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한국영화특선 '맨발의 청춘' 17일 (일) 밤 10시 55분

맨발의 청춘

[위클리오늘=설현수 기자] 맨발의 청춘=감독: 김기덕/출연: 신성일, 엄앵란, 트위스트 김, 이예춘, 윤일봉, 이민자, 주증녀, 전계현/제작: 1964년, 흑백 /영화길이: 116분/시청연령 : 15세

영화 <맨발의 청춘>은 신분을 뛰어 넘는 비극적 사랑을 다뤄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렸고, 이러한 테마는 ‘청춘영화’의 전형을 이루며 이후, 신성일을 주인공으로 한 이 장르의 아류작들(<불타는 청춘>(김기덕, 1966), <위험한 청춘>(정창화, 1966))을 양산하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고급 리무진 차량들로 즐비한 요안나의 장례운구행렬과 대조적으로 두수의 부하격이던 트위스트 김이 끄는 가마니 덮인 초라한 리어카는 강렬한 시각적 대비를 이루며 계급의 장벽을 환기시킨다. 

도시의 젊은 관객들은 다방이나 댄스홀, 트위스트로 상징되는 대중문화의 코드들에 열광했는데, 그 이면에는 청춘의 사랑을 가로막는 기성세대들의 낡은 가치관과 4·19를 통해 꿈꿨던 민주주의가 무너진 자리에 5·16 이후 만연하게 되는 젊은 세대들의 좌절감과 패배주의가 이렇듯 충돌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 '맨발의 청춘' 줄거리

조직의 건달인 신두수(신성일 분)는 거리에서 깡패에게 핸드백을 빼앗기게 된 여대생 요안나(엄앵란 분)를 구해준다. 요안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두수의 아파트에 찾아오고, 신분 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빠져든다. 

대사의 딸인 요안나는 레슬링장에서 첫 데이트를 하며 난생 처음 어머니(이민자 분)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험을 하고,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해 거짓말을 밥먹듯 하던 두수는 요안나가 즐겨듣는 클래식을 들어보거나, 잠들기 전 성경책을 읽어보며 스스로를 변화시켜 간다. 

두수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면서 요안나는 두수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안하고, 취직 부탁을 위해 요안나의 어머니 친구(주증녀 분)와 만난 자리에서 두수는 모욕을 당하게 된다.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 두수는 위악적인 태도로 요안나에게 거리를 두고, 그간 소홀했던 조직에 충성하기 위해 시계 밀수사건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3년간 감옥에 가기로 한다.

▶ '맨발의 청춘' 감상 포인트

멜로드라마의 한 형태였던 ‘청춘영화’는 196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장르로, 1962년에서 1966년 사이 집중적으로 만들어졌으며 젊은 대학생들이 주관람층이었다.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동경과 함께 일본 ‘태양족(太陽族)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되곤 하는 청춘영화는 새로운 감각과 속도로 ‘현대영화’를 갈구하는 새로운 관객층에게 소구했지만, 빗나간 청춘들의 스테레오 타입화된 욕구불만은 ‘국적불명’이나 모방 혹은 표절이라는 부정적인 비평적 시각을 낳기도 했다.

<맨발의 청춘>은 나카히라 코우의 <진흙투성이의 순정>(1963)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청춘스타 커플인 신성일-엄앵란은 이 영화가 히트한 1964년 워커힐에서 3천여 인파 속에 결혼해 스크린 속 커플이 실제 부부가 되는 화제를 낳기도 했다. 

신성일이 연기하고 있는 두수 캐릭터는 청춘영화 속 시대의 아이콘으로 부상해, 청바지와 가죽점퍼, 반항적 눈빛 등은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의 상징처럼 인식되었다. 제2회 청룡상 음악상(이봉조) 수상.

▶ '맨발의 청춘' 감독 김기덕 (1934년 11월 6일 - 2017년 9월 7일)

1934년 서울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감독은 1961년 <5인의 해병>이란 전쟁영화로 데뷔했다. 이후 그는 많게는 한 해에 여덟 편, 그리고 적게는 한두 편씩 20여 년 동안 7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정열적으로 만들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다음과 같다. 

1963년에 <가정교사>, <77번 미스 金>, 1964년에 <천안삼거리>, <맨발의 청춘>, <떠날 때는 말없이>, 1965년에 <남과 북>, <용사는 살아있다>, 1966년에 <말띠 신부>, <종점>, 1967년에 <여대생 사장>, <내 멋에 산다>, <대괴수 용가리>, 1968년에 <아네모네마담>, <성난 대지>, 1969년에 <샹하이 부루스>, <남의 속도 모르고> 등을 만들었다. 

1970년대 들어와서도 그의 다작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1971년에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명동 부루스>, 1971년에 <열 아홉 순정>, <카츄샤>, 1972년에 <결혼반지>, <별이 빛나는 밤에>, 1973년에 <하숙인생>, 1974년에 <유관순>, <꽃상여>, 1975년에 <가수왕> 그리고 1977년에 <영광의 9회말>을 만들었다.

그의 대표작은 1964년 작인 <맨발의 청춘>이라는 청춘물이자, 이른바 깡패영화다. 1990년대 후반 들어서 이른바 조폭영화(조직폭력을 다룬 영화)들이 크게 유행했는데, 사실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1960년대에도 깡패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심심찮게 만들어졌다. 

이 당시만 해도 아직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때였으므로,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청년들이 쉽게 암흑가라는 파멸의 길로 빠져들었다. 이 계열의 대표작이 바로 <맨발의 청춘>이었다. 이 작품은 깡패들의 세계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또한 애절한 로맨스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개봉 당시 일반 관객들의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당시 한국 최고의 청춘 스타였던 신성일이 비운의 깡패인 두수 역을 맡았고, 그와 운명적 사랑에 빠지게 되는 외교관의 딸 요안나 역은 엄앵란이 맡아 열연했다.

이만희·김수용·임권택 감독과 함께 60년대 한국영화를 이끌며 전성기를 누린 김기덕 감독은 <영광의 9회말>을 끝으로 영화감독을 은퇴, 이후 서울예술대학, 동랑예술센터 총감독,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직을 맡으며 영화일을 이어갔다.  2017년 9월 7일 향년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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