혀 순국한 후 
그의 편지 한 통이 뒤늦게 의열단 단장 김원봉에게 전달된다. 아래와 같다. 

‘어제 나가사키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형편이 뜻대로 되어가니 이 모든 것이 그대가 염려해 준 덕분인 듯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즐겁습니다.  그대의 얼굴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꿈을 위해 싸우다 죽은 레지스탕스의 짧은 편지다. 이처럼 담대하고 차분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가늠하기 힘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운명처럼 그 시대에 맞서 싸웠고 버텼다.
 
어떤 이는 이름을 남겼지만 어떤 이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했고 하물며 삶의 이야기도 남기지 않았다. 

그 남겨지지 않은 이야기로부터 이 영화는 출발한다." 

최동훈 감독이 설명한  '암살'을 만들게 된 모티브다.

남자현 애국지사.

영화 '암살'에는 또하나의 리얼스토리가 깔려있다. 극 중 전지현이 열연한 여전사 안옥윤의 실제 모델 남자현(1873~1933) 애국지사다.

남자현 지사는 '여자 안중근',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린다. 여성으로서는 실행하기 힘든 무장투쟁을 통해 조국의 독립운동에 한 평생을 바쳤다. 

남자현 지사는 1873년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에서 태어났다. 을미의병 활동으로 남편 김영주를 잃은 후 남편의 뜻을 따라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유복자를 데리고 만주로 건너가 신앙운동과 독립군 지원 등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러던 중 남자현 지사는 1926년 사이토 총독 암살시도를 기점으로 무장투쟁에 나서게 된다.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침략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얼빈에 파견됐다. 

남자현 지사는 일제의 만행을 조사단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흰 무명천에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쓰고 자신의 손가락을 함께 보냈다.

남자현 지사는 1933년 일제 만주국 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는 계획을 실행하다가 체포됐다. 

혹독한 고문과 17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남 지사는 그해 8월 61세의 나이로 중국 하얼빈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남 지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다. 남 지사의 출생지인 경북 영양군과 남자현 지사의 후손들은 1999년 11월 30일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 남 지사 생가를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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