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주현(왼쪽) 대한건설협회 회장 등 건설업계 대표자들이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SOC인프라 예산 축소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뉴시스

업계 "규제 폭탄 맞고 예산 깎여도 협회는 불구경" 목소리
협회 대표성 논란 여전…대형건설사 외면으로 무용론 대두

[위클리오늘=안준영 기자] 정부가 도로ㆍ철도ㆍ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대폭 삭감하자 직격탄을 맞은 건설업계는 걱정이 태산이지만 업계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대한건설협회(대건협)는 뒷짐만 진 채 손을 놓고 있다.

SOC를 복지재원의 볼모로 잡은 정부가 보완책 없는 성급한 정책으로 업계의 불안 지수를 높인 것도 문제지만 회원사의 회비로 운영되는 협회가 정부 눈치만 본 채 사실상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의 사활이 걸린 중차대한 시기에 선장격인 유주현 협회장이 해외 수주를 이유로 자리를 비운 것도 눈총을 받는다.

정부는 지난 1일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서 SOC 인프라 예산을 올해보다 20% 감축한 17조7000억원으로 책정했다. 2004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SOC 예산에 사활이 걸려 있는 건설업계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이중삼중 부동산 규제와 정체된 해외 수주 등 대내외 악재에 직면한 상황에서 SOC 일감마저 줄면 국내영업으로 먹고사는 중소업체들은 밥줄이 끊어져 고사(枯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건설 전문가들은 내년 SOC 예산이 올해보다 20%(4조4000억여원) 삭감될 경우 경제성장률이 0.3∼0.5% 하락하고 4만∼6만명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업계는 특히 정부가 내년 예산뿐만 아니라 향후 5년간 SOC 예산을 연평균 7.5% 추가 감축할 예정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에 대건협을 위시한 5개 건설 관련 단체는 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내년 SOC 예산을 적어도 올해 수준인 20조원대를 유지해 달라"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대건협은 6일 정부와 국회 상임위 등 유관기관에 하나의 건의서를 제출했다. 국회 5당 정책위의장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에 SOC 인프라 예산 확대를 요청하는 건의서였다.

◆ "예견된 사안에 뒷북 호소문"…협회장 해외행도 뒷말

일견 그럴듯한 대응책처럼 보이지만 업계에서는 뒷북 조치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확정 발표된 지 일주일 내지 이주일이 돼서야 집단행동을 연출하는 것은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번 SOC 삭감을 포함해 정부의 8.2부동산 대책에 이은 추가 규제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온 대건협에 대한 묵은 거부감과도 맞물려있다.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대건협은 10대 건설사를 포함해 약 8000여개 업체가 회원사로 가입돼 있는 국내 최대 건설 관련단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8·2 대책 때도 성명서 한 줄 내지 못한 대건협이 하는 일이라곤 기념식 같은 연례행사나 시상식밖에 없다"며 "협회가 권익단체가 아니라 일부 회원사들의 친목단체로 돌아가는 것은 곤란하다"고 꼬집었다.

같은 맥락에서 유주현 협회장이 민감한 시기 중동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도 곱잖은 시선이 이어진다.

손병석 국토교통부 1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민관 합동 수주지원단은 스마트시티와 해수담수화 수출 확대 등을 위해 19~23일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는데, 유 협회장이 동행했다. 이번 수주지원단은 김현미 장관이 직접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레 출장 일정을 취소했다.

협회 관계자는 "유 회장의 중동 출장은 원래 예정돼 있던 것으로 업계 해외수주 지원을 위한 활동차 참가했다"고 설명했지만 협회 안팎에선 '꼭 가야 하나'란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발주 시장 방문이 수주와 연결될 가능성이 큰 대형 건설사 CEO와 달리 협회장 신분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비중 면에서 '구색 맞추기' 수준에 불과하다는 뒷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유 회장은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미국 순방에도 동행했는데 귀국 후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 중인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가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 다각화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건설업은 미국 행정부의 1조달러 인프라 투자 계획의 대표적 수혜산업으로 꼽히지만 국내 건설업계가 입을 실익이 크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트럼프 행정부가 직접 연방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최대 2000억달러뿐이며 관련 발주가 나와도 국내 기업이 수주하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다.

◆ 협회 위상추락…70돌 건설행사도 대형사 CEO 줄불참

논란은 협회의 대표성 여부로 모아진다.

'건설업계의 전경련'으로 한때 경제 6단체 구성을 공언할 정도로 국내 경제계에서 적잖은 지분을 갖고 있던 협회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다는 얘기는 여러차례 나왔다.

대건협은 출범 당시 고(故) 정주형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초대 회장을 지낼 정도로 경제계에서 목소리를 냈지만 2010년대 들어 위상이 급락했다.

25ㆍ26대 회장을 시공능력평가 순위 126위의 이화공영 최삼규 회장이 맡은데 이어 올 3월 27대 회장에 시공능력평가 순위 600위권에 불과한 신한건설 유주현 대표가 취임하면서 적격성 논란은 다시 불거졌다.

지난 7월 건설산업 70주년 기념식에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을 비롯해 박창민 대우건설 사장, 임병용 GS건설 사장 등 10대 건설 CEO들이 대거 불참한 것도 대건협의 업계 대표성 논란과 관련있다는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주택업체 CEO들이 협회장을 맡으면서 조직 방향이 건설이 아닌 주택으로 가고 있다. 대건협과 대한주택협회가 큰 차별성이 없게 됐다"며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보니 대형사들의 참여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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