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세계의명화 '그랜 토리노' 9일 밤 10시 55분

그랜 토리노

[위클리오늘=설현수 기자] 그랜 토리노(원제: Gran Torino)=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크리스토퍼 칼리, 비 방, 어니 허, 코리 하드릭트/제작: 2008년 미국/러닝타임 : 116분/나이등급: 15세
 
▶ '그랜 토리노' 줄거리

젊은 시절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포드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다 이제는 은퇴한 노년의 월트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는 세상만사에 심드렁하고 웬만하면 모든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가 유일하게 애정을 주고 아끼는 대상이 하나 있다. 1972년에 포드사가 생산한 자동차 ‘그랜 토리노’다. 

상당한 크기에 엔진 소리는 좀 시끄러우며 기름은 또 얼마나 많이 먹는지 모른다. 이제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한때 잘 나가던 시절을 대표하는 상품이다. 

현재 잘 나가는 일본과 독일산 자동차와 비교되는 그야말로 과거의 유산 같은 것이다. 

월트 역시 그렇다. 이제는 별 볼 일 없어진 과거에서 온 사람이자 과거에 발이 묶여 있는 사람이다. 그가 지향했던 ‘미국적인 가치들’은 이제 아득하게 사라져버린 뒤다. 

동네는 슬럼화 돼 사람들이 떠나가고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건 언제나 수다스러운 몽족 출신의 미국 이민자 가족들이다. 

그들은 자꾸 월트를 귀찮게 구는데 어느새 그들 사이에 은근슬쩍 우정이라는 게 자리 잡는다. 하지만 그들을 노리는 갱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점점 더 관객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랜 토리노' 주제

한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데는 수많은 역사적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노년의 미국인 월트 코왈스키를 만들어낸 것은 참전의 기억과 50년간 하나의 회사에서 일했다는 자부심 같은 것이다. 

그런 그는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고 무시했던 타민족 이민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이 고수해온 삶의 방식의 균열을 경험한다. 

그에게 이웃 몽족 가족은 느닷없는 일격이다. 특히 그에게 ‘아시아인’은 전쟁을 떠올리게 하며 그에게 두려움과 괴로움을 동시에 안기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몽족 이웃은 멀리하고 싶다. 

특히 타오가 더 이상 쓸모와 가치가 없어 보이는 자신을 살뜰하게 따를 때 그는 이상한 내적 흔들림을 경험한다. 한 사람의 정체성은 또 어떤 방식으로 흔들리고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가.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영화 '그랜 토리노'의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겠다.
 
▶ '그랜 토리노' 감상 포인트

그랜 토리노

퇴역 장군에다 온갖 인종적 편견을 다 보여주며 자기 고집 속에 살아가는 월트 코왈스키야말로 <그랜 토리노>의 시작이자 모든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밀리언달러 베이비> 이후 다시 한번 연출과 주연을 겸한 작품이다. 

그만큼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리는 ‘미국적’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말수는 적지만 굳건하고 단단한 바위 같은 얼굴에 무표정이 월트라는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는 동시에 영화 '그랜 토리노'가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이제는 다 지나가버린 ‘미국적’인 것들을 지키려는 노쇠한, 그러나 고집스러운 노인의 얼굴이 보인다.

특히 월트가 이웃집으로 이사 온 몽족 가족 중 한 명인 16세 소년 타오와 맺게 되는 관계는 영화 '그랜 토리노'의 핵심이기도 하다. 타오는 할머니, 엄마, 누나와 살고 있다. 타오에게 ‘남자’는 없다. 그런 타오가 월트를 일종의 롤모델로, 멘토로 삼고자 한다. 

어느새 월트는 타오에게 당당한 ‘남자’로서 행동하고 생각하는 법과 자기 길을 개척하는 방편을 가르쳐주면서 자신의 쓸모를 자각하기에 이른다. 

월트에게 죽은 아내와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고 자식들은 심리적으로 한참 멀다. 그런 그에게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 곁에 가까이 있어주는 이는 타오다. 이들 사이에 이상한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된 우정을 지켜보는 게 이 영화에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 '그랜 토리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미국적인 것’의 실체를 정확히 짚어낼 수는 없어도 적어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보면 ‘미국적인 것’의 단서 일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영화 안팎의 이력은 종종 노골적으로 때론 은밀하게 미국이 타 민족, 인종, 종교를 향해 갖는 차별의 시선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복잡한 윤리적 문제를 건드리는 방식이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속 석양의 무법자>를 통해 담배를 물고 찡그리고 있는 이스트우드의 대표적인 표정을 만들어냈고 과장된 동작으로 근엄한 고전 서부극 속 사나이를 깨고 그만의 것을 만들어냈다. 

서부극의 무법자 캐릭터가 바탕인 된 듯하고 그 위에 ‘막장’ 형사 캐릭터를 입힌 듯한 <더티 하리> 속 해리 캘러핸 역은 큰 인기를 불렀다. 그는 1971년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 감독 데뷔했고 <페일 라이더>(1985)를 통해 연출의 재능을 인정받는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용서받지 못한 자>(1992)를 통해 그에게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레 붙게 된다. 현대 미국 사회의 폭력에 대한 차가운 통찰은 이후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형식의 미학보다는 스토리텔링 속에서 인물들이 저절로 살아 움직이게 하는 방식으로서의 영화에 있어서는 이스트우드는 분명 놀라운 재능을 지닌 작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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