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현대기아차그룹 사옥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있다. <사진=뉴시스>

[위클리오늘=김성현기자]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논란이 일단 노동자측의 승리로 결론났다.  

이번 재판의 주 관심 대상도 법원이 경영위기론을 내세운 회사측의 '신의성실 원칙' 적용 주장을 받아들이느냐 여부였다.

법원은 근로기준법의 임금 관련 조항의 강행규정성을 강조하고, 경영위기에 대한 회사측의 설명도 불명확하다는 이유 등으로 기아차의 신의칙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로 힘을 얻은 노동계에서는 더욱 거센 소송전을 밀어 부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기아차가 항소할 가능성이 높고 앞으로도 항소심과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는 만큼 논란은 상당기간 더 지속될 수 밖에 없다.  

근본적으론 통상임금의 범위에 대한 명확한 법률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통상임금 관련 사안이 매번 재판까지 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담당 판사의 성향에 따라 결과가 오락가락하면서 노사 양측 모두 불만이 쌓이고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 신의칙 범위 축소

3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41부(부장판사 권혁중)는 “상여금 및 중식대는 소정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금품으로서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임금이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피고(기아차)는 원고들에게 상여금과 중식대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및 연차휴가수당의 미지급분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기아자동차 노동자 2만7000여명은 지난 2011년 10월 회사를 상대로 2008년 8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지급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재산정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 및 연차휴가수당 미지급분과 지연이자 등 총 1조926억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1심 재판에서는 노동자측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다.

다만 휴일 근로에 대한 연장근로 가산수당과 특근 수당 등은 통상임금에 포함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법원은 노동자들이 요구한 1조926억원 중 원금 3126억원과 지연이자 1097억원을 합한 4223억원에 대해서만 승소판결을 내렸다. 

신의칙 위반이라는 기아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기아차의 2008년부터의 재정상태 등이 나쁘지 않고, ▲근로자들에게 매년 지급한 경영성과급의 합계액이 이 사건 청구금액을 초과하며, ▲기아차가 최근 사드 보복 등으로 인한 영업이익 감소 등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고 있고 ▲ 노동자들이 마땅히 지급받아야 할 임금을 후에 추가 지금 되어야 한다는 점에만 주목해 ‘기업 존립’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 의해 인정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고 ▲ (기아차가) 과거 과외근로로 생산한 이득은 이미 향유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기아차가 주장하는 신의칙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 18일 열린 금호타이어 통삼임금 2심 재판에 적용된 신의칙보다 상당히 축소된 것이다.

금호타이어 재판의 경우 재판부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금호타이어에 예측치 못한 재정부담이 지워져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었다.

지난 29일 선고된 삼성전자 LCD공장 노동자 산업재해 인정 재판 때와 같이 기업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도 회사측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당장 3조원의 충당금과 함께 올해 중국 사업 부진까지 겹쳐 현대기아차 그룹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기아차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도 강조했다.

원고의 주장은 강행규정인 근로기준법에 따른 것이며, 기아차의 주장이 강행규정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는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所定)근로 또는 총 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시간급 금액, 일급 금액, 주급 금액, 월급 금액 또는 도급 금액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정기 상여금이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된다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 2013년 12월 18일 대법원 전원일치 판결로 확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당시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만 기업이 어려울 때는 이를 근거로 추가 수당을 산정하면 안된다’ 취지의 모순되는 판결을 내렸었다. 당시 등장한 것이 신의칙이다.

이 같은 판결에 대해 대법관 중 일부는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으로 그 강행규정성을 배척하는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든다”는 반대의견을 내기도 했다.

대법원이 전원일치로 신의칙을 인정한 판례가 있기 때문에 하급심으로써는 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번 기아차 통상임금 1심 판결은 신의칙의 인정 범위는 최소화하면서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은 확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변호사는 “명확한 규정이 있는데 신의칙을 남발하는 판결을 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오히려 분쟁만 더 키울 뿐”이라며 “통상임금 같은 경우는 그 범위를 명시하는 법이 있는 만큼 재판부가 기업과 협상하는 태도가 아닌 명확한 판결을 내려 기준을 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기아차의 패소, 산업계 영향은?

기아차는 법원의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항소 의견을 밝혔다.

기아차는 “청구금액 대비 부담액이 일부 감액되긴 했지만 현 경영상황은 판결 금액 자체도 감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특히 신의칙이 인정되지 않은 점은 매우 유감이며, 회사 경영상황에 대한 판단도 이해하기 어렵다. 즉시 항소해 법리적 판단을 다시 구하겠다”고 밝혔다.

기아차에 따르면 이번 판결결과에 따라 기아차가 실제 부담해야하는 잠정 금액은 총 1조원 내외에 달한다.

이는 기아차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인 7870억원을 상회하는 금액이다.

이번 소송은 노동자 전체를 대신하는 대표성이 있는 만큼 해당 통상임금 기준을 전체 인원으로 확대하고 2011년 11월부터 현재까지의 미지급분을 고려하면 지급액수는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아차는 올해 3분기부터 적자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타 기업들도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앞선 판례들을 보면 법원이 기업이 주장하는 신의칙을 상당히 인정했지만, 이번 판결은 그 금액이 큼에도 법원이 노동자의 편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종업원 450인 이상 기업 중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기업은 35개에 달하며, 건수로는 총 103건이다. 

노동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힘을 얻어 더욱 거센 소송전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번이  1심 판결일 뿐이고 2심과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있기 때문에 산업계에 미치는 여파가 당장 현실화된다고 보긴 어렵다.

기아차도 즉시 충당금 지불로 인해 기업이 어려워 질 것이라고는 하지만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가서 판결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업 위기는 섣부른 판단이다.

실제 통상임금 소송의 경우는 하급심과 상급심이 상반된 판결을 내린 경우가 많다. 

금호타이어의 경우도 1심은 패소했지만 항소심은 사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노동자 패소 판결을 내렸었다.

2013년 12월 갑을오토텍의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 역시 1, 2심 모두 원고인 노동조합 측의 손을 들어줬으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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